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한 판

냉이로그 2010. 12. 9. 10:23

엄마가 차려주는 저녁, 아침을 먹었다. 엄마도, 형도, 형수도, 조카 아이 두 녀석도 모두 얼굴이 환하다.갈수록 서울에 올라와도 집에들르는 걸 꺼려지게 되었는데,지지난밤찌질남 셋이서 송년모임을 하다가 큰 찌질남 아저씨가 그래도 엄마한테 가라,엄마젖도 만지고 그래라,혼나는 바람에 집으로 기어들어갔다. 엄마 혼자 있을 때야 새벽 아무 때라도 술 쳐먹고 들어가 밥 차려달라, 꿀물 타 달라 망나니 아들이어도 암치 않았지만, 형과 형수, 조카들과 한 집에 살게 되면서는 그 짓을 하기가 너무민망해. 형수님 생각에 도련님은 아직도 저러구 사나, 언제 정신차리려나, 싶을까봐 지레 조심스러워져 난지도 집을 찾거나 그도 아님 여관을 찾곤 했던 것이었다.그런데 찌질이 아저씨 말 듣기를 잘도 했지.

아침에 학교에 나가던 서빈이가 그런다./ 재미없어, 재미없어. 어저께 오빠가 시험 잘 보고와서, 엄마가 피자 두 판이나 시켰는데, 삼촌은 같이 먹지도 않고 잠만 자. 삼촌은 언제 먹어? 언제 갈 거야? /그러게, 잠만 잤네. 어쩌다 오게 되는 서울이니, 오는 걸음에 만나기로 한 사람들 다 만난다 하면서 맨날 술 약속. 그러니 술먹으러 기어나갔다 새벽에 들어오거나 아님 숙취를 푼답시고 잠만 쿨쿨. 조카들하고 놀아준지도 오래되었다. /삼촌은 밤에만 나가, 삼촌은 잠만 자. /이거 완전 이미지 꽝이 되어버렸다.

피자 한 판 남았다잖아. 삼촌 이거 언제 먹을 거냐잖아. 그런데 어쩌면 좋아? 오늘도, 내일도 삼촌은 새벽에 떡이 되어야 들어올 텐데, 아침엔 자느라 학교 가는 얼굴도 잘 못 볼 건데. 학교에 갔다오면 그 때서야 잠바 찾아 입고 또 어딘가로 기어나갈 텐데. 저 피자 한 판은 언제 같이 먹을 수 있을까? 아이고, 요 이쁜 것들. 나도 멋진 삼촌이 되고 싶단 말이지. 그럼 삼촌이랑 숭례문 같이 갈래? 토요일 오전에 시간이 될 텐데, 그 때 창덕궁엘 같이 갈까? 그게 되나? 학교 안 가는 놀토 맞나? 흐엉. 이런 딱한 삼촌 같으니라구.

그러나 무지무지 사랑해. 삼촌이 후져서 너무너무 미안해.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는 길  (2) 2010.12.14
엑스레이  (0) 2010.12.09
갑식이 형  (4) 2010.12.06
겨울바다  (2) 2010.12.04
안 가본 길  (7) 2010.11.29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