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구월

감자로그 2016. 10. 18. 09:53

 

 오랜만에 전화기에 있는 사진들을 컴퓨터에 옮기다 보니 9월 한 달을 이렇게 살았구나 싶다. 팔월 말로 한라산 공사를 마치고, 그 뒤로 입찰된 공사가 없어, 마음이 그닥 편치는 않았지만 회사 일로는 그리 바쁠 것이 없던 시간. 이때부턴 될 수 있는대로 점심도 집에 가서, 하루 세 끼를 집에서 밥을 먹으며 지낼 수도 있었고, 짬을 보아 감자품자달래와 함께 바람을 쏘이러 나들이를 나가는 날도 많았다. 아빠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감자품자달래는 집 바깥을 나갈 수 없는 처지, 되도록이면 가까운 바다라도 나가려 했고, 짬이 나는대로 감자가 뛰어다닐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시간이 좀 더 여유가 있을 것 같으면 배를 타고 저 멀리 동남 바다에 있는 우도엘 들어가 하룻밤을 자고 오기도 했고, 동쪽의 비자림 숲에도, 남쪽의 귤나무 숲에도, 그리고 남서에 있는 신창 풍력발전단지엘 다녀오기도 해.

 마침 아빠가 회사일로 크게 바쁘지 않던 한 달, 감자는 가을로 들어가며 알밤이 굵어가듯 또한 그렇게 굵어가고 있었어.

 그 시간의 사진들은 그저 주렁주렁 걸어놓기만 한다.

 

 

1. 구엄리 돌염전 / 0830

 

 

 

 

2. 곽지 바다 / 0903

 

 

 

 

3. 평대리 비자나무 숲 /  0906

 

 

 

 

4. 우도 첫날 밤 / 0908

 

 

 

 

5. 우도 둘쨋날 / 0909

 

 

 

 

6. 한수풀 도서관 / 0910

 

 

 

 

7. 신창 풍력발전 단지 / 0910

 

 

 

 

8. 감자네 집 / 0917

 

 아기가 잠들어있는 모습, 잠든 아가를 바라보고 있을 때 마음은 정말 무어라 표현하기가 어려워. 한 없이 평화로운, 그러면서도 또한 눈시울이 젖어들도록 가슴이 짠한. 더없이 고마운 마음에 젖어들다가는 어느 순간, 네가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 그게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알기에, 안쓰럽기도 해.

 이날 감자가 잠든 모습을 보며, 전화기를 찾아 사진을 찍었던 건 아마도 감자 머리맡에 놓여 있던 그림책이 함께 눈에 띄었기 때문일 거다. <<오늘도 좋은 하루>> 그랬니, 감자야. 감자에게도, 오늘도 좋은 하루였니, 부디 그러기를 바라면서, 그랬다 싶으니 또한 행복한 마음이 들었나보다.

 

 

9. 더럭분교 / 0918

 

 

 

 

 

10. 한담 바닷길 / 0920

 

 

 

 

11. 하가리 연못 / 0921

 

 

 

 

12. 고내리 앞바다 / 0921

 

 

 

 

13. 두 번째 치과 / 0922

 

 이즈음 들어 감자가 자꾸만 윗니를 손으로 만지곤 해. 모가 끼어서 그런가, 하고 들여다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고, 그러던 차에 찾아가본 치과. 으앙! 하고 터진 울음에 치과 선생님이 들여다 보고는 ㅎㅎ 이를 안 닦아서 그런 거라고. 프라그가 끼어 있어 그런 건데, 지금 있는 정도는 칫솔로 살살 닦아주어도 되는 거라고.

 두 돌을 한 달 앞두고 있던 때였는데, 그때껏 감자는 아직 이를 닦질 않았다. 몇 번 시도를 해보기는 했는데 하도 감자가 싫다고 빠져나가고, 바동거리며 도리질을 쳐대서, 엄마아빠가 그냥 손을 놓고 있었던 거. 감자야, 이젠 이닦는 거 연습하자. 이빨 안닦아서 이게 모냐구 ㅋ  

 

 

14. 서귀포 농업기술센터 / 0923

 

 

 

 

15. 치카치카 / 0924

 

 

 

 

16. 벌거숭이들 / 0926

 

 으하하, 감자는 품자 기저귀를 갈아주려 엉덩이를 벗겨놓으면 어디선다 우다다다 달려와. 그러곤 품자 궁뎅이를 만지며 빵 터져라 웃으며 좋아하는 거. 이날은 감자도 품자도 씻겨놓고 옷을 갈아입히려는데, 맨살을 드러낸 품자 배를 만지며 모가 그리 좋은지 ㅎㅎ

 

 

17. 구엄리 정자 / 1001

 

 

 

 

 

 

 

 

 그렇게 이천십육년 구월 한 달을 살았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감자에겐 지구별에 온지 스물석달 째가 되던 초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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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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