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안내판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글을 깨친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는 거.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실을 떠나야하지 말아야 할 것. 비록 짜집기에 불과하고 형식 자체를 내 맘껏 하지는 못했지만, 내 손으로 쓰게 된 첫 문화재 안내판.
불탑사 오층석탑 (佛塔寺五層石塔)
보물 제1187호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당로 16길 41
▣ 불탑사 오층석탑의 유래
현재 불탑사가 위치한 자리에는 고려시대 때 원당사(元堂寺)라는 사찰이 들어서 있었다. 원당사의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발굴조사 결과 12세기 무렵의 도자기와 기와 편 등이 출토된 점, 그리고 경내의 가람 배치는 물론 5층석탑의 축조형태가 고려양식을 따른 것으로 미루어보아 창건연대를 고려시대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원당사 5층석탑과 관련해서는 고려시대의 원(元) 간섭기(1270~1356년) 때 원에 공녀로 끌려갔다가 순제(順濟)의 총애를 받아 황후(皇后)가 된 기황후에 의해 세워졌다는 구전이 전해지기도 한다. 즉, 기황후가 황태자를 얻고자 수소문한 끝에 북두칠성의 명맥이 비치는 동쪽의 바닷가 삼첩칠봉(三疊七峰)을 찾아 불공을 드리면 소원을 이룬다는 승려의 말을 들었으나, 중국 대륙을 다 뒤졌어도 그러한 곳을 찾지 못하고, 결국 제주 삼양동에서 원당봉을 찾아낸 다음, 원당사와 5층석탑을 세워 정성을 다한 후에 황태자를 얻었다는 내용의 구전이다.
원당사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효종 4년(1653)에 편찬한 《탐라지(耽羅志)》에서 처음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숙종 28년~29년(1702~1703)에 제주목사(濟州牧使)로 부임한 이형상이 사찰과 신당을 없애던 때 폐사(廢寺)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14년 안봉려관(安篷廬觀) 스님이 재창건하면서 사찰의 이름을 불탑사(佛塔寺)로 바꾸었는데, 이 마저도 4․3 항쟁으로 소실된 후, 5층석탑 서편에 법당을 새로 지어 현재에 계승한다.
그러나 5층석탑만은 현재까지도 거의 원형대로 그 자리에 남아있어 보물 제1187호로 지정되었는데, 제주도에 있는 유일한 불탑(佛塔)으로, 현무암을 재질로 하여 쌓은 탑으로는 세계에서 단 하나 뿐이다.
▣ 불탑사 오층석탑의 양식 및 구조
이 석탑은 탑신부(塔身部)를 형성하며 옥개석 정상에 상륜을 장식한 일반형(一般型)이다. 지대석은 1매를 사용하여 상면에는 기단괴임을 낮게 각출하여 기단을 받고 있다. 기단 면석은 뒷면을 제외한 3면에 같은 모양의 안상(眼象)을 초각하고 그 안에 귀꽃문을 장식하였다. 기단 갑석에는 부연이 없고, 상면에 탑신괴임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1층 탑신의 남측면에 감실(龕實)을 조성하였고, 각층의 탑신석에는 우주(隅柱)를 구성하지 않았다.
이 석탑은 기단부의 구조나 1층 탑신의 감실, 탑신부 각 층의 옥개석 형태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원당사 대웅전(元堂寺 大雄典) 터
현재 불탑사가 위치한 자리는 고려시대 때 원당사(元堂寺)라는 사찰이 들어서 있었다. 원당사의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발굴조사 결과 12세기 무렵의 도자기와 기와 편 등이 출토된 점, 그리고 경내의 가람 배치는 물론 5층석탑의 축조 형태가 고려 양식을 따른 것으로 미루어보아 창건연대를 고려시대로 추정할 수 있다.
원당사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효종 4년(1653)에 편찬한 《탐라지(耽羅志)》에서 처음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숙종 28년~29년(1702~1703)에 제주목사(濟州牧使)로 부임한 이형상이 사찰과 신당을 없애던 때 폐사(廢寺)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14년 안봉려관(安篷廬觀) 스님이 재창건하면서 사찰의 이름을 불탑사(佛塔寺)로 바꾸었는데, 이 마저도 4․3항쟁으로 소실된 후, 5층석탑 서편에 법당을 새로 지어 현재에 계승한다.
이 터는 원당사(元堂寺) 창건 당시 대웅전(大雄典)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 결과 현재 6기의 초석과 4기의 적심석을 확인하였고, 동남쪽에서 계단지로 보이는 유구가 나타났다. 확인된 초석들의 거리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평균 주간거리는 3m, 좌우협칸은 1.8m이며 최소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이 남향을 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초석의 평균 크기는 직경 60cm의 불규칙한 원형 또는 방형 모양을 하고 있다. 적심석은 평균 1m 크기로 나타나는데 각각의 축조방법은 일정하지 않아서, 작은 잡석으로 채워놓은 것과 비교적 큰 돌을 둘러만든 것이 혼재되어 있다.
건물지의 서편에는 돌담이 둘러져 있는데, 발굴조사를 하면서 돌담의 일부를 들어내고 시굴조사를 한 결과, 돌담 축조 당시 가장 아랫부분을 기와편으로 채워놓은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2열의 석렬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배수로로 보이는 유구로 보여진다.
원당사 요사채 터
현재 불탑사가 위치한 자리는 고려시대 때 원당사(元堂寺)라는 사찰이 들어서 있었다. 원당사의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발굴조사 결과 12세기 무렵의 도자기와 기와 편 등이 출토된 점, 그리고 경내의 가람 배치는 물론 5층석탑의 축조 형태가 고려 양식을 따른 것으로 미루어보아 창건연대를 고려시대로 추정할 수 있다.
원당사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효종 4년(1653)에 편찬한 《탐라지(耽羅志)》에서 처음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숙종 28년~29년(1702~1703)에 제주목사(濟州牧使)로 부임한 이형상이 사찰과 신당을 없애던 때 폐사(廢寺)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14년 안봉려관(安篷廬觀) 스님이 재창건하면서 사찰의 이름을 불탑사(佛塔寺)로 바꾸었는데, 이 마저도 4․3항쟁으로 소실된 후, 5층석탑 서편에 법당을 새로 지어 현재에 계승한다.
이 터는 원당사(元堂寺) 창건 당시 요사채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지형적으로는 계곡부에 위치해 있어, 건물지가 위치한 곳은 2단 대지이며, 건물지 둘레로 석축시설을 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현재 직경 0.7m 가량의 초석 2기와 직경 1m 가량의 적심석 2기를 확인하였다. 현재 확인한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 이상으로 보이며, 서쪽을 바라보며 남북 방향으로 길게 자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