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가라앉기 시작한 건 이 섬에 유채가 한참이던 사월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린 들판으로 그 노란 꽃들이 피어나고 있는 삼월. 곧 일 년이다. 아직 저 깊디깊은, 차가운 그곳에는.
기다리래 / 김환영
감자야, 엄마랑 아빠랑 우리 식구도 그 바다를 내려다 보는 항구 앞에 타일 한 장 그리자. 네가 태어나기 반 년 전, 아직 엄마 뱃속에 있던 어느 날, 이 섬으로 내려오는 저 바닷길에서, 얼마나 많은 언니형아들이 눈을 감았는지. 얼마나 무서운 일이 있었는지,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거기에는 너처럼 아직 엄마 뱃속에 있던 배냇아가도 있었고, 지금 너처럼 엄마 품을 파고드는 갓난아기도 있었으니.
안 그래도 봄 달력을 보면서 올 사월에는 달래, 감자와 함께 진도엘 다녀오자 하였다. 작년 그 일이 있고나서 안산에도, 팽목에도 한 번을 가지 못하고 있어. 그 일이 있던 날은 4월 16일, 그 하루 전날은 우리가 혼례를 올리던 날. 달래도 선뜻 대답을 하여, 그 날짜들에는 다른 약속을 피하자, 고 말을 하고 있던 중. 감자는 아마 그때 처음으로 제주섬 바깥으로 나가보는 게 되겠지. 한 달 정도가 남았네, 그 즈음이면 그 먼 길을 나설 수가 있겠는지. 출렁거리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지난 11월부터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 연약한 기억들을 모아 타일 그림을 그리고 있는 <기억의 벽> 활동을 하고 있는 어린이책 작가들이, 내일 모레 제주에도 내려온다.
기억이라는 건 얼마나 믿기 어려운가, 복닥조밀한 일상을 살면서 처음의 그 마음처럼 그것을 붙잡고 있다는 건 어쩌면 가능하지 않는 걸지도 몰라. 그러하기에 마음의 그 기억을 눈앞의 그것으로 실체화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할지 모른다. 흐려지기 쉬워 또다시 잃어버리고 말지 모르는 그것, 그것을 손바닥만한 타일들에 담아내는 일. 이 절망, 이 아픔, 그리고 분노어린 이 슬픔만큼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잊을 수 없다고. 그 마음을 손바닥만한 도자기편에 그려내어, 그 마음 빛바래지 않도록 유약을 바르고, 쉽게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한 번 더 구워낸다. 단단한 기억, 어쩌면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었을 그 엄청난 재앙에 대한.
동무들끼리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길을 지나다 멈춰선 시민들이, 온 가족이 찾아와 함께 한 이들이, 한 장씩 그려내어 유약을 바르고 구워낸 그 마음들. 잊지 않을 기억.
벌써 팽목항에는 그 마음의 도자기편을 모아 <기억의 벽>을 조성하는 타일 시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작업들을 모아, 참사 1주기가 되는 4월 16일 완공을 할 예정이라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그 바다의 아픔을 함께 하려는 움직임들이 한 해가 다 되도록 계속되고 있어. 여기에 어린이책을 짓고 그리는, 읽고 알리는 많은 이들이 쉼없이 그 절실한 마음을 함께 해왔다. '노란책'을 만들고, 그것을 '한뼘 걸개 그림책'으로 만들었고, 유가족과 함께 길을 걷거나 광장에서 시민들을 만나며 '노란엽서'를 만들었다. 한뼘 걸개들을 묶어 <세월호 이야기>라는 한 권의 책을 내놓았고, 그 책으로 지역 곳곳에서 북콘서트를 가져가며 가슴에 저며드는 슬픔들에 다리를 놓아. 그리고 '연장전'이 시작한 뒤로는 도자기편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면서 그 기다림의 항구에 '기억의 벽'을 만드는 일까지. 이렇게나 많은 일들이 이뤄지고 있는 동안, 어디에도 참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주로 '기억의 벽' 타일이 내려온다는 소식이 반갑고도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