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과장

굴 속의 시간 2016. 7. 11. 00:15

 

 

 스마트폰이라는 거, 스무달박이 감자에게도 얼마나 커다란 유혹인지. 처음엔 감자 모습을 담아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고나면, 감자도 그 안에 자기 얼굴 나오는 거 보라고 보여주곤 했던 건데, 어느 땐가부터는 엄마아빠 전화기만 보면 달려들기를 시작. 사진 앨범 켜달라고, 동영상 트는 거 해달라고, 한 번 동영상을 틀어주면 그 안에 있는 파일들을 다 찾아 보느라 멈추질 않으려 해. 특히나 엄마가 품자를 안고 젖을 물리거나 해야 해서, 감자를 보아줄 사람이 없을 때면, 그거에 더 빠져들면서. 

 

 그래선 안 되겠다 싶어, 한참 전부터는 감자 눈 앞에 전화기를 보이지 않게, 감추어두고 지낸지 오래. 그래서 달래 혼자 집에 있을 땐 전화가 오는 걸 몰라 못받는 일이 많아지기까지 하지만 ㅠㅠ

 

 그래도 필요한 전화 안 받을 수 없고, 아주 감춰두고만 지낼 수는 없으니, 감자 앞에서 전화기를 들 때가 있고, 그럴 때면 감자가 동영상 틀어달라 하면서 아주 처연한 얼굴을 짓는다. 다행인 거는, 달래가 어떻게 감자가 알아듣도록 (도대체 어떻게 알아듣는단 말이지?) 얘기를 해서 "이거 하나만 보자! 하나만 보는 거야." 하고 타이르듯 약속을 하면, 더는 길게 조르지를 않아. 그러면서 점점, 전화기 보여달라 조르는 일도 줄어들었고.

 

 

 

 

 엊그제였나, 어쩌다 감자가 아빠 전화기에 있는 동영상들을 보게 되었는데 (당연히도 그 안에는 대부분이 감자이거나 품자가 나오는 동영상), 마당에서, 바닷가에서, 연못에서, 욕실에서 등등 제 모습이 나오는 동영상을 찾아서 틀어보다가 우연히 이거를 틀게 되어.

 

 으악, 저게 모야. 내 전화기에 있던 거건만, 나는 저게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

 

 지난 주, 전에 일하던 회사에 함께 일을 하던 장차장을 만나 컴퓨터 쓰는 걸 배우다가, 한 번 듣고나면 까먹을 것 같아, 아예 동영상으로 찍어놓았던 거. 요즘도 나는 엑실이거나 캐드 프로그램을 써야 할 일이 있으면 예전에 일하던 회사 동생들에게 부탁해, 그 쉬운 삽입, 제거부터 해서 이동, 복사 따위를 하나하나 배우는 일이 다반사라.

 

 저 때는 캐드 파일을 출력하는 법을 배우던 거. (어렵고 복잡한 고급기술도 아니고, 고작 출력하는 법이라니 ㅠㅠ) 캐드 파일로 되어 있는 설계도면을 수정하는 것도 노트북을 들고 장차장을 쫓아다니며 겨우겨우 배워했는데, 막상 감독부서에 수정 도면을 출력해 제출하려고 하니, 인쇄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깜깜. 그래서 장차장에게 시내에 있는 커피숍에서 만나자 하여, 캐드 프로그램으로 된 도면을 출력하는 법을 기역, 니은 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있던 거.

 

 전에도 한 번 물어본 적이 있고, 가르쳐준대로 해서 출력을 했건만

 시간이 지나 다시 출력을 하려니, 그때 어떻게 했었는지가 깜깜한 거라 ㅠㅠ

 그래서 똑같은 걸로 자꾸 물어보기도 미안스럽고, 하여

 이번에는 전화기를 들고 동영상으로 찍어놓았던 거.

 

 

 

 

 에엥? 그건 뭔 동영상이냐며, 달래가 들여다보더니, 웃음을 터뜨려.

 나도 그 안에서 들려오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웃음이 터졌다.

 달래와 함께 둘이 한참을 우습다며 웃다가,

 괜시리 내 모습에 출렁, 하는 마음이 들어. 

 

 아직 그리 나이 먹었다 할 수는 없을 텐데도,

 나는 왜 그렇게 컴퓨터에 약하고, 그런 쪽으로는 이해도 느리고 학습력도 느린지,

 심지어는 영주 회사에서 일할 땐 재직자 교육으로 캐드 학원을 석 달이나 다니기도 했건만,

 그 기본적인 인쇄, 출력조차 할 줄을 몰라 진땀만 뻘뻘.

 

 달래는, 그래도 노력이 가상하다며 웃다가,

 왠지 서글프다 하면서 웃기도 하면서,

 "감자야, 아빠 참 애쓴다 ㅎ" 하면서 함께 웃는데,

 내가 봐도 내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참 서글픈 거라 ㅠㅠ

 

 그러자니 몇 해 전에 본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컴퓨터 할 줄 모르는 구세대 직장인 캐릭터로 나오던 고과장 아저씨가 떠올라.

 직장 생활이라는 걸 리얼하게 다른 드라마로는 뭐니뭐니 해도 미생을 따를 게 없지만,

 직장인의 애환으로 눈시울을 붉어지게 한 걸로는 직장의 신도 그에 못지 않던.

 그 가운데 고과장 아저씨 편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뭉클하고 저릿했는지.

 

 커피숍에 앉아 컴퓨터 출력하는 법을 배우며,

 그걸 까먹을 까봐 하나하나 따라하는 걸 핸드폰 동영상으로 찍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다가,

 문득, 그 오래 전 드라마의 고과장 아저씨가 오버랩되어.

 

 

 

 

 

 

 

 

 

 

 

 

 

 


'굴 속의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굴  (6) 2016.01.31
근무  (0) 2012.12.30
얼굴  (4) 2012.12.25
기술자  (8) 2012.12.21
그리고  (6) 2012.12.02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