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답사 1

굴 속의 시간 2010. 3. 17. 21:15

이 날답사의 순서대로 하자면법주사부터 정리를 해야겠지만그냥 마음이끌리는대로 삼년산성에 올랐던 것부터 정리한다. 법주사에서 내려온 건 두 시가 넘었나 보다. 빗줄기는 약했지만 끊이지 않았다. 빗속을 다녀야 했으니 불편한 거야 물론이지만 어찌 보면 비가 왔기에 더 좋기도 했다. 법주사의 팔상전이며 대웅전 어디를 들어가도 신도들이 거의 없어 나름 마음껏 건축물들을 살필 수 있던 것이다. 게다가 팔상전과 대웅전은 들어가는 입구에 '사진촬영 금지'라고 되어 있었지만 약간씩 마음에 찔려하면서도 그걸 지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물론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해도 부처님이 다 지켜보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부처님, 한 번만 봐주세요, 부처님이 살고 있는 집 공부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하고 속으로 말을 하면서. 원통보전을 둘러보는 일은 더욱 좋았다. 마침 지금은 원통보전을 해체수리하고 있어서 기와를 다 내려놓고 추녀와 사래, 서까래들까지 들어내고 있었는데, 비가 오고 있어현장 목수들이 일을 쉬고 있던 것이다.그게 아니라 개인 날이었다면 한참일을 하는 현장이라 제대로 가까이 가볼 수도 없었을 텐데, 그렇게 비가 와서 현장이 비어 있었으니 아시바를 타고현장 안으로 들어가 볼 수도 있었다. 기와를 벗겨냈으니 아시바 2층으로 올라보와 도리, 포작 따위들을 바로 눈 앞에서 볼 수도 있었다. 해체수리를 하지 않았더라면,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그런 기회란가질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산성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비가 내리는 날인지라 가까이에서 산보를 나온 사람도, 멀리서 구경을 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딱 한 사람 멀리서 잠깐 보기는 했는데, 그이 말고는 산성을 다니는 내내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게다가 함께 간 길목수 형님이 다리 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걷기가 불편했는데,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니 산성 입구 차량을 통제하는 관리인 같은 사람도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산성의 서문까지 그대로 차를 타고 올라갈 수가 있었어. 나야 산성 둘레를 한 바퀴 뱅 둘러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비까지 내리는 궂은 날, 다리가 아픈 형님과 함께 다녔으니 어찌했건 여러 모로 운이 좋았던 것이다.그런 거로 봐서는 날이 궂어 비가 내린 것이 차라리 잘 되었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보은정보고 뒷길로 해서 서문지 쪽으로 난 길이었다. 위의 지도에서 보면 빨간 동그라미 번호로 1번이라 되어 있는 곳. 이 표지판들도 모두 그 앞에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찍은 것이다.

이 산성이 신라의 것이라는 것도 표지판을 보고서야 처음 알았고, 삼천 명이 삼 년 걸려 쌓은 성이라 해서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하는 것도 표지판을 보고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신라가 서북지방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는 데 있어 전초기지가 되었다 하는 것도, 삼국을 통일하는 전쟁을 벌일 당시 무열왕이 당나라 사신을 접견하던 곳이라는 것도, 왕건이 이 성을 점령하려 했다가 크게 지고 돌아갔다는 것도 모두 처음 알게 되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기분이 사뭇 이상하기도 했다.

삼년산성하면 떠오르는 건 우리나라에 거의 유일하게 백프로 돌로만 채움이 되어있는 석성이라는 거였다. 그래서 이 성벽을 걸을 때면 딸각딸각하는 소리가 날 정도라 했지. 축성양식으로 보자면 돌로만 채우는 석재채움이 가장 좋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흙으로 채운 것보다 훨씬 단단하고 견고할 것이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물빠짐이 좋다는 것이다. 돌이 아니라 모래를 사용했을 때는 물빠짐은 잘 되지 못한 채 모래들 사이에 공간이있어물을 머금을 수 있으니 그것이 추운 날에는 얼게 되어 배부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고 나면 그 공간은 더 커지게 되고 다시 더 많은 물을 머금었다가 얼면서 더 큰 공간이 생기게 되고, 그러한것이여러 해를 거듭하다보면 점점 배부름 현상이 커져 성곽이 부실해질 수 있다 한다.그러한 면에서 석재 채움은흙과 모래로 채우는 방식보다낫다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석재채움의 장점이라면 면석과 뒷채움의 맞물림을 견고하고 튼실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체성을 쌓을 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속채움이라 할 텐데, 그것은 면석을 속에서 얼마나 잘 잡아주는가 하는 문제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면석은 그야말로 체성의 바깥면을 이루는 것들인데, 이것들을 속채움으로 잘 잡아주지 못하면 마치 껍질이 떨어져나가듯이 분리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석들은 뒷뿌리가 좁아지는 원추형 꼴로 쌓아야 하는 것이라 했고, 그렇게 뒷뿌리가 좁아지는 면석들 사이, 뒷뿌리와 뒷뿌리들 사이를 꽉 끼워 눌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했다. 그러니 여기에도 석재 채움 방식이 훨씬 단단하게 시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돌로 채움을 한 성곽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배수가 잘 된다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석재채움 방식의 성곽에는 따로 수구니 누혈, 은구 같은 배수구를 두지 않아도 그 자체로 배수를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수구를 '맹암거 수구'라 한다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삼년산성을 꼽았더랬다. 물론 석재채움 방식이라고 단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석재채움 방식에서는 위에서 내리누르는 하중이 일정치 않을 경우 부등침하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성이 한 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는 것.


