가는 길

냉이로그 2010. 12. 14. 17:38

아직 몸을 가누는 것도,정신이 차려지지도 않아. 그런데도 다만 어서 이 허우적거림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에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지랄.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안경이면서, 그게 없으니 화면이 잘 들여다뵈지지도 않네. 어디서부터 기억을 맞춰야 하나, 그 가운데 어떤 장면들을 꽉 붙들고 싶은 걸까. 우린 더 이상 기록하지 말자고, 그것들이 아무리 넘쳐난다 해도 그것으로는 아무 것도 증거하지 못해,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가게, 흩어지게. 그러다가 한 점 마음에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전부라 해도 좋아. 설령 그것이 내 맘대로의 왜곡과 굴절일 뿐이라 해도, 그건 진실이 아닌 거라 말할 수 있는 이 누가 있겠니. 어차피 그 모든 것은 그 날 밤 별들과 저 우주의 앵글이 다 잡아놓고 있었을 거야.

충남 보령시 미산면 남심리. 갑식이 형아를 만나 그곳엘 다녀왔다. 피네는 금대리 십 년을 시집 한 권에 오롯이 담아놓았고, 거기에는 갑식이 형과 함께 하던 십 년 전 외방리 석고개가 있었다. 석고개 시절의따뜻함과 풋풋함, 아름다움,그 시절의 꿈, 함께 한 사람들.

(아, 요 아래에 있는 건 동시마중 까페 한 줄 게시판으로 떠날 약속을 주고받으며 끄적거렸던 거를 고대로 떠온 것이다. 이렇게 저 밑바닥 그리움을차근차근 덥혀가며 그리로 가는 길을 나섰더랬다.)

냉이 10.12.09. 11:23

이번 주말, 보령에서 서덕출 문학상에 버금가는 제2회 임모씨 문학상 시상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수상자는 이미 지난 해 이맘 때 쯤 정해졌더랬고, 이번에는 특별히 수상작의 OO리 십 년을 증거하기 위해 그 옛날 석고개 부라더스가 함께 출몰할 예정입니다. 기수상자는 참고하세요.

불한당 10.12.09. 14:01

크아아아!

푸른잉크 10.12.09. 15:59

어머어머....볼만 하겠습니다. 멀리서 미리 축하드립니다.

엄정야 10.12.09. 17:24

전년도 수상자가 고별행진 후 왕관이랑 봉이랑 건네주고 머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푸른잉크 10.12.09. 21:09

눈물흘리는 고별행진...아 짠하긋다.

냉이10.12.10. 10:19

아니, 그 많은 아이들 수업 옮기고 빼고 그러느라 너무 무리하진 마. 또 그렇게 놀아도 좋겠지만 따스하고 아늑한 어떤 술자리가 그리운 거야. 피네가 군불을 때놓고 있을 거고, 갑식이 성이 같이 갈 거야. 아마 이번에는 정말 보령 읍내 사진관을 찾아 다녀야 할지도 몰라. 못 온다 해도 수저 한 벌이랑 소줏잔 하나는 따로 놓을게. 잠깐 자리 비웠구나 하면서 같이 마시는 걸로 하면 되겠지. 날이 추웠으면 좋겠다. 조도가 낮은 불빛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고, 내복에 깔깔이, 담요 덮고 등 기대 도란도란, 못난 것들끼리 얼굴이나 보며 행복해하면 될 거야. 소주 말고 정종을 머그컵에 가득 데워 후후 불어가며 마실까. 군불에 익힌 고구마에

냉이10.12.10. 10:22

감자만 있어도 좋겠다. 것 참, 보령엘 이제야 가네. 뭔진 몰라도 그저 아득한 느낌이어서 좋다. 가는 길이 밀리고 멀어도 상관이 없겠어. 눈이 푹푹 내려 가는 데만도 일박이일 걸리게 된다 해도 조금도 지겹지 않을 것 같아. 얼마나 행복하겠니, 거기엘 가는데.

