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정에서 <가객에게 다시 부치는 편지, 앵콜 in 강정> 김광석 추모콘서트가 있었어. 지난 1월 저지에서 열렸다는 이 콘서트, 1월 말 강정에 경찰과 용역의 행정대집행이 있고 난 뒤, 그 무대를 그대로 강정으로 가져가 힘을 실어주러 다시 모인 뮤지션들.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되었다고 속보가 날아드는 걸 보면서도 그땐 힘든 몸의 달래와 감자에게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주에 지내면서도 강정에 손 한 번을 제대로 잡지 못해. 어제 다시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때나마 한 조각 마음이라도 보태고 싶어 달래와 함께 감자 기저귀 가방을 챙겼다. 이번에는 감자가 처음으로 가게 되는 섬의 남쪽 먼 길.
수니 언니의 무대도 있었어. 달래는 자기 눈물 흘린 거 여기에다 쓰지 말라지만, 수니 언니의 첫 곡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들으며 눈가가 젖어들어.
수니 언니랑은 공연 전에 만나기로 하여 한 시간 일찍 그곳으로.
감자야, 엄마랑 아빠가 좋아하는 수니 이모야!
사진으로는 보내곤 했지만 실제로는 처음 만나는 수니이모야랑 감자랑.
어머나, 감자는 이 날 임순례 감독님하고도 인사를 하게 되었네. 이 다음에 감자가 크면 와이키키브라더스를 꼭 같이 보았으면 해.
강정에 닿을 때까지 푹 잠에 들던 감자는 공연이 시작하기 전 회관 앞마당에서 잠이 덜깬 채로 어리둥절. 보고싶어하던 수니이모야도 만나고, 순례 감독님도 만나고, 그리고 또 소길리 이웃인 주영이 이모야도 만나서 이리저리 품에 안겨.
아참, 수니이모 곁에 선 주영이 이모야는 알고보니 아빠의 대학동기랑 잘 알던 사이였다지. 며칠 전 난장이공 까페에 갔다가 이십 년 가까이 한 번도 만나지 못하던 동기 이름을 듣고는 깜짝 놀라. 게다가 주영이 이모야네 아저씨는 드라마 미생에서 오과장 아저씨 친구인 영업2팀 고과장으로 나온 아저씨라 해서 또 한 번 놀랐네.
무대에 막이 오르고, 처음부터 얼마나 싸운드가 쎄게 들려오던지, 감자가 놀라지 않을까 했지만 천하무적 순둥감자는 그 커다란 앰프 볼륨에도 무대에만 집중했다. 열네 팀의 공연 가운데 일곱 팀의 순서가 다할 때까지 아빠 품에 안겨 신기한듯 무대에만 집중해. 공연 중간에 아랫도리가 축축해지는 게 느껴졌지만 1부가 끝날 때까지는 손을 써볼 수가 없어 그대로 두었는데도 칭얼거리는 거 하나 없이 가만히 안겨 있어. 1부가 끝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두 시간 이상 지나서는 무리다 싶어 끝까지 공연을 보고 올 수는 없었지만, 다섯 달 된 감자는 한 시간이 넘도록 무대를 바라보다가는 품에 안겨 잠이 든 채로 또 한 시간을.
감자와 함께 강정엘 다녀왔다. 지난 여름 광화문에서 신부님을 뵙긴 하였지만, 달래와 함께 뵙기로는 신혼여행 길에 제주에 내려와서 뵙고는 3년만에 다시 뵙는 거. 게다가 이제는 둘만이 아니라 감자까지 셋이 되어 인사를.
두희 언니도 정말 오랜만에 만나. 강정에 다녀갈 때마다 엇갈려 만나지 못하곤 했는데, 다시 만나게 되니 얼마나 반가웁던지. 지쳐보이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더 깊어진 모습. 조약골도 이 자리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고, 소처럼 착한 눈으로 여전히 씩씩하기만 한 미량 님도 다시 만났다. 공연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 등을 치며 반갑게 인사를 해서 돌아보았더니 김홍모 씨가 환하게 웃고 서 있어. 벌써 마당에서 한 잔을 걸쳤는지 소주향이 기분 좋았다. 그 밖에도 처음인 얼굴이지만 오랫동안 함께인 것 같은 강정친구들, 평화지킴이들. 아, 맞다! 아이들과 마당에서 얼음땡을 하는 동소심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났구나.
안에서는 멋진 무대가 이어졌고, 앞마당에서는 자리가 무르익어갈수록 여느 농성장의 잔치 같은 분위기가 이어져. 한동안 떠나있었다, 이런 싸움의 자리. 그러나 만나는 이들마다 반가운, 오래도록 그곳에 있었던 양 익숙한 그곳은, 마치 고향에라도 돌아간 듯한 기분이 느껴져.
제법 멀다 느껴졌지만, 고속도로 비슷한 길이 있어 그런지 집에서 강정까지는 사십 분 정도면 갈 수가 있었다. 달래도 그러자고 했다. 앞으로는 강정에 자주 가보자고. 나들이 삼아서도 가고, 신부님이며 지킴이들 만나러도 가자. 강정이든 밀양이든 쌍용이든 어디든, 길게 이어지는 싸움의 현장에 힘을 실어주는 일은 무엇보다 그곳에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하는 거. 게다가 거기에는 감자를 안아주는 할아버지 신부님부터 지킴이 이모삼촌들까지 그렇게 많으니 얼마나 좋아.
감자야, 여기가 강정이란다. 제주에서 가장 살기 좋고 아름다웁다는 곳. 그러나 지금은 전쟁을 준비하는 군사기지를 만드느라 그 모든 자연을, 삶을, 사람의 마음을 부수어버리고 있는 곳. 지켜내어야 할 곳, 지키지 못하더라도 기억해야 할 곳, 바로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