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드시 순한
필수니 필승이니 하는 말들. 그 앞에 붙는 '필'자가 나는 영 거슬리기만 했다. 반드시 무얼 해야 한다니, 나같은 제멋대로에게 그 얼마나 숨막히는 소리들인지. 아! 그런데 그 뒤에 '순'을 더해 필순이라니. 그 언니가 한자로 그렇게 쓰는 건 아니겠지만 필순이라는 이름에서는 그저 사로잡히고 말았다. 반드시 순한, 반드시 순해야 하는, 순하기만 할 것 같은 그 이름.
언니의 주옥같은 명곡들이야 이미 각자의 마음 속에 꽤나 여럿이 되겠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빨간자전거 타는 우체부를 첫손가락으로 꼽아.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꽤 여러 해 동안 집배원이 되고 싶다는 로망을 품으며, 실제로도 그 일을 하고 싶어 여러 우체국에 말을 대놓고 기다리던 날들이 있다. 요즈음도 길에서 집배원 아저씨들을 마주치면 그 빨간색 오토바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도카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곤 해. 편지를 부치는 일, 그리고 편지를 기다리는 일, 그처럼 설레는 일이 세상에 더 있을까.
2. 새는 물처럼
얼마 전 달래가 달라와 함께 세종문화회관으로 언니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둘이서만 표를 끊어놓고, 서울서 일박할 숙소까지 잡았다는 얘기에 나는 살짝 삐짐. 둘이서의 서울 여행에 끼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필순 언니 좋아하는 거는 익히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 공연엘 나 빼고 자기들끼리 갈 수가 있냔 말이지.
그리고 그 가슴 텅 비울 수 있기를 / 장필순
공연이 시작하고 첫곡을 부르는데, 달래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더란다. 게다가 첫곡은 귀에 익지 않아 아주 처음인 듯한 한 노래인데도, 새는 물처럼 눈물이 나와 기분이 이상했다고. 그건 달래만 그런 게 아니, 옆에 앉아 있던 달라도 저처럼 눈물을 직 흘리고 있더라지. 그나마 달래는 새 앨범 가운데 몇 곡을 다운받아 출퇴근길마다 듣고 있었지만, 달라는 거의 다 처음 듣다시피 하는 거라는데도 그러더라지. 공연이 끝나고, 달래는 나를 빼놓고 간 게 미안하여 싸인이라도 꼭 받아다주겠다고 길게 이어진 줄에 가서 차례를 기다렸고, 그렇게 하여 싸인을 받고 나올 때까지도 달라는 창 밖을 내다보며 계속 기분이 이상하다 하더래. 왜 그렇게 눈물이 나고 그랬는지, 이게 어떤 걸까, 뭘까, 싶다면서……. 그러니 그 공연이 얼마나 좋았을지. 다음엔 나도 꼭!
그렇게 하여 공연을 보고 나와 '반드시 순한' 언니에게 받아온 싸인 씨디.
그런데 씨디 속지에 보면 달래, 냉이 이름이 한 번 더 나온다. 그래서 그 순한 언니도 싸인을 해주면서 옆에 있는 분을 보고 얘기하며 웃더래. 우리 집 강아지들하고 이름이 똑같네요, 하면서. 하하하, 그래도 괜히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