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매

냉이로그 2011. 8. 4. 02:34

아이들이 왔다, 빗속을 뚫고. *^__________^*

아직 다 완성하지 못했다며, 조금 더 마무리할 게 있다며. 가방에서만들다 만 옷감이랑반짇고리를 꺼내. 으하하 정말로, 내 그토록 한 벌 갖고싶어하던 치마가 드디어 생기게 되었다. 그것도 산마을 장인 지원이의 한 땀 한 땀 정성이 배인 조각 치마를.

평소 내 평생 될 수 없는 게 있다면 엄마라는 이름, 그 하나를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있었구나. 내가 가질 수 없는 이름, 자매.

아이들이 어제 새벽녘까지 만들었다는 인형들. 이제 영월을 거쳐, 공주로, 그리고 전주로 내려갈 거라는데, 거기에 가면 무슨 사회적기업에서 한다는 시장 프로젝트라는 장터가 열린다던가.거기에자리깔고 팔 인형들이란다.감자떡머리띠에 인절미전화고리,송편옷핀, 아, 그것도 있더라. 소금꽃머리띠.

재작년이던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올라갈 준비를 하던 때, 지원이는 그랬다지. 학교에 안 다니면 안 되느냐고, 재봉틀 같은 거 하나만 있으면 집에서 바느질하며 옷만들고, 인형만들고 그러고만 싶다고. 그 얘길 들으며, 세상에나, 어쩜 그리 예쁜 생각을 할까 싶었는데, 요 이뿐 녀석, 얘기를 들어보니 여기저기 조그맣게 열리는장터에서 이미 인기 바느질언니가되어있던 걸.

으하하, 완성!옷만들기로는 아직 리폼하는 것밖에 해보질 않았다니, 이건 지원이의 첫작품. 이 영광스러운 작품을 선물로 받았다.

내가 치마가 갖고 싶다, 치마, 치마 그러기는 작년 이맘 때쯤부터. 그 때도 해원이랑 같이 있었더랬다. 홍대 앞 어느 빈대떡 집에서 막걸리를 먹고 난 다음, 해쭈기 언니네 집으로 자러가게 되었을 텐데, 정확히 그 밤의 상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암튼 나는 다음 날 깨어보니 치마를 입고 있던 것이었다. 푸하! 그러니까 그게, 아마 나는 입고있던 청바지가 불편하여 해쭈기 언니에게 반바지 내놓으라 그랬을 거고, 해쭈기 언닌마땅한 반바지가 없던 터라 이거라도 입고 잘래, 하고는 하얀 긴 치마를 내주었겠지.

세상에나, 나는 정말, 그 우연한 기회가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을 신기한 경험을 하고만 것이었다. 치마라는 게 이렇게나 자유로운 거라니. 아, 너무조아, 완전조아. 심지어는 억울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왜 이 좋은 거를 남자들은 평생 한 번 입어보지도 못하고 말아야 하는지. 거 뭐랄까, 허리 밑으로가 그대로 해방된 기분이랄까, 우와, 세상에, 치마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거라니. 치마를 입어보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치마를 입고 바지를 입은 때를 생각해보니, 그건 완전다리의 감옥이었어. 겉으로만 펄럭이는 걸 두르고나면 그 안으로는 아무 것도 거리낄 게 없는 걸, 시원하기는 또 얼마나 시원한가, 어디 시원할 뿐인가, 자유로워, 평화로워, 이미 내 몸이 펄럭이고 있는 것 같아.

그리하여 치마, 치마, 어디 못입게 된 치마 없냐고, 안입는 거 있음 나 하나만 달라고 농반진반으로 떠들곤 했는데, 그 묵은 숙원을 지원이가 풀어준 것이다. 그것도 이렇게나 예쁘게 천 쪼가리들을 이어붙여서. 아하하, 만세!

이 치마는 앞뒤도 없으니 아무 데로나 돌려입을 수도 있어. ^^ 요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돌려보면 남방의 한 부분이 들어가 있기도 한, 정말 멋진 치마란 말이지.그냥 치마라 해도 신난다 했을 텐데, 지원이의 한 땀 한 땀이 들어간 정말 특별한 디자인! 이제 남은 올 여름은 저 치마를 입고 나야지, 여름이 아니어도 날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입게 될 잠옷, 아, 만세다!

말하자면 지원이는 현실에 없을 것만 같은 아이인데 - 웃기게 말하면 맹한, 그러나 진정 착하고 여린 것 빼고는 아무 것도 없는 - 재작년이었나, 깨나오랫만에, 거의 다서여섯 해 만에 만난 자리에서 - 아니, 그 사이에도 한 해에 한두 번 만나곤 했을테지만, 그런 때야그저다른 어른들에게 하듯인사나 하고지나치는 정도였겠지 -그러니 오붓하게 마주하기로는 그 정도의 시간이라 해도 틀리지는 않을 - 그러던 자리에서 이 애가 그러는 거라. 삼초온, 나랑 결혼하기로 했었는데…. 으잉?!!그 말을 듣던 해원이랑 같이 얼마나 웃었던지. 아, 맞다, 그랬었지. 그게 이천삼년이었으니까, 지원이가 초등학교삼학년이었나, 사학년이던 때. 무너미에 살던 그 집에 들렀을 때,그 꼬마 아이가 너무 예뻐, 이 다음에 크면 삼촌한테 시집와라, 삼촌이랑 결혼하자 그러면서 예쁘다, 예쁘다 한 적이 있었어. 그 때 지원이는 고개를 끄덕, 으응, 하고 대답을 한 것도 같고, 그냥 웃다가 만 것도 같고그랬는데, 그 말을 하는 거라. 자기는 삼촌한테 시집가는 줄 알았는데, 삼촌이 애인생겨 배신을 했다나. 여전히 찡찡대는 말투. 흐아, 이런 어메이징한 꼬맹이 같으니라구!

어머머, 그러고보니까 해원이 사진을 잘 찍어놓은 게 없네. 해원이랑은 계속 막걸리잔을 치면서 지원이 얘기듣느라, 지원이 바느질하는 거 보느라, 게다가 해원이는 너무 피곤해 일찍부터 졸기를 시작했어. 나중에 인형가게를 하고 싶다는 지원이, 아주 쪼그만가게면 좋겠다고, 눈에도 잘 띄지 않는 그런 가게면 좋겠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지나다가 우연히 찾아들어왔을 때 막 반가워하고 기뻐하게 되는 그런 가게에서 인형을 만들고 싶다고. 꿈도참 예쁘기도 하지. 문득 예전에 본 다큐 가운데 북촌의 조그만 인형가게 하는 언니 이야기가 생각난다 했더니 지원이도 친구들에게 얘기로만 많이 들었다며, 함께 보자 하여, 같이 봤다.그걸 보다가 해원이는 벌써 꾸벅꾸벅, 지원이 다리를 베고 먼저 잠이 들어.

이렇게나 어여쁜 두 아이, 노자매는 둘이서 저쪽 방에서 잠이 들었다.삼촌이 지금 재수생 찌질이 이런 것만 아니면 저 너머 정선, 평창으로 문희마을도 같이 걷고, 강가 아무데로라도 버너에 코펠, 라면이라도 싸들고 소풍이라도 가자 할 텐데, 그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안키만 하고아숩기만 하다. ㅜㅜ

아무튼 늬들이 밧데리 다 떨어져가는 삼촌을완전 충전시켜주고 있단 말이지. 요 이뿐 것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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