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냉이로그 2012. 3. 13. 10:03

어느덧 한 달 남짓 남았다. 양가에서는 이미 정초에 날을 받아놓았고, 그랬으니 일이 없는 겨울동안소소하지만 신경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이러저러한 준비를 어느정도 마쳐놓으려 했다. 식을 올리면 달래도영월로 학교를 옮겨야 했고, 그러자니 일찌감치 이리로짐을 옮겨삼월부터는이곳 산골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나가고 있다.올 해 입학생이 여섯 뿐이라는 아주 조그만 학교.

마흔이 되도록 제주에는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다. 어쩌다 그랬는지, 어린시절 농담처럼, 이 다음에 신혼여행으로 제주도엘 갈 거다, 하고 말을 하던 게, 언젠가부터는 그게 무슨 대단한 약속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뒤로 수학여행 같은 게 있다 할 때도, 사삼기행을 가자 할 때도, 그 섬의 도서관이며 아이들이 있는 자리들에서 초대를 해올 때도, 벌써 다섯 해 전부터 병수 아저씨가 강정을 다니며 솟대 작업을 할 때도, 일이 있다 핑게를 두며 미루기만 했다. 두서너 차레 그러다보니, 이왕 그렇게 된 거, 진짜루 나중에 신혼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그때 가보자 하고 아껴두게 된 것.그러더니그게 정말현실이 되어, 다음 달 십오 일, 혼례식을 마치고 그이튿날로제주도엘 가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나 가서 강정엘 가겠구나, 그래도 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을 때, 아직 그곳을 지켜내고 있을 때. 그러나 이미 해안으로는 화약이 옮겨지고 있고, 벌써 한 주일 가까이전해지고 있는 폭음 소식.

엊그제 기차길에서 하룻밤을 자고 오면서좀 더 내밀한 그곳의 속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어떤 이들과 또 한 편으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모습을 보이는 어떤 이들의 안타까움.누군가에게는 싸움이 삶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삶이 싸움이다.그 둘은 얼핏 보기에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그러나 다르다.아주 모를 것 같지만은않은 이야기들이었지만, 아무 것도 하는 것없는나로서는그저 고맙고도 미안할 뿐.

신혼여행이랍시고, 배낭을 메고 그곳에 찾을 때 쯤이면 어떤 모습으로 버티어 있을까.신부님 얼굴은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때때옷, 커플티 차림으로 불쑥 찾아가 혼례를 올리고 왔노라 말이라도 할 수 있을까.마흔 살이 되도록 아껴두던 그곳을,결국엔 이렇게 죄인된 마음으로나찾아가게 되겠구나.

오늘 보낸다는 탄원서에 서명 - 발파가 시작한 날부터 지금껏 구천 명 가까이 연명이 이어지고 있다. 조금만 더 힘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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