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턱

냉이로그 2014. 5. 14. 06:24



 요즘은 일하는 것으로만도 움직여다니는 동선이 아주 길다. 초반에는 거문오름이 있는 곳으로 해서 만장굴과 김녕, 월정 바닷가 쪽에서만 두 달여를 보내었는데, 요사이에는 며칠 간만 해도 중문의 주상절리대로, 한라산 영실로, 그리고 어제는 표선의 성읍마을을 다녀왔다. 성읍 마을에 가면 곱고 찰진 진흙이 있다 하여, 흙을 알아보러 갔던 길. 

 성읍에 가서 흙을 만져보고, 흙 주인을 만나고, 작업을 함께 해줄 마을 분을 만나고 돌아나오는 길에 읍성 안에 있는 불턱엘 잠깐 들렀다. 여기도 두 해 전, 달래와 함께 신혼여행길로 제주에 왔다가 만나게 된 곳. 당시 우리는 신혼여행이었고, 게다가 나는 제주가 처음이었건만, 아무래도 여행다운 여행은 아니었다. 강정으로 하루를, 신부님이 계시던 병원으로 하루를, 안덕의 돌돌이 누나를 만나러 하루를, 그러곤 또 하루를 들러본 곳이 성읍민속마을. 혼례를 올리던 그 봄에도 나는 여전히 보수기술자 2차 시험을 재수하고 있었고, 제주에 내려갔으니 풍경이 좋다는 어디, 어디 보다는 제주의 초가들을 마음껏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더랬다. 그래서 하루 일정을 성읍으로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미 달래는 건물 답사 다니는 거를 같이 따라다니면 얼마나 지겹고 피곤한지를 알아. 그 전에도 몇 차례 여행삼아 답사 같이 가자는 말에 솔깃하여, 따라 나섰다가는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몇 시간을 걷기만 하며 그게 그거 같아 보이는 건물들을 찾아 헤매는 그거에 고개를 절레절레 하고 있던 거. 

 그래서 신혼여행길의 마지막 날 그 하루는 일단 성읍엘 같이 가서, 새신랑은 혼자 답사를 돌았고, 새신부는 혼자 아무런 찻집에라도 들어가 있겠다며 나누어 시간을 보낸 거. 그때 달래가 찾아 들었던 곳이 성읍민속마을 안에 있던 불턱이라는 찻집. 신혼여행씩이나 와서 신부를 혼자 두고 돌아다니려니 마음은 또 얼마나 무거웠겠나, 서너 시간이 지나 미안한 마음을 안고 그리로 찾아갔더니, 뜻밖에도 달래는 얼굴이 아주 밝았다. 까페도 마음에 들고, 커피도 맛이 좋아 아주 좋았다는 거. 그 까페 주인도 목수라나, 제주가 좋아서 부부가 함께 내려와 뚝딱뚝딱 안팎을 꾸며 찻집을 하고 있다는 거. 그때 그곳을 다시 찾으니, 그때처럼 달래가 찻집 안에서 환하게 반겨줄 것만 같아.  



 찻집 바깥에 있는 쓰레기 소각 깡통.



 제주에 내려와 석 달이 되어가도록 성읍엔 아직 한 번을 가지 못하다가, 흙을 사러 내려가는 길에, 그 기억이 나서 잠깐 그 찻집을 찾았다. 그런데 열한 시가 넘었건만 아직 찻집 문은 열지를 않아. 들어가서 잠깐이나마 앉아볼까 했건만, 밖으로만 빙빙 돌며 주인장의 섬세한 손길만 구경하다가 돌아나왔다. 두 해 전에도 나는 그 집 커피맛을 못봤고, 이번에도 또 허탕이니 아직 커피 맛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ㅋ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으니 부랴부랴 길을 달려 삼양에 있는 불탑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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