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에 잠에서 깨어. 벌써 일어날 때가 되었을까. 눈을 떠야할 시간에 알람을 맞춰놓곤 있지만, 언제나 알람 소리가 울리기 전에 잠이 깨어. 전화기를 더듬어 시계를 확인하니 두 시 반도 채 되지가 않아. 좀 더 자자, 뒤척이고, 이불을 말아 이리저리 몸을 굴려보다가 그것도 포기. 책상 앞으로 올라앉아 창을 열고 담배를 물었다. 오늘 날짜를 보고, 버릇처럼 그 날짜의 그 때 그 시간으로 잠겨들다, 혹시나 싶어 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아드는 배경음이 딱 보니 술자리네. 그 새벽까지 싸바와 같이 술을 먹고 있다나. 까페 샤에는 손님들이 다 가고, 자기들밖에 남질 않아 허클베리핀 멤버들과 같이 넷이서 놀고 있다고. 한껏 업이 되어 써프라이즈를 연발. 그러게 신기하기도 하지, 나도 이 신새벽에 잠이 깨어서는 너들이 같이 있던 어느 장면이 떠올라, 한참을 거기로 가 있던 참이었는데. 어렵게 비자를 마련해 칼같은 긴장 속에서 1차 입국을 마무리해가던 그 즈음.
2.
어제도 술을 한 잔을 하기는. 그런데 술 몇 잔에 일찍부터 눈이 감겨 별로 파이팅을 하지는 못해. 하긴, 저녁밥 먹으러 가기 전부터 이미 어디라도 머리 좀 대고 눈을 붙였으면 싶었으니. 그래도 어쩌다 만들어진 직원들 술자리여서 아주 빼지는 못하고, 1차까지는 함께 했지만 한 잔 더 하자는 말에는 귀막고 못들은 척, 숙소로 들어와 그대로 뻗었다. 술을 많이 먹은 거는 어제가 아니라 그 전날 밤. 숭례문 복구공사 대장정을 마치고 휴식에 들어간 종남이 형이랑 물건너 일본에서 전통건축 공부를 하고 있는 석현씨가, 둘이서 죽이 맞아 답사를 다니다가 풍기로 찾아와. 낯선 고장서 외로이 지내다 반가운 이들이 찾아드니 얼마나 환해지던지.
둘이서는 벌써 나흘째. 강원도 고성의 왕곡마을부터 해서 삼척의 대이리에 남은 민가들, 신리의 너와집, 그리고 경북 봉화, 현동, 분천에 남아있는 구석구석의 겹집들. 아, 설매리 3겹 까치구멍집도 직접 보고 오니 그리도 좋았다 했던가. 술자리에서도 온통 집 얘기들 뿐이다. 하여간 나사 하나씩 풀린 건축쟁이들 같으니라구. 두 사람 답사 길에 끼어 같이 다녔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나로서는 배울 것들이 참 많은, 이 길의 선배들이다. 그 술자리에서도 담날 현장에 나갈 생각에, 막잔까지 다 털고 일어서진 못했지만, 암튼 이리로 내려와 첨으로 그렇게 술을 먹었다. 깊어진 술자리가 좋았던만큼 어제 하루는 현장에 나갈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그리도 맥을 못추고 있던 거겠지만.
3.
봄이다. 그래도 이른 새벽엔 차창에 성에를 긁어내고 나서게 되지만, 오전 참도 되기 전에 겉옷들을 한꺼풀씩 벗어놓게 되는. 언땅들은 녹아 걸음마다 안전화에 흙이 한 줌씩 묻어나와. 겨우내 중지 명령이 떨어져 멈추어섰던 공사판에도 칠십 노인, 미장들 흙손이 바빠졌다. 어디는 꽃으로 봄을 맞고, 누군가는 냄새로 봄을 맡고, 또 어디는 이르게 지저귀는 새소리며 얼음뚫고 흐르는 개골창 소리로 봄을 듣겠지. 노가다 현장에도 봄이 왔다. 얼지말라고 덧쒸워놓았던 우장막을 시원하게 뜯어내. 이젠 알매에 보토 흙반죽 얼어버릴 걱정 없으니 꽁꽁 묶어두던 현장에 흙비비는 손이 바쁘다. 공사판에만 봄이 온 거 아니라고, 그 앞 길로 할머니 한 분 나물 한 짐 등에 지고 가더라. 상주 현장 나흘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