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일육 일월

냉이로그 2016. 1. 19. 18:07

 

 

1.

 

 따뜻한 시도 공연들은 두 날 모두 성황이었다. 

 

 

 그렇게나 좋을 줄이야. 준비한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객석을 가득채운 관객들은 물론 무대에 선 뮤지션들이 행복해하고 기뻐하니 더없이 행복해. 두 날의 공연을 모두 마치고 뒤풀이를 하던 자리에서 함께 준비한 이들은 몇 번이나 내게 소감 같은 것을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질 못했다. 아직 그 감동이 가시질 않았는 걸 어떻게 무어라 말로. 열흘 가까이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홀로 멈춰서 있다보면 그날의 무대가 떠올랐고, 이제야 비로소 한두 말이 떠올라. 이내, 시와, 선경. 내가 왜 이 친구들의 노래를 그토록이나 좋아했던지, 이 노래하는 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던 것도 끝내 그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노래하는, 진심을 노래하는 그 마음이며 목소리. 

 

 

 

 

 2. 

 

 공연을 마치고도 시와는 이틀이나 더 감자네 집에 머물러.

 

 

 다음 날 있을 이사 준비를 하는동안 달래, 감자, 시와는 라다 언니네 미용실에 가서 모두 머리를 맡기기도 했고, 감자네가 이사를 하던 날 밤엔 절물휴양림에 모인 글과그림 식구들의 출판기념 자리에 함께 하기도 했다. 공연을 마치고 난 이틀 뒤엔 감자네 집 이사. 귤꽃 내음 가득한 마당과 돌담, 정낭이 예쁘던 소길리 감자네 집은 품자와 할머니까지, 다섯 식구가 살 준비를 하느라 조금 더 넓은 집으로 들어가야 했고, 이번에도 역시 또치 언니의 도움으로 맞춤한 집을 찾아 들 수 있게 되어. 이삿날엔 무대에 섰던 시와와 선경네도 감자네 이삿짐을 함께 날라. 엊그제까진 무대 위의 뮤지션들이 감자네 집 이삿짐 일꾼이 되어. 그리고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말랴. 이삿날은 역시 짐더미들 사이에서 신문지를 깔고 먹는 짜장면 파티가 최고지.

 

 

 

 

3.

 

 소길리 작은 마당의 감자네 집.

 

 

 이사를 하고 나서도 난장이공 카페를 정리가 남아있어 소길리에 한 번씩 올라갈 때마다, 감자를 낳고 살았던 소길리 작은 집이 눈에 들어오면 마음이 울렁이곤 해. 여기에서 감자를 낳았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감자를 보러 이 집을 다녀갔는지. 들이네를 통해 들어가 살 수 있었던 그 애틋한 집. 맨 처음 손님은 병수 아저씨네였고, 맨 마지막 손님은 종숙 언니와 하하. 어느 봄 날엔 감자네 세 식구만을 앞에 놓고 시와가 공연을 하기도 했어. 그리고 제주를 다녀가던 그리운 얼굴과 얼굴들. 소길리 그 집을 떠나오면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감자네 집 마당을 늘 찾아오던 고양이들. 아마 일 년 가까이 되었나 보다. 새끼를 가져 배가 부른 고양이 한 마리가 어느 날부터 감자네 집 앞에서 먹을 것을 기다렸고, 홀몸도 아닌 녀석을 보며 무어라도 먹을 걸 챙겨주던 것이. 그렇게 일 년 가까이. 그렇게 해서 낳은 새끼 고양이들까지, 언젠가부턴 네 마리 고양이가 감자네 집엘 찾아들고 있어. 감자네가 이사를 하고, 종숙 언니가 그 집에서 이틀 밤을 자게 되었는데, 고양이들이 냉이만 기다리더래. 얼마나 배가 고플까. 어쩌면 버림 받은 기분이라도 들진 않았을까. 이 집에 살던 감자네 식구는 어디로 갔는지, 먹을 걸 챙겨주던 그이는 왜 보이질 않는지, 영문도 모른 채, 불꺼진 집을 기웃거리며 주린 배로 덜덜 떨며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냥이들이 자꾸만 눈에 밟히네. 이제 그 집엔 수니언니네 소영 누님이 들어가 살기로 했으니, 나보다도 더 동물을 좋아하고 아끼는 분들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4.

 

 난장이공 카페도 정리를.

