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들

냉이로그 2009. 6. 6. 01:31

 

형들

 

 날이 맑을까? 모란공원에서 만나 형을 기억하는 날이다. 벌써 보름 전부터 추모주간을 준비하는 기념사업회 알림이 문자로 들어오고 있었지만 그저 지나치곤 했다. 거의 사흘 걸러 한 번씩 문자가 들어오는 데다가 소식지까지 갖춰 메일로 들어오고 있으니 근 몇 해 동안 힘을 잃고 있던 기념사업회가 한층 기운을 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그것에 반가울 뿐이었다. 하지만 추모주간의 행사 일정들을 알리고, 함께하기를 바라는 내용들은 솔직히 안일하게 잊고 지나치려던 마음을 찔러주는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 고마운 불편함. 편지 부칠 일이 있어 우체국에 나갔다가 겨우 현금지급기 앞에 서서 들어온 문자를 확인해 돈 몇 푼을 구좌로 넣었다. 푼돈 얼마로 마음을 때운다 생각하니 또한 불편함이 없지 않았지만 그 불편함이야 내가 감수해야 할 몫이겠다.

 

 늦은 시간이다 싶었지만 종숙 누이에게 전화를 넣었다.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려면 벌써 잠에 들지는 않았는지, 아님 요사이 청계광장에서 우여곡절을 거쳐 인권영화제를 사수해내고 있다 하는데 거기에 나가 있는지. 코맹맹이다. 누이도 감기에 걸려 있구나. 어떠냐고, 아침 일찍 나서려면 어서 자야 하지 않겠냐고, 아무래도 내일은 래전 형 만나는 자리에 래군 형도 갈 수 없어 더 허전하겠다고, 순천향 영안실에 갇혀 사는 래군 형은 괜찮냐고, 그 안에서 움직이지도 못해, 볕도 보질 못해 몸이 많이 상했을 텐데…. 그냥 그러며 서로의 안부나 묻다가 말았다. "어서 래군 형이 나와야 사잇골에도 가 볼 텐데." "그래요, 형 나오면 꼭 한 번 와서 쉬다 가요."

 

 서신에 계신 아버님, 어머님은 어찌 지내실까? 추모식마다 빠지지 않고 가깝지 않은 길을 마다않던 어머님이 지난 해 이십주기에는 몸이 아파 나오지도 못하셨는데. 너무 아프지 않아 오늘은 가 보시게 될까? 아니, 그렇게 가 보면 어머니 마음은 또 얼마나 텅 비어 무너져 내릴까? 제 몸을 불살라 흙이 된 막내의 무덤가에서 또다시 수배를 받아 갇혀 있는 둘째의 빈 자리를 봐야 하는 어머님 마음은. 오늘은 형이 남기고 간 유고시들 가운데 어떤 것보다 이 시가 가슴에 사무친다.

 

 

 

    어머니 말씀

 

    어떡할려고 그러니 이노무 새끼들아

    난 어떡하라고 두 형제가 다 유치장에 있어

    나와라

    나와서 이야기 좀 하자

    어떡하란 말이냐 얘들아

 

    노량진 유치장에 면회오신 어머님

    나이 오십에

    칠십 나이 겉늙은

    할머니 주름이 가득한

    어머님

 

 

 

 오늘은 래전 형이 간지 스물한 돌이 되는 날이다. 1988년 6월 4일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1988년 6월 6일 숨을 거뒀다. 모란공원 작은 봉분에 묻혀 겨울꽃으로 남은 사람. 그리고 평택에서 용산에서 평화와 인권이 짓밟히는 자리마다 겨울꽃을 피워내며 살아가고 있는 그의 형.


 

[참세상] “올핸 래전이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 2009. 6. 7

 

 

[행동하는 라디오] 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박래군 인터뷰 / 2009.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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