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머루송이

냉이로그 2015. 12. 25. 19:10

 

 희주의 엽서, 돌아와선 바로 답장을 써야지 하던 것이 벌써 한 달을 훌쩍 넘겼다.

 더 늦지는 말아야지 하고 쓰기 시작한 엽서.

 엽서라기에는 많이 크다.

 올 한 해, 감자네 집에 걸려있던 철수아저씨의 판화달력.

 이제 저것도 엿새 지나면 제 자리를 잃을 텐데,

 재활용 페휴지로 내버리기에는,

 열두 달 종이가 모두 그냥 버리기에는 아까운 작품들이라.

 저 달력 뒷 장에다 엽서를 써야지, 하고는 지난 달력들을 스프링에서 하나씩 뜯어내었다.

 

 그런 벽걸리 달력 뒷장에 엽서를 썼으니, 엽서라기에는 완전 초대형. 

 희주에게 보낼 것으로 고른 것은,

 철수 아저씨 판화작품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난한 머루송이에게>.

 

 그런데 달력 뒷장으로 아이에게 엽서를 써나가다 보니,

 어, 조금 이상하다.

 제목은 분명히 같은데,

 내가 기억하는 작품이랑 달력에 있는 거랑 조금 달라.

 그래서 희중에게 달력에 있는 버전말고,

 맨 처음 그린, 아저씨 작품집에 있는 버전을 보여주고 싶어

 따라 그리기도 했네.

 

 

 그 원래 작품은 이렇다.

 

 

 

 

 올 해도 정말 다 저물어가는구나.

 감자와 함께 한 일 년이었고,

 얼떨결에 맡은 난장이공 카페에서 보낸 반 년이었다.

 

 어김없이 철수 아저씨는 내년도 판화달력을 보내어주셨고,

 엊그제는 아저씨가 몇 해 동안 고생해서 낸

 원불교의 대종경 연작판화집까지 보내어주었다.

 

 

 

 묵직한 상자에 무어가 들어있을지 짐작은 하였지만, 바로 상자를 열지 않고 하루를 묵혔다.

 얼마 전 피네 아저씨가 <강냉이>를 담아 보내온 우편 봉투를 받았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어떤 봉투나 상자는 그 겉봉에 쓴 주소와 이름 글씨가 그대로 작품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철수 아저씨가 보내온 상자도 그래서 상자 그대로 좀 더 두고 보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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