엄정야 10.12.10. 11:01

임모씨 문학상의 위상을 보여드리기 위해 사진 한 장 올립니다.
위 사진은 임모씨 문학상을 수상한 뒤 기뻐하는 1회 수상자의 모습입니다.
이 정돕니다. 상상, 그 이상이지요.
마침 2회 수상자의 모습도 얼마간 보이는군요.
임모씨 문학상의 고정 사회자 냉이님의 오른손도 있구요.
이 위대한 문학상의 부상은 차나 리어카를 동원하지 않으면 소장이 불가할 정도의 분량입니다.
- 사진 출처 : <풍경인물_사진>

................ 아,,.. 얼마나 행복할까, 거길 가는데.

푸른잉크 10.12.10. 11:53

턱빠지게 좋아라하는 수상자를 보니 그간 얼마나 상에 굶주렸는지 가히 짐작이 갑니다.

아니눈물 10.12.10. 12:13

임모씨 문학상을 받은 지 벌써 1년이 지났다니 감회가 매우 새로우이. 어느 아득한 골짜구니의 골방 같은 데서 왁자지껄 두집어졌던. 내가 그때까정 받아본 상이란 술상이거나 밥상이 전부였으니 턱이 빠져라 둏아라 하다가 꼴까닥 맛이 가 끝내 씨러지지 않을 수 없었지. 기 수상자와 상의 없이(원래 상의 안 하는 거지?) 내가 가장 바쁜 주말에(내가 딱 못 움직이는 날이지) 제2회 임모씨 문학상 시상식을 한다고 하니 모옵시 안타깝고 안타깝네. 마음 몹시 설렌다는. 냉이도 보고 짚고 갑식이 엉아도 보고 짚고 둘레둘레 모인 방의 풍경과 웃음소리와 헝헝 우는 울음소리도 듣고 짚은데.

아니눈물 10.12.10. 12:24

그날 불빛은 더없이 따뜻하고 아늑할 것이매 아무러이나 훌렁훌렁 벗어논 옷가지처럼만 졑에 앉았어도 좋으리라. 나오지 못할 만큼 눈은 몇날 며칠 내려 푹푹 쌓여라. 그 눈 핑계로 그리운 이들 오래오래 마조 보며 웃고 울고 뒹굴어 쌓게. 그러니 술은 약소하나마 궤짝으로 져 날아야 할 것이다. 냉이야, 목장갑 하나 졑에 두고 내내 붙잡고 마셔라. 아, 한편 매웁고 환하고 뜨겁게 울렁울렁 올라오는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피네 10.12.10. 20:23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심심한 냉야, 갑식이와 걍 조용히 와 임모 이사장이 자기 없는 시상식은 죄다 무효랴 백번을 양보해도 성주 사는 오키만 대독할 수 있댜 ㅋㅋ

냉이10.12.11. 02:21

갑식이 형아는 기대를 헐지 않고 오늘 전화를 걸었어. 기범씨 낼 은제 갈 거예유? / 형이 공장 일 끝나면 가자고 했잖아. 그 시간 맞춰서 가려고 했는데. / 그른디 갑자기 즈이 공장에 주문이 밀려서니 쪼꼼은 늦게까정 할 거 같아유. 그리두 괜찮아유? / 응, 형 일 끝나고 씻고 움직이는 시간에 맞춰 갈 거니까 그 시간 얘기만 해주라고. / 그기, 그르니까, 지두 잘.. 그르면 낼 점심시간 때 다시 전화할게유. 그 때 쯤이믄 일이 은제 끝나나 대충은 알 수 있을 거예유.

냉이10.12.11. 02:25

아마 우린 내일 저녁 깜깜해지고야 출발하게 될 거예요.( 갑식이 형아 한 번 움직이는 게 임금님 행차보다 어렵다는 건 피네 아저씨도 잘 알고 있을 테니 굳이 설명치 않아도 될 거야. 요 아래 써 놓은 것보다 훨씬 많은 사연이 있었거든. 오랜만에 갑식표 짜증이 확.) 어찌했건 괜찮아요. 한 해 동안 못 마신 술 찾아다니며 다 마시고 있느라 나도 모가 몬질 모르겠어. 그냥 거기엘 가면 잃어버린 사랑까지는 몰라도 잃어버린 어떤 것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대가 있을 뿐이에요. 그럼 그 날 밤은 말하는 사람이 반칙이야. 말하는 사람 머그컵에 소주 원 샷. 얼굴만 봐, 가만히 있기만 해.

