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측

냉이로그 2013. 11. 14. 23:47



 한옥설계 수업의 이번 과제는 각자 건물 하나씩을 조사하여 발표하는 거. 무얼 할까 하다가 고른 것이 정경세 선생의 우복종가 아래에 있는 대산루. 이 건물은 흔치 않게 T자형 평면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평면의 독특함보다 더 매력을 느끼게 한 것은 누각 위에 온돌방을 들였다는 것. 
 

 뒤편에서 바라본 전경.

 정침 전면과 누각 앞쪽의 누마루.  


 사실 건물 하나를 택해 조사하고 발표하는 거야, 우리 수업의 수준이 크게 높지 않기에 어느 거라도 적당히 하나를 택하면 될 일인데, 이 건물을 고르면서 염두에 둔 것은 다음 번 과제였다. 교육생들이 가상의 필지를 하나씩 나누어 받아, 그 안에 저마다 한옥 한 채씩을 설계한 뒤, 그것들로 이른바 한옥마을을 만든다는 것인데, 나로서는 신축을 위한 설계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보질 않았으니, 다음에 해야 할 그 과제가 영 부담스런 일로 여겨지던 터였다. 

 기왕에 신축 한옥을 설계하는 일이라면, 이참에 내가 살고 싶은 집, 내가 지어보고 싶은 집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러자니 기존의 것 하나를 조사하라는 이 과제도, 새로 설계할 집의 모티브로 삼을 수 있을 만한 건물로 택하는 게 좋겠다 싶어. 

 앞마당과 뒷마당을 자연스레 가를 수 있는 T자형의 평면, 그리고 누각 2층에 온돌방과 누마루를 동시에 구성하여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 누각 아랫층에 만들어질 가슴 높이의 아궁이는 그 내부의 공간을 위해서도 활용……. 정침 공간은 춥고 불편함이 싫은 아내와 아이가 지내는 곳으로 기밀성을 높이고 현대식 내부공간을 갖게 한다. 누각의 상층은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온전한 작업 공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누각의 하층은 술을 먹는 곳, 밥을 먹는 곳, 음식을 만드는 곳, 말하자면 어느 대폿집과 같은 입식의 식당. 그렇게 하면 2층 구들을 위한 아랫층의 가슴 높이 아궁이가 대폿집 벽난로 같은 것이 되어줄 수 있을까.  

 막연할 뿐이지만, 상상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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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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