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엘 다녀왔다. 시내로 들어서 역 앞을 지나면서부터 지난 가을겨울을 날마다 다니던 출퇴근길이 익숙하게 들어와. 불국사에부터 먼저 들러 석가탑엘 올라. 그 사이 노반과 삼층 옥개, 탑신, 그리고 지난 주 이층 옥개를 들어 사리함까지 들어내고, 이젠 이중의 기단과 일층 탑신과 옥개만이 남아있었다. 석가탑 현장의 덧집과 그 아래 컨테이너 사무실, 그리고 함께 일하던 얼굴들.
그리고 경주에서 모여 만난 울진에서 맺은 인연들. 나 뿐이 아니라 당시 울진서 함께 지내던 많은 이들이 근무지가 바뀌면서 뿔뿔이 떠나있었다. 그러니 그 몇 해가 지나도록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만나지를 못해. 혹여나 그 시간을 훌쩍 건너온 틈으로 작은 어색함 같은 게 끼어들지나 않았을까 싶기도 했으나, 마음은 오히려 더 편안하고 보드라웠다. 어른 열하나에 아이들 여섯. 아이들은 몰라보게 컸으나, 어른들은 그 때 그 얼굴, 그 모습 그대로. 물론 왜 아니늙었겠냐만은, 나이 들어가기를 그 정도만 한다면야 그도 복이겠다 싶은.
주말에 어디 멀리엘 다녀온다는 게 부담이기는 하였지만, 경주는 좋았다. 굴 속 시간의 끝자락을 보내던 불국사의 석가탑, 그리고 그 컨테이너엘 다시 가볼 수 있어 좋았고, 그리운 어느 한 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 얼굴을 마주하며 이젠 늙어 술도 예전같지 않음을 확인하는 것도 좋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가 있었다면 하늘을 온통 분홍으로 물들이고 있을 경주 벚꽃을 만끽하고 싶은 거였는데, 하필이면 그 주말이 비바람에 검은 하늘을 하고 있는지라. 맘껏 꽃을 보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웠으나, 경주에서 영월까지 올라오는 길, 부러 고속도로를 피해 포항, 영덕, 청송, 안동으로 이어지는 길로 돌고 돌아. 그 길에서 잠깐 영덕에 내려 바다 위를 걸었으니, 또한 그것은 뜻하지 않은 큰 선물이 되었다.
그 덕에 쉬지를 못하고 주말을 보내. 돌아오는 한 주가 걱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경주에 다녀오긴 잘 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