 

 

 지난 여름, 칠월 스무날에 시작하면서 여섯 달을 약속했으니 일월 스무날까진 감자네가 맡아서 운영하기로 한. 그런데 갑자기 현장 출근일이 급하게 정해졌고, 그 전에 감자네는 이사까지 해야 했으니, 공연을 마치고 나서는 이삿짐 정리에 이사에, 출근 준비에. 공연을 마치고 나서는 딱 하루밖에 카페 문을 열 수가 없었네. 그러고 나서는 카페에 있는 감자네 짐도 다 빼고 정리를 해야. 여기저기, 지붕 꼭대기까지 매달아 설치했던 병수 아저씨의 솟대들도 다 내려 싣고, 와랑엄마의 도자기 작품들도, 선반 한 켠의 정생이 할아버지 책들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들에게 보내온 피네 아저씨의 책들도, 낮은산 아저씨가 보내준 그 많은 책들도, 그리고 아빠가 쓴 동화책들도 팔아요 라 했던 감자 아빠 책들도. 다락방을 꽉 채우던 또치, 돌돌이, 해원 언니들이 보내어준 그림책, 어린이책들도. 카페에 가 있는 짐이 그렇게나 많은 줄이야. 조그만 방에는 감자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며 고무신, 포대기, 모자, 양말이 한 보따리. 하하, 그러고보니 감자 인생의 삼분의 일이었어. 그 여름, 아직 포대기에 제대로 업힐 줄도 모르던 녀석이 이젠 카페 안을 휘저으며 걸어다니고 있으니. 카페 구석구석, 내가 손으로 써서 덕지덕지 붙여놓은 것들은 얼마나 많던지. 하나하나 떼어내면서 지나가는 얼굴들, 장면들. 여섯 달, 약속한 시간이 다 하고 카페를 마치더라도 더는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는지. 눈시울이 젖어들어. 저 멀리 인천 강화에서 찾아와 마련해준 감자의 돌잔치며, 노래하는 친구들의 공연에, 한 달 너머 투표함을 설치하기도 하였고, 신부님이, 강정 친구들이, 밀양 친구들이, 십 년도 넘게 연락이 닿지 않던 어떤 얼굴이, 부러 비행기를 타고 찾아준 그리운 얼굴들이. 때로는 카페 다락방에 잠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하면서. 정이라는 게 참 무섭더라. 그 짧은 시간이었건만, 아주 깊이.  

 

 

 

 

5.  

 

 새로 들어간 집엔 아직 짐정리도 제대로 하질 못해, 풀지 못한 상자가 그대로 쌓여있건만, 나는 바로 현장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하필이면 첫 출근부터 눈발이 날려. 감자를 낳기 전, 마지막 현장이었던 거문오름.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님 그 어떤 결자해지가 되려는 건지, 다시 시작하게 된 현장이 또 거기, 거문오름. 새로운 회사,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분위기, 아직은 한참도록 낯설기만 할 사람들. 나는 다시 새벽바람을 맞기 시작했고, 긴장과 두려움으로 몸이 굳어있어. 

 

 

 

 

 

 이렇게 이공일육, 일월이.

 

 

 공연하던 때 그 감동스런 모습이며, 이사하던 풍경과 정들었던 소길리 작은 집, 그리고 새로 살게 된 잔디깔린 마당 하가리 집, 감자네가 머물던 난장이공 카페의 마무리도 냉이로그 한 켠에 차곡차곡 담아놓고 싶지만, 도무지 그럴 여유가 없네. 게다가! 그 난리통에 다녀간 글과그림 식구들. 공연에 이사에 카페정리에 출근준비까지 갑자기 몇 가지 일들이 몰려 정신없던 바로 그 즈음에 이 섬 어느 즈음에선 글과그림 식구들이 모여 있었어. 그 멀리서 환영이가 왔어도, 병수가 오고, 종숙이가 오고, 도토리가 오고, 하은이가 왔어도 술 한 잔을 제대로 하질 못했네. 팽팽 놀며 지낼 땐 왜 그러지 않다가 하필이면 이런 때 ㅜㅜ 연수 일정에 앞뒤로 붙여 닷새를, 엿새를, 일주일을 머물다 가고 그랬건만, 하지만 난 어느 것도 미뤄둘 수 있는 게 없었으니. 집엔 갓난장이와 임산부, 그리고 몸아픈 할머니 뿐. 요르단에 가 있는 란이 팔레스타인인의 책을 번역해 출판을 준비하면서 부탁해온 추천사가 있기도 하지만, 미안하다 란아. 아직 원고조차 들여다보질 못하고 있어. 이렇게 이공일육, 일월이 정신없이 지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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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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