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냉이로그 2010. 12. 14. 19:21



시작은 이랬지. 가는 길에서도 네비게이 언니는 자꾸만 경로를 재탐색한다고 그러는 거야.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싶다가도 다시 도착 시간이 길어지고, 키로 수가 자꾸만 올라가. 이거 날 밝기 전에야 닿을 수 있으려나. 곡절우여 끝에 이제 다 됐다 싶으니 거기서부터는 네비 언니에게도 입력되지 않은 길이 나오니 어쩔 도리가 있나. 깜장꽃 이파리를 즈려밟고 가거나 깜장하늘 깜장불빛 인도를 받지 않으면 더는 전후좌우를 분간할 수 없었으니 그 야심한 시각 남의 집 앞에서 빵빵 거리기를 몇 번, 겨우 당도를 하였네. 피네는 생합탕에 꼬막과 새우, 석화.대천 압빠다에 나가 그물질을 했는지그 비릿한 것들로 한 상을 가득 차려놓았고, 그 껍데기와 껍질들을 하나하나 발라 입에 쏙쏙 넣어줘.

그러곤 갑식이 형의 영광탁자 스토리가 시작되었어. 건수는 아직도 문방구에서 핸드폰 고리를 훔치다 걸리기를 하고, 용휘는 여기저기 빚을 끌어다 주막 누님에게 순정을 바쳤으니 그 누님은 그렇게 해다 바친 돈과 살림만을 홀랑 들고 마을을 떴다지. 용휘도 마을을 떠나 마석 공단 어딘가로 가서 일을 하고 있다고. 화장품 외판을 나갔다가 바람을 피운 각시에게이혼당한 감자 씨, 월급만 받으면 그걸 다 탕진할 때까지 며칠을 쏘다니다 돈 떨어지면 다시 일 시켜달라고 돌아오는 영만이……. 입이 걸기로는 그 공장 남자들 아무도 당할 수 없는 경리 얘기는 들어도들어도 재미가 있지. / 걔, 우리 경리는 아주 미치겄다니까유. 걔가 지보담 열여덟 살은 어린디, 지가 장개만 일찍 들었어두 지겉은 딸이 있는데, 지보구는 그양 야, 갑식아! 나 아까 변소깐에서 니 자지 봤다. 그릏게 째깐해서 워따 갖다 쓰겄냐……./ 공장의 경리란아무 때나 궁뎅이를 주무르기 위해 두는 것이확실한 영광 탁자 사장. / 형네 공장은씨트콤으로 써야 해, 아니이건 파랑새는 없다 정운경한테 보내 연속극을 만들어야 돼, 얌마 근데 너는 왜 석고개 얘기를 안 쓰는 거냐? 쓸 수가 없다니까,이건 도무지 감당이 되질 않아,이 얘기들이 어디한 권 짜리로 되겠니, 한 번 쓰기로 작정을 하면씨리즈루다 써야지, 그르니까 아저씨가 연작시로 쓰란 말이야. /문을 제끼면 바로 석고개의 그 이발소와 오토바이 수리점 마당이 나올 것만 같아. 요 옆을 내다보면 동신상회 그 여시같은 아줌마가 지켜섰을 것두 같았고.

아, 맞구나. 십 년 전 그 때 쯤, 내가 돌아가고 싶었던 곳,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곳, 여기가 맞구나.그러다 날이 밝았을까. 우린 피네가 밤새 군불을 때놓은 토방으로 들어갔고, 따땃하게 잠이 들었다. 이 때까진그래도 아주아주 얌전하고 행복하게 십 년 전 그 어디 쯤으로 잠겨들기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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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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