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부대행사로 나흘간 펼쳐진 원썸머나잇, 그 마지막 무대를 보러 청풍호반엘 다녀왔다. 이로써 나는 두 번째, 달래는 세 번째 그 호숫가 축제엘 참가하고 있어. 해마다 여름, 이 영화제가 열릴 때마다 더 눈여겨 보는 거는 영화 프로그램이 아니라, 호숫가 공연에 어떤 뮤지션들이 내려오는지가 더 관심사가 되고 있어. 이번엔 일정이 되질 않아 어차피 마지막 밤 공연 밖에 가볼 수가 없기도 하였지만, 운이 좋게도 무대에 오르는 라인업은 그 마지막 날이 가장 좋은 편이었다. 옥달과 진트, 그리고 십쌘. 사실 나는 그리 열광하는 편은 아니지만, 달래는 일부러 서울, 대구로 콘서트장을 쫓아다닐 정도로 좋아하는 밴드들.
옥상달빛이 무대에 올랐을 때. 갠적으로 나는 시종일관 무표정에 웃긴 얘기를 잘하는 멜로디오니스트 박세진을 조아해. 뿜뿜뿜.
이날은 무대에 올라온 밴드들이 그래서겠지만, 객석의 관중들이 너무나도 얌전했다. 달래도 이 무대 앞에서는 얌전. 몇 해 전, 처음 달래를 따라 공연장에 갔을 땐, 어찌나 신기하던지. 스탠딩이 시작하자마자 무대 맨 앞까지 저 혼자 비집고 달려들어가더니, 같이 간 나는 아예 잊기라도 한 듯, 공연이 다 끝나고 나서야 땀에 흠뻑 젖어 돌아왔다. 어디 마라톤이라도 뛰고 온 사람 모양으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대로 비옷을 입고서라도 뛰고, 춤추고, 소리치고. 지난 번 제천 공연 때가 그랬더랬다. 이 날도 밤에 소낙비가 내릴지 모른다 하여 비옷을 챙기기도 했건만, 다행히 별이 총총한 밤이었어.
암튼 이날 무대엔 잔잔한 밴드들로만 채워졌기에, 달래가 포텐을 터뜨리며 열광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호숫가에서 불어온 바람은 서늘하였고, 만날 유에스비에 꽂아 듣던 노래들을, 그렇게 생으로 듣는 즐거움 또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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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내가 좋았던 거는, 공연이 시작하기 전, 그 호숫가 무대에서 상영한 영화 《우드스탁의 추억》. 집에서 나설 때 미적거리느라 청풍호반에 닿았을 때는 영화 앞부분이 벌써 지나가고 있었다. 실은 애초부터 영화보다는 공연이 보고싶었던 터라, 어떤 작품을 상영하는지, 제목도 모르고 가서 본 거이기는 한데, 그렇게 우연히 보게 된 이 영화는 아주 엄청난 거였다. 1969년, 뉴욕 주의 한 농장에서 나흘간 열린 락페를 기록한 영화. 거기에서 내가 본 것은 헐벗은 반란, 환희에 찬 비명, 전방위적인 혁명.
이천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나는 탈체제와 탈권위, 탈중심의 자유로운 에너지를 옹호하는 매력적인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었더랬다. 아니, 그이들을 굳이 활동가라거나 예술가라 칭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오롯이 자유로운 영혼이고자 하는 개개의 아나키들. 그러나 아나키를 표방하는 이들 안에서도 아직은 어색한 어떤 것과, 아직은 가닿지 못한 어떤 것이 무언가 아쉽곤 하였더랬다. 어쩌면 아나키라는 것은, 그것을 어떤 사상으로 삼고, 어떤 주의로 자리매김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의 영혼을 그야말로 발가벗어 놓는 것.
우드스탁을 만난 건 나에게는 정말 충격이었다. 프랑스의 68에 대해서는 감동하기를 자주하였으면서도, 뉴욕에서 있었던 69년의 그것에 대해서는 이제껏 왜 알지를 못했을까. 아아, 그 60년대의 끝자락, 지구에는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었구나. 그 어떤 체제도. 질서도, 검열도, 통제도, 차별도, 억압도, 맨몸뚱이가 되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움을 꿈꾸었던, 그 발가벗은 영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