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

냉이로그 2015. 2. 1. 00:52

 

 

 

 실로 한 달만에 컴퓨터를 켰다. 간간히 전화기로 인터넷 화면을 열어 이런저런 싸이트를 들러보지 않는 건 아니지만, 컴퓨터로 전원을 켜기는 꼭 한 달만에. 그러니 세상 일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점점 멀기만, 그 어떤 걸 읽고 쓰는 일에도 전혀 손을 놓아. 손에 물마를 새가 없다고 엄살처럼 말을 하곤 하지만, 물마르는 짬이 난다 하여 등을 돌리고 모니터에 얼굴을 대고 있을 짬이 없던 건 엄살만은 아니었다. 돌아서면 오줌똥 기저귀, 돌아서면 밥상 준비, 돌아서면 감자가 안아달라 팔을 젓고 있어, 돌아서면 삶아야 할 것들, 돌아서면 한 짐씩 되는 빨래. 게다가 달래가 수술을 받은 뒤로는 날마다 병원엘 다녀와야 했고, 엿기름 물을 내리는 일에, 수술부위를 소독하고 거즈를 갈아대는 일까지. 오전오후는 어떻게 지나가는지, 저녁어둠은 어떻게 내려오는지, 새벽인지 아침인지, 자다깨면 어제 하던 그 일이 똑같이 이어졌고, 달력이 숫자로 말해주는 어제와 오늘과 다음 날의 구분은 그야말로 기계적인 달력 숫자의 구분일 뿐이었다.

 

 그 사이에 서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지 못했다. 목수학교에서 함께 일을 배운 같은 조 형님의 부고를 들었다. 가지 못했다.

 

 그나마 서울에서 엄마가 내려온 뒤로는 그나마 숨을 돌리고 있어. 밥하는 거 한 가지만 엄마가 해주어도 살겠구나 싶어. 게다가 더는 감자를 안고 병원까지 함께 갔다가, 달래가 치료를 받고 나올 때까지 갑갑한 차 안에서 감자를 안고 기다리는 일은 더 하지 않아도 되어.

 

 그래서 조금 여유가 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컴퓨터를 켜거나 그래지지는 않더라. 냉이로그에는 새해 첫날, 감자의 인사 카드가 맨 마지막에 썼던 거. 그렇다고 여기에 뭘 끄적이거나 그러고 싶은 마음 같은 게 별로. 아마 예전 같으면 무언갈 끄적이면서 어떤 상념에 들거나 마음을 다독이거나 더 깊은 어떤 곳으로 생각을 흘려보내곤 하였을 텐데, 이상하게도 이젠 별로. 처음엔 그럴 짬이 없어서인가 싶었는데, 짬이 없어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아마 예전엔 무언갈 중얼중얼, 혼잣말이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아. 혼자 살았고, 혼자 지냈고, 혼자 보내야 했던 대부분의 날들. 혼잣말이라도 중얼중얼, 적적할수록 중얼중얼. 그러나 감자가 세상에 온 뒤로는 혼자일 시간이라는 게 없어. 손에 물이 마를 짬이 잠시 난다 해도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감자에게 등을 돌리고 있게 되지가 않아. 

 

 해가 바뀐지 얼마가 되었다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어느 새 감자는 백일하고도 일곱 날이 더. 날마다 같은 날들. 그러나 그게 멈춰 있기만 한 걸까. 감자알은 굵어가고, 봄은 가까이로 오고 있으니.   

 

 

 

 

 

  
 

 

 기다려야 해 / 쏭

  - <<그꿈들>> 106쪽에 있는 노랫말에 쏭님이 곡을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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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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