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냉이로그 2013. 11. 19. 19:24




 수업을 들으러 토요일 용인에 올라가, 거기에서 에게해로, 에게해에서 절애 오두막으로, 그러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니 냉이 한 소쿠리가 있다. 주말에 달래가 학교 돌봄 선생님 집엘 놀러갔다 캐왔다는 거. 
 

 

요거이 냉이표 냉이무침.



 달래는 어젯 저녁부터 한숨을 푹푹, 아침에 눈을 떠서도 한숨을 푹푹. 괜찮다고 해도 자꾸만 한숨을 푹푹 쉬는데, 그러니까 그게 엊저녁 퇴근하여 차를 세우다가 주차장에 서 있는 뒷차를 조금 받은 일 때문이었다. 더러 나는 달래를 주차 오타쿠라 놀릴 정도로 달래는 아주 반듯한 칼주차에 집착을 하는데, 어제도 그 칼주차를 하려고 앞으로 뒤로 찔끔찔끔을 하다가 그만, R에 있는 기어를 D로 바꾸지 않고 악셀을 밟았다가 그대로 뒷차를 쾅! 한 모양. 다행히도 큰 사고는 아니었고, 뒷차의 번호판이 조금 눌린 정도였지만, 달래는 아무래도 그 일이 자꾸만 생각나는가 봐. 

 달래의 기분을 풀어주는 법은 딱 하나! 아무리 기분이 나쁠 때도 맛있는 거를 먹으면 싹 풀리는 신기한 메뉴얼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달래가 캐다놓은 냉이를 씻고, 데치고, 된장에 무쳐 냉이무침을 해놓고 퇴근을 기다려. 띠리리 현관 문이 열리면서부터 달래 얼굴이 환해지는데, 창문을 꼭꼭 닫고 있었더니 집 안에 냉이 향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그러고는 밥상에 앉아 마시따, 마시따, 진짜 마시따를 연발하며 리듬을 타며 밥을 먹어. 아하하, 달래 기분 좋게 해주는 일은 참 쉽기도 하지, 요거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 할 줄이야. 그러나 달래는 알고 있을까, 요거 하나에 그토록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더 행복하다는 것을. 

 



  햇살은 따뜻해 / 루시드폴


 달래가 우울할 땐 맛있는 걸로, 
 냉이가 우울할 땐 달래가 우껴주는 걸로, 
 그걸로도 얘네 둘은 바보처럼 웃게 된다.
 그거면 언제나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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