피네10.12.11. 11:05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냉이 10.12.11. 16:46

우리 둘이 다 네비게이션을 몰라. 깜깜할 때 만나 깜깜한 밤길로 출발을 할 거고, 칠흑이 되었을 때 쯤 닿을 수 있을 거야.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깜장꽃, 꽃길을 내어줘. 아님, 별빛을 따라 갈 수 있게 깜장 하늘에 점점이 그 빛들을 매달아줘. 마침내 그곳에 닿았을 땐, 잃어버린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잃어버린 그 무엇 찾을 수 있겠지. 그럴 수 있을까.

피네 10.12.11. 18:22

오다가 몰르겠으면 깜장꽃이 깜장 하늘에 따복따복 흰빛을 늘어놓을 거야 금곡 천안 공주 부여 찍꼬 돌고 우로 좌로 서천방향 헛둘 헛둘 보령으로

아니눈물 10.12.11. 18:24

으짰든동 이딴 방법으루다 찾아갈 수 있다믄 용타^^. 헤매디 말구 댤 댕기오라우요.

피네 10.12.11. 22:22

나: 수다 떨면서 즐겁게 와 맛있는 거 해줄게요
갑식:기범씨한태는 맛있는게~ 알콜인데요!!ㅎㅎ--고마워요
갑식:기다리고 있는데 박기범 선생님이 안 오고 있어요!
나:(저놔를 했으나 받지 않음)
갑식:방금 온다고한게 30분 지났어요!! 조금더 기다릴께요!!
나:아직 술이 덜 깼나? 전화해 봐요
갑식:갑식이가 서울청량리까지 왔어요!! 방금온다고 전화왔어요!!
갑식:아니, 지금 청량리 지하철 내렸다고 하는데, 늘보 아저씨!!ㅎㅎ
나:늘보는 갑식씨 아닌가? 임금님 행차 ㅋㅋ
갑식:이제는 거구로 된거같애요! 지하철에서 내린지가, 25분경과 그런데! 저는 인내심은 좋아요!!

피네10.12.11. 22:27

나:인내심은 충청도가 좀 되쥬~ㅎㅎ
갑식:아무래도~이곳에서 10시나 되야 출발해야 될 것같아요!!
나: 일찍 출발하넼ㅋ 암튼 조심해서 와요~

그러군 기범이한테 전화가 왔다. 밤10시. 둘 다 내비온냐 말을 잘 몬알아 듣는다나 모라나, 지루하면 먼저 술 한잔 하라고. 그건 반칙 아니냐, 조심해서 와 즐겁게 수다 떨면서 와 내비게이션 아가씨가 고집이 세니까 말 잘 듣고 와~

아니눈물10.12.12. 08:22

하이코나. 잘들 닿아 덥게 손잡고 뜨뜻이 마조 앉아 노셨나 몰겄네용. 열시 여섯시에 전화가 와 있능 거 봉게 장장 노셨을 듯혀요. 지는 감기약 묵고 꼬록 잠에 떨어졌는지라 시장 인났어요. 아고, 밥 묵고 아가들 만나러 가야겠어요. 냉이야, 보고 짚고나. 갑식이 아재도 보고 짚고.

엄정야 10.12.12. 08:40

보령엔 밤새 눈이 얼마나 나렸을까, 세 마리 토끼가 어데어데쯤 빠져 있을까
지금쯤 피네가 지져논 군불 아랫목에서
두 이마 대고 발목 잡고 뜨끈허니 푸푸 잠자고 있을릉가
암말 안코 얼굴만 보자던 징헌 냉이랑 수다떨면서 어서어서 오라던 피네랑은
어쩌고 놀았랑가 어쨌던지 그것도 몰라, 그것을 몰라!

아니눈물10.12.12. 17:28

냉이는 핸도폰 빠떼루가 나갔고, 피네 성생님은 삐디아르를 홓홓 읊으시고... 장장 살펴가시민 노셔요^^; 임모씨 문학상은 최소 이박삼일 가능 게 맞긴 혀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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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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