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냉이로그 2015. 3. 23. 20:52

 

 

 

 엿새를 지냈다. 일년이 지나서야.

 

 

 내가 제주에 내려와 이곳 소길마을에 조그맣고 예쁜 집을 빌려 지낼 수 있었던 건, 피네 아저씨가 들이네에게 부탁을 하면서 그리되었던 거. 제주에 내려오기 전까지는 들이네와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었어. 피네 아저씨가 들이네에게 골칫거리 하나가 제주로 가게 될 건데 어디 지낼만한 집이 있는지를 알아봐 달라 한 거였고, 들이네 식구들은 피네 아저씨 아우가 온다니까 처음 만난 날부터 잠자리를 내어주더니, 마치 피네 아저씨를 대하듯 그 정성으로 이 골칫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꼬박 일 년이 지나도록 더할 수 없는 정과 성으로 감자네의 큰집 식구가 되어주어. 달래는 벌써 몇 번이고 들이네 식구의 정성에 눈물을 보이곤 했어.

 

 들이아빠와 소줏병을 비울 때면 더러 피네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곤 했어. 우리 사이에는 피네 아저씨가 있었으니, 그렇게 셋이 만나지 못하고 있는 걸 늘 아쉬워하면서. 들이아빠가 이렇게 좋은 아우를 만들어주어 고맙다 하면, 피네 아저씨는 난감해하면서 그 문제아를 던져주기만 해놓곤 한 번 다녀가지 못하고 있다며 미안해하곤 했어. 마치 처치곤란한 골칫거리를 짐짝처럼 보내어놓고 맡아달라고 한 것처럼 말이지 ㅠㅠ 

 

 암튼 그렇게 들이아빠와 둘이 만나도 피네 아저씨까지 셋이 있는 듯, 그렇게 일 년을 지내던 끝에 요 얼마 전 세월호 관련 일을 보러 피네 아저씨가 제주 섬으로 입도를 하게 된 거. 작업은 하루 일이었지만, 그러고 난 뒤 아저씨는 닷새를 더 머물어. 이틀 뒤에는 우렁각시 언니까지 내려오면서 들이네와 감자네, 보령 식구는 모두 모여 내내 붙어 지내면서 명절같은 오박육일을 함께.

 

 들이아빠, 그러니까 레기덩 형님은 피네 아저씨가 내려오니 마치 그 앞에서 초등 오학년 아이처럼 어찌나 귀여운 모습이 되던지. 피네 아저씨는 중학생 형아 쯤이라 할까, 레기덩 형님은 반 걸음 뒤에서 중학생 형아를 쫓아다니는 오학년 짜리 아이. 나는 모 삼학년 쯤 되는 막내처럼 까불기만 했을 거라는 건 안봐도 비디오 ㅋㅋ

 

 

   

 

 

 

     

 

 

   

   

 

 

   

 

 

 

 

 

 

 보령큰엄마큰아빠가 올라가던 날. 한무데기의 사람들이 공항으로 나가려 집 앞 정낭으로 돌아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감자어멍은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공항으로 배웅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 레기덩 형님과 나는 이 멍멍함이 얼마나 오래일까를 얘기했다. 한 일주일은 있어야 이 허전함이 덜해질까, 앞으로도 한동안은 두 사람이 계속 곁에 있을 것만 같은데. 지난 엿새는 마치 하룻밤인 양 잠깐이었던 것도 같다가 한 보름은 되는 양 오랜 시간인 것도 같은.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집에 돌아와 앉아 전화기에 찍어놓았던 사진들을 하나하나 넘겨보는데, 벌써 또 일년은 지난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해. 그렇게 보령의 큰집 식구들이 다녀갔다. 감자네 집에서는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보령큰아빠가 담가주고 간 김치를 아직도 끼니마다 우적우적 퍼먹고 있어. 이 집에 누가 다녀가긴 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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