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겨레 21 평택 캠페인 기사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솔직히 김지태 이장님 석방 소식을 본 뒤로 한동안 평택범대위홈페이지에 잘 들어가보지 않았기에 그간의 일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떠날 테니 세 가지 들어달라” 라는 기사 제목 앞에서 아! 하는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떠나는 것을 전제로 그 어떤 협상이 진행되고 있구나…… 하는. 주민들이 말하는 세 가지 조건이라는 것은 1. 그동안 국방부가 주민들에게 강압과 폭력으로 저질러온 짓들에 대한 사과 2. 평택을 지키는 일로 기소되어 재판 중인 사람들이나 벌금형을 받은 이들에게 대한 사면 3. 주민들의 공동체를 보존할 수 있도록 보장(지금 살고 있는 대추리 4만평에 이르는 땅을 마련해주어 그곳에서 다시 마을을 이루어 살 수 있도록 보장) 들이었다. 물론 이러한 제안들도 국방부가 과연 선뜻 받아들일까 싶기도 하지만, 그러한 조건이 만족하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건가… 싶었다.


평택을 지키는 일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의미를 두기에 따라 아주 여러 차원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가 그곳 사람들의 삶과 평화를 지켜내는 것 하나와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주한미군재배치’로부터 한반도를 포함 동북아의 평화를 지켜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절박성으로 따지자면야 어느 것이 선이고 후다 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당장 살갗으로 느껴지는 것이 앞의 것이라면 더 커다란 위기감으로 여기고 있던 것은 뒤의 것이었다.


그런데 평택 주민분들이 국방부와 하는 협상에 나섰다는 기사를 보면서, 떠나는 것을 전제로 세 가지 조건을 걸었다는 것을 보면서 짐짓 놀란 마음이 되었다. 만약에 국방부가 그 조건을 들어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럼 계획대로 평택 들판은 신속기동군과 정밀타격대 따위로 재편한 미군의 전쟁기지가 되고 마는 건가? 그건, 그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하면서 말이다.


솔직히 말해 뻔뻔스럽게도 나는 평택 주민들이 끝까지 그곳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 이렇게 쓰고 나니 내 자신이 더 뻔뻔스럽구나.) 3년 넘게 그 모진 협박과 탄압 속에서 낮에는 밭을 일구고, 밤에는 촛불을 들어온 주름 굵은 그곳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 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국방부가 둘러싸기 시작한 뒤로만 해도 벌써 몇 분이 돌아가셨다지. 무너지고, 끌려가고, 당신 살과 같은 논밭이 파헤쳐 지는 것을 보며 가슴을 졸였을 그 시간들……. 고작 얼마의 캠페인에 참여하고, 고작 얼마의 후원금을 거두고, 고작 몇 차례의 행사에 참여해왔을 뿐이면서, 그 엄청난 짐을 그 분들에게만 지우려는 마음이라니.


그래, 주민 분들이 그러하실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평택 땅은 동북아 전쟁 요새가 되고 마는 건가, 하는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어디에도 묻지 못하고 있던 차에 프레시안에 오른 문정현 신부님의 글을 보았다. 그리고는나도 모르게 ‘아!’ 하는 신음 같은 게 다시 터져 나왔다. 그래, 다 접는 것은 아니구나, 제국의 전쟁에 맞선 평택 평화의 싸움을 다 접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랄까, 혹은 깊은 믿음 같은 것. 그 글에서 문 신부님도 “나는 주민들에게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셨다. 지난 3년 동안 주민 분들의 아픔과 눈물을 함께 해오고 계시면서 그게 얼마나 가혹한 말인가를 누구보다 잘 아실 테니 말이다. 그에 이어 신부님은 "이제 우리가 주민들의 뒤를 이어 싸워야 한다"며 결코 평택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더 많은 평화세력이 나서 평택을 지키자고 말해준다.


그곳에 가 있는 지킴이들 얼굴이 하나 하나 떠오른다. 아는 얼굴들, 사진으로만 본 얼굴들, 게시판과 블로그에서 마음을 뜨겁게 하는 하루하루의 글을 적어오던 얼굴들……. 미안함과 고마움, 비록 그곳에 몸으로 가 있지는 못하지만 사는 자리에서나마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부끄러운 연대감이 가슴에 한데 뒤엉키는 것 같다.


(앞으로는 얼마나 더 혹독한 시련들이 있을까? 그 동안에도 그곳을 지킴이들에게는 ‘불순세력’이라는 말을 덮어 씌우며 온갖 못할 소리들을 해댔는데, 만약 주민 분들 없이 지킴이들만의 싸움이 된다면 그 얼마나 지독한 탄압이 있게 될까?)

[한겨레21] 평택 캠페인 - "떠날테니 세 가지 들어달라" 2007. 1. 11
[프레시안] 문정현 신부의 호소 - 대추리 투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2007. 1. 18

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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