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삼

냉이로그 2014. 4. 4. 09:37



 제주에서 사삼을 맞았다. 스무 살, 대학에 들어가 처음 들으면서 쉽게 믿어지지 않던 그 학살이며 항쟁의 자리. 평화공원에서는 일만 명이나 모여 추념식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 시각 나는 월정리의 돌담들과 씨름을. 어제까지만 해도 봄햇살이 노랗게 내리기만 하더니, 아침부터 하늘로 웅웅, 바람소리 거세었다. 퇴근시간까지 헉헉거리며 일을 마쳐놓고, 또다시 현부장님에게 부탁, 다랑쉬엘 데려다 달라 하였다. 그렇게라도, 이 땅에서 스러져간 넋들께 인사라도 하고 싶어. 

 




 처음에는 혼자 가려고 했으나, 혼자 가서는 굴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길을 같이 나서주어. 다랑쉬 오름이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니 네비게이션을 길잡이로 삼을 수 있지만, 오름을 오르는 게 아니라 당시 스러져간 넋들이 목숨을 잃은 동굴까지는 네비라도 알려주질 않아. 현부장님은, 자기도 그 동굴에 가본지가 오래라며, 잘 찾을 수 있을까 하며 동행해주었다. 


 

 

 

 


 다랑쉬 오름 주차장을 지나면 지금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잃어버린 마을 - 다랑쉬 마을이 나온다. 그저 흔적으로만 집터와 우물터가 그곳에 마을이 있었음을 증언해주고 있는. 현부장님은 다랑쉬 마을 앞을 지나면서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며 어느 길로 접어들어야 하더라…… 하며 둘레를 살피는데, 조금 떨어진 자리에 조그만 이정표들이 있어. 아마도 사삼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이 그 길을 뒤따르는 또다른 이들에게 길눈을 밝혀주고자 세워둔 모양이었다. 마을 자리에서 삼백여 미터를 더 들어간 자리. 바슬바슬 무꽃이 한참인 돌모래밭을 지나고, 대숲과 억새를 지나.  







 당시 군과 경, 토벌대의 살상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든 해안가 사람들. 우리가 일하는 현장 가까이가 바로 김녕이고 그 아래로 월정과 행원, 세화, 하도, 종달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먼 데서 온 사람들이 감탄을 마지않는 바다가 펼쳐진다. 이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역시 미친 피바람을 피해가지를 않아. 행원리에서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 이십여 채를 불사른 뒤 열 명 가까운 사람들을 총살. 그랬으니 하도리와 종달리에 살던 바닷가 주민들이 그 난리를 피하기 위해, 세화리에 있는 가까운 중산간인 다랑쉬로 들어온 거였다. 마침 그곳에는 몸을 숨길 수 있는 조그만 자연 동굴들이 있어.  

 

 

 




 현부장 말처럼, 혼자 왔더라면 어디가 굴이고, 어디가 그 슬픈 자리였을지 제대로 알지 못했을지 모른다. 굴처럼 보이는 것에도, 설마 저 안에서 그 여러 사람들이 들어가 지내었을까 싶기도 했고, 사람들이 몸을 숨긴 굴은 하나인 것도 아니었다. 들어가보라고, 들어갈 때는 기어들어야 하지만 들어가면 사람 키 정도 되는 공간이 나올 거라고. 그래서 등에 땅을 대고 발을 뻗어보았지만, 지금은 그 입구를 막아놓았어. 





 토벌대는 이 굴 안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굴 바깥에서 불을 피웠다. 그 안에서 몸을 피하고 있던 주민들은 서서히 연기에 숨이 막혀 목숨을 잃어. 그렇게 죽어간 이들 가운데에는 어린아이도 하나 있었고, 여성도 셋이나 되었다고 하는. 살아남은 유족들은 그걸 알고서도 시신을 수습하러 가까이 갈 수도 없어. 그러고는 강산이 네 번도 더 바뀐 구십년 대 들어서야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 는. 







 준비해 간 것은 달랑 막걸리 한 통이었다. 향도 초도 없이, 북어포 하나 없이 우리끼리 차려놓은 조촐한 제삿상. 돌아가며 막걸리 한 잔식을 받아, 이 자리에서 스러져간 넋들에게 고시레를 하고는 두 번 반 절을 올려. 잃어버린 마을이라 표지판이 서 있는 다랑쉬마을 터에도 굽고굽은 팽나무가 스산하게 서 있더니, 숨져간 넋들이 마지막으로 몸을 피한 그곳에도 팽나무가 스산하였다. 바람이 세게 불어 더 그랬을까, 잎을 다 떨구고 있는 팽나무는 언제나 쓸쓸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제주 시내 곳곳에 사삼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었다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그리고 넘쳐나는 화해니 평화니 하는 말들. 그러나 넘치면 넘칠수록 그 말들이 공허하다. 사삼의 학살은 이 섬에서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지를 않은지. 살상을 위한 전쟁기지, 이 섬 사람들의 삶의 터전과 자연을 망가뜨려 동북아를 거머쥐기 위한 제국의 거점 기지를 만드느라 혈안이 되어 있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사삼은 끝나지 않고 진행중이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다고 하여 화해가 되고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이 섬의 남쪽, 강정의 저 바닷가에서 자행하고 있는 전쟁준비를 멈추지 않는 한, 이 섬에 평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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