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깨
몸은 안 바쁘면서 마음만 바쁘다. 또 바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목수학교 들어가 전까지 이것 저것 해 놓아야할 것들, 작업실 짐 싸서 집으로 옮겨야 할 것들, 다녀올 몇 곳… 하지는 않으면서 언제 하나, 언제 하나, 이걸 다 언제 하나 하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는 아파오고 초조, 긴장, 불안, 걱정에 어깨만 뭉쳤다. 엄마는 늘 신경쓰는 일이 있으면 뒷목으로 해서 어깨가 돌덩이처럼 딴딴해졌다고, 팔을 들 수 없을만큼 아프다 하곤 했는데 그게 이런 건가 보았다. 하나하나 했으면 그만큼 마음이 가벼워 몸도 가벼워졌을 것을, 하지는 않으면서 언제 하나, 언제 하나 하며 술만 먹는다. 정말 한심스런 삶의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쯧쯧.
2. 일주일
다행이라 해도 되는 건지,입학일이 학교 사정으로 해서 일주일 뒤로 미뤄졌다. 평창 교정에도 새로 배울 사람들을 모집한다는데 아마 그 준비와 맞추느라 그리 된 것 같다. 달력에 몇 개 안 남은 날짜 생각에 어깨 돌덩이만 딴딴해지고 있었는데, 그 얘기를 들은 다음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그런 뒤 작업실 책짐도 거의 다 싸서 날라두었고, 목수학교 들어가기 전 꼭 한 번은 들려가라는 목수 선배 최목수 아저씨의 여수에도 돌아돌아 다녀왔다.(백야도에 다녀와서) 그리고 또 먼 길과 긴 이야기와 기쁘고 고맙고 설레고 행복한 이야기들. ‘무척이나’ 술을 마셨다. 여기에서 ‘무척이나’는 부활의 노래 <비와 당신의 이야기> 노래 클라이막스 부분에 나오는 ‘무척이나 울었네’ 버전의 그 ‘무척이나’이다.
3. 괜찮아
목수학교에 들어갈 일, 얘기 나눠주시는 분들 앞에서는 조금씩 달리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겁을 내고 있는 게 맞다. 걱정이라 말을 대신해도 좋고, 불안이라 해도 좋다. 초조나 긴장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어깨 돌덩이 딴딴을 말하며 쓴 그것들 다. 여전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은 자신없음이 그렇고, 일 재주로가 아니라도 힘을 쓸 줄 모르는 걸로도 그렇고,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할 막사의 합숙 생활 같은 것도 그렇고, 그 밖에 내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올빼미 늦잠에 낮잠, 마음대로 뒹굴거리기, 아무 때나 술먹기,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미치도록 무언가 쓰고 싶어져 파묻혀 글쓰기…)를 못할 것도 그렇고. <<라디오 스타>>에서 안성기가 자주 하던 대사 “릴렉스, 릴레엑스”를 주문처럼 되뇌이면서 혼자 웃기도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4. 어리둥절
그에 대한 얘기로 참 많은 분들이 생각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너 같은 애가 무슨 목수냐며, 그걸 아무나 하는 줄 아냐며 한참 마뜩찮아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 딴판었다. 그걸 권해주신 사잇골과 모임 분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 바깥에서 가까이 알고 지내던 분들마저 아주 크게 반겨 좋아하시니 나는 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가 싶을 정도로 어리둥절하곤 했다. 힘 쓰는 일 잘 못할 것을 걱정하니 그 일은 기운으로 하는 게 아니라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하는 거라며 정말 잘 할 거란다. 벽에 못질 하나 제대로 못한다 하니 어차피 망치질은 누가 해도 손을 때리게 되어 있는 거라면서, 그게 문제가 아니란다. 재주가 없어 남들 손가락 다섯 번 때릴 때 스무 번을 때려야 할지는 몰라도 중요한 거는… 특히나 한옥은 못질을 하는 게 아니야, 요철을 보는 거야, 암수를 보는 거야, 음양을 보는 거야, 조화를 보는 거야……. 끝내 잘 하지 못할 것에 대해 걱정을 할 때도 어차피 거기 여섯 달 있다 오는 걸로 목수가 된다면 그건 목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겠느냐며, 그저 한 몇 달 나무를 매만지고, 냄새 맡고, 다듬으며 나무와 사귈 수 있어도 좋지 않겠냐고……. 어차피 처음에는 몸살이 오겠지, 안 쓰던 몸, 안 쓰던 근육들을 갑자기 무리할 테니 몸살은 올 거야, 그러니조금씩이라도 미리 몸에신호를 보내줘…그 많은 얘기들을 다 떠올려 담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다른 말씀들이 결은 달리 하지만 다들 하나로 닿고 있었다.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너무 잘하려 해서 미리부터 겁을 먹을 건 없다고, 하다 못하면 달아나도 좋다고, 적어도 그만큼은 키워 줄 수 있을 거라고. 그렇다고 그러한 말씀 해 주신 분들이 누구 하나 어설프게 섣부른 격려나 용기를 주려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내가 속아 있다. 속은 건지 뭔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하고 싶다. 아님 말구!