우리가 들어가자 마자 차에서 내린 곳이다. 서문지라 되어 있으니 서문이 있던 자리이겠는데 입구가 되어 그런지 이렇게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건 그렇고 보자마자 우와아 하며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돌로만 쌓은 성이라는 것도 배워 미리 알고 있었고, 다른 성들에 견줘 꽤나 높다는 것도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토록이나견고하게 쌓아올렸을 줄은, 눈으로 보는 것은생각 이상으로 대단했기 때문이다.그와 함께거의 동시에든'이걸 쌓느라 얼마나 고생들을 했을까'싶은 생각.

층층마다 가지런하게 쌓아 올려진 돌들을 보면서 이게 뭐더라, 이렇게 쌓는 걸 뭐라 했더라 머릿속을 뒤졌다. 축성 양식에서 보면 성돌의 종류에 따라 몇 가지로 나뉜다고 했다. 크게는 가공석과 자연석으로 나뉘는데 가공석 가운데에도 정방형의 것과 장방형의 것 그리고 장대형으로 나눌 수 있다 했다. 자연석은 말 그대로 자연에서 캐낸 돌을 그대로 쌓는 것과 할석이라 하는 돌, 그러니까 자연석을 깨뜨린 것으로 쌓는 것이 있다 했다. 그러나 이렇게 분류를 한다 해도 최소한 돌을 나르고 쌓을 수 있는 정도로는 깨뜨려야 하니 자연석 쌓기라 해도 어느정도는 깨뜨려 썼으니 자연석쌓기와 할석쌓기가를 딱 잘라 구분하기는 어렵다는 말과 함께. 그것 말고 자연석 쌓기에는 전판암형 성돌로 쌓는 것이 있다 했는데 이 전판암이라는 석재는 평평하고 납작하게 끊어지는 특성이 있어서 층층이 쌓기에 좋다고 했다. 그러니 아무래도 자연석이나 할석보다는 크기가 작아 단위 부재로는 더 많이 들기야 하겠지만, 면을 맞닿게 해가며 쌓을 수 있으니 좀 더 견고한 성벽을 만들 수 있다 했다. 마치 자연석이면서 가공석의 특성에 가까운 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공석들은 말 그대로 가공을 했으니 맞춤이 쉽고, 면 맞춤이 좋은 만큼 견고하게 쌓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 되고, 단점이라면 가공이 필요하니 아무래도 공령이 많이 든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가공석으로 성벽을 쌓는 곳은 중요한 성곽들에나 가능했다.

그러한 점들에 비추어보면 삼년산성은 전판암형 성돌로 쌓은 산성이다. 가공석은 아니지만 거의 가공석으로 층층 올려 쌓은 것만큼이나 틈없이 일률적으로 쌓은 모습.

발에 수술을 해서 걷기 어렵다는 길목수 형님이 벌써 저만치 앞서 걷고 있다. 지도에서 보면 1번 서문지에서 7번 남문지 쪽으로 오르는 방향. 그저 돌을 일정하게 쌓아놓았을 뿐인데, 돌덩어리들일 뿐인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그리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문득 드는 궁금함, 아름다움이라는 건 대체 무언지, 그러한 감정은 어떤 작용을 거쳐 들어오게 되는것인지.

