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112

냉이로그 2016. 11. 14. 10:53

 

 백만이라니. 서울시청 앞에서 광화문을 지나 종로와 서대문까지 빽빽히 가득한 인파, 은하수처럼 점점이 빛나는 백만의 별빛.

 

 

 그 시각 감자네는 제주시청엘. 이날 하루만큼은 달래에게 이해를 얻어 나 혼자라도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혼자서 그 감격에 겨워하기보다는 감자품자와 함께, 달래와 함께 촛불을 밝히는 쪽이 더 소중하겠다 싶어. 막상 시청 앞 촛불을 밝힐 무렵엔 달래와 품자가 함께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될 것 같아, 이번 주엔 감자와 둘이서 제주시청을 찾았다. 감자야, 촛불 들러 가자! 하니 감자는 그 조그만 손을 들어올리며 응, 응, 응!

 제주에선 네번째 촛불집회. 회를 거듭할수록 이 섬의 촛불도 그 수가 늘어, 총궐기라 이름붙은 오늘은 더 많은 이들이 이미 모여있었다. 집회 전, 제주에 있는 청소년들 사백여명이 시국선언을 했다던가. 시청 앞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매번 나올 때마다 인사를 나누던 얼굴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아. 제주에서도 진작에 천 명 넘게, 광화문 참가단이 준비되었다더니, 많이들 서울로 올라갔나 보았다. 하지만 그 인원들이 빠지고 났는데도 시청 앞엔 이천 명 가까이가 모여.

 

 

 

 감자는 역시나 연단에서 눈을 떼질 않아. 두리번거리는 것도 없이, 눈동자 흔들리는 것도 없이, 신기하게도 그 긴 시간, 눈깜빡임조차 잊은 것처럼 그대로 지켜보았다. 어머, 이 애기 좀 봐, 어머 얘 좀 봐! 곁에 둘러선 사람들이 신기해할 정도로, 감자는 아기 얼굴을 하고선, 흔들림없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갈 때마다 생각을 하곤 한다. 감자는 무얼 보고 있는 걸까, 감자 마음에 남아있게 될 그것은 무얼까. 나는 왜 촛불을 드는 그 자리로 감자와 품자를 데리고 가곤 할까. 이 어린 아기에게 민주주의니, 저항이니, 시민이니 하는 그 모든 말들이야 어불성설이라는 걸 모르지 않아. 그저 훗날 감자와 품자가 이 날들을 기억할 때, 이 날들을 궁금해할 때, 감자품자도 엄마아빠하고 거기에서 함께 촛불을 밝혔단다. 감자랑 품자도 조그만 아기촛불이 되어 함께 있었단다, 를 얘기해주고 싶은 걸까.

 서울 광화문의 소식이야 제주시청 앞에서도 스크린으로 중계화면이 띄워져 있었고, 주머니 속 전화기만 확인하면 실시간으로 듣거나 볼 수가 있었다. 오십만이라더니, 칠십만이라더니, 경찰은 이미 추산을 포기했다더니, 백만의 불빛이 흐르고 있더라는.

 감자야, 오늘 감자는 저 불빛 속에 함께 있었단다. 은하수를 흐르는 별빛들처럼, 백만의 촛불이 넘실대던 밤, 감자도 백만 분의 하나, 촛불을 밝혀 아기별로 반짝였어.

 

 

 

 

 1112 촛불항쟁이 있던 주말을 보낸 일요일. 이날은 아무 데도 외출 계획을 두지 않고, 그야말로 일요일 같은 일요일을 집에서 보내었다. 햇살이 좋아, 감자품자와 함께 집 앞 마당과 옆집 밭엘 나가 놀으며.

 집 둘레에는 하얀 국화가 이렇게나 탐스럽고 예쁘게 피어 있네. 옆집 아주머니가 마당 꽃나무들을 얼마나 잘 가꾸시는지,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가을이면 가을, 철따라 피는 꽃들을 실컷 만끽하곤 해.

 이렇게 예쁜 가을인데, 이 가을은 동쪽 오름들에 억새를 보러 다니지도 못하고, 하늘만큼 파란 바다에도 맘껏 다녀보질 못하고, 촛불과 함께 그대로 보내야만 하는구나, 싶은 생각.

 가을이란다, 감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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