목수들(Carpenters)이 부른 노래 - Jambalaya
*Jambalaya : ((명사)) 1햄·소시지·굴 등과 향료 식물을 넣고 지은 밥 2 《구어》 뒤범벅
5. 그리고
물론 쓴소리를 해 주신 분도 없지 않았다. 그 전까지 용기를 주는 말들을 계속 들어와 그랬는지, 그 쓴소리가 내마음을 크게위축시키지는 않았다.외려균형추처럼 내 한 쪽을 잡아내려 주었고, 분명 새겨들어야 할 귀한 얘기였다. 또 어떤 분은 아는 이가 그런 곳에 다녀왔는데 일을 잘 하는 사람인데도 몹시 힘들어했다며, 생각보다 무척 힘들 거라며 걱정을, 또 어떤 분은 뭘 그리 무겁게 생각하느냐며 마음을 아주 놓을 수 있는 말을 해 주시기도 했다. 그래,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도 병이다. 아니, 욕심이다.
목수학교 들어가는 거에 대해 부모님 반응은 아주 딴판이다. 아버지, 아버지는 아주 안 좋아하셨다.나는 언제나 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일만 하는구나. 벌써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당신이 나를말릴 수 없다는 걸 아시기에 하지 말아라 라는 말씀은 않으시지만 아주 속이 상한 목소리였다. 예전 같으면 아마도 그러한 아버지가 많이도 원망스럽고 섭섭했을지 모르나, 그저 아버지한테 미안했다.속상하게 해 드린다는 게 미안했다.엄마는 그냥 웃으신다. 이제는 목수가 하고 싶어? 하시며 웃으신다. 작가는 그만 할 거야, 하시며 웃으신다. 그래, 잘 배워서 나중에 엄마 집도 근사하게 하나 지어줘라, 하시며 웃으신다. 언제나 그랬듯 엄마는 나를 믿어주신다. 한 번도 내가 하겠다 하는 일에 무어라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러시겠지. 이제는 절에 가서 올리는 새벽 기도에 내가 거기에서 목수 일을 잘 배울 수 있기를, 몸 다치지 않고 지낼 수 있기를, 고생스러운 거 잘 견디고 이길 수 있기를 기도문으로더 올리시겠지. 사랑하는 어머니와사랑하고 싶은 아버지.
6. 끝
며칠의 일기랄까,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적어본다는 것이 대책 없이 길어졌다. 중간 중간을 뭉태기로 들어냈다. 뭘 그런 것까지야 싶은 것들. 바끼통에 들어가 지난 19일 뒤로 그간 올라 있는 이라크 관련 기사들을 찾아 읽어야겠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어떤 무서운 일들이, 그리고 또 얼마나 암울하게 이어지는 저 너머의 소식들이……. 긴장이 되는 일이다. 숨을 가다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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