조금 전 축성 양식을 재료에 따라 나눠보았다면 쌓기 방식에 따라서도 나누어볼 수 있다 했다. 네 가지 정도로 분류를 했는데 저마다'바른층 쌓기'와 '체감있게 쌓기', '층단쌓기', '난석쌓기'라 부른다. 쓰임말 자체가 그리 어렵지 않아 굳이 더 자세히 할 것도 없겠지만, 바른층 쌓기는 말그대로 똑바르게 층층이 쌓는다는 뜻이겠다. 그러니 자연석이나 할석으로는 층을 일률적으로 가지며 쌓기에는 어려울 것이고 가공석 쌓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체감있게 쌓는다는 것은 밑면 쪽을 넓게, 점점 높아질수록 좁게 쌓는다는 뜻으로 이 말 또한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누구라도 모양이 일정치 않은 것을 가지고 두툼하게 쌓아올리려면 아래를 더욱 두텁게 하면서 좁아지게 쌓아올릴 테니 말이다. 이렇게 쌓으려다 보면 자연히 큰 돌일수록 밑으로 쌓고 작은 돌을 위에쌓게 될거고 말이다.그러니 이 방식은 자연석으로 쓸 수 있는 가장 안정된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가공석으로도 층단쌓기야 가능하지만 가공석으로 성을 쌓을 때는 주로 일정한 규격으로 가공해서 썼다. 굳이 가공석을 쓴 체감있게 쌓기 방식을 찾는다면 담장에서 밑에는 큰 것, 위에는 작은 것으로 체감을 느끼게끔 쌓은 것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층단쌓기는 얼핏 바른층 쌓기와 어감이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바른층 쌓기만큼 똑바른 층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층을 이루며 쌓아간달까? 뭐 그런 개념이다. 그러니 앞서 재료를 가지고 분류했던 것을 끌어다 말한다면 평평하고 납작하게 잘라지는 전판암을 가지고 층층이 쌓은 모습이랄까. 난석쌓기는 허튼쌓기라고도 말을 하는데 이것은 일정한 규칙이란 것 없이 쌓아올렸을 때를 말한다.

이랬을 때 삼년산성은 어디? 당연히 층단쌓기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판암형 성돌을 가지고 어느정도의 일정한 층을 가지며 쌓아올린 방식.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한 눈에 딱 알아차릴 수 있다. 쌓기 방식마다 그 예를 말해보자면 가공석을 가지고 바른층 쌓기를 한 것은 숙종년간 때 지은 서울 성곽이겠고, 자연석으로 체감있게 쌓기를 한 것은 세종년간 때 지은 서울성곽이다. 그리고 난석쌓기 혹은 허튼쌓기로 지은 것은 태조년간에 지은 서울 성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서울성곽은 태조 때 난석쌓기에서 세종 때 체감있게 쌓기로, 숙종 때 바른층 쌓기로 점점 변모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 이 사진은 길목수 형님이 오른 뒤를 따라 7번 남문지 쪽으로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며 찍은 사진이다. 지도에서 보자면 11번 서북치성 쪽을 바라보며 다시 사진으로 보고 있지만 정말 멋지다.

이 사진 역시 남문지 쪽으로 계속 올라가다가 좀 더 높이 올라간 곳에서 뒤돌아 11번 서북치성 쪽으로 올라가는 쪽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 뒤에 좀 더 큰 사진으로도 나오지만 산성이 이어지다가 한 차례씩 볼록하게 튀어나간 부분이 있는데 그런 것을 '치' 혹은 '치성'이라 한다. 이 치라는 것은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성곽 장치로 고구려 때부터 이미 사용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이나 러시아 쪽에서 산성에 치가 발견되면 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하는데, 성벽 중간중간을 돌출시키는 것은 이웃나라의 침입이 있을 때 방어하기에 용이하도록 만든 것이다. 치가 둠으로 해서 성벽 바로 밑으로 올라오는 적을 공격할 수 있고, 엄호와 은폐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인데, 그러하기 때문에 보통 치와 치의 간격은 무기의 사정 거리를 감안하여 만든다 할 수 있겠다. 무기가 발달하면 발달할 수록 치의 간격은 늘어나게 된다는 뜻이다.

위의 사진에서 불룩하게 나가 있는 치의 밑 부분은 따로 더 두툼하게 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보축이라 한다. 성벽이 높아짐에 따라 하중이 증가되는 기저부를 보강하는 시설인데, 그렇기 때문에 주로 성벽이 높은 고대시대의 성곽에 많이 나타난다. 그 까닭은 성벽이라는 것은 무기가 발달하게 될수록 오히려 그 높이가 낮아지기 때문인데, 파괴력이 센 무기가 사용되면 성벽이라는 것은 아무리 높게 쌓아봤자 밑부분만 허물 수 있다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도 더 고대로 갈수록 성벽이 높아지는데, 이 보축시설이라는 것은 높은 성벽의 하중을 고려한 것이므로 고대시대의 성곽, 특히 신라시대 성벽에서 많이 보인다. 또 보축이 쓰이는 곳은 성벽 자체로 높은 곳 뿐 아니라 급경사지나 능선 밑의 골짜기 같은 곳에도 쌓곤 하는데,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이 보축을 쌓아올리기는 했다.

이 사진은 조금 전 말한 그 치성 부분에 올라서서 찍은 것.

그리고 이건 치에서 조금 더 올라선 뒤 뒤를 돌아다보며 찍은 것이다. 빗줄기는 다시 굵어지기도 했고, 이미 우산도 던져버리고내리는 것들을 그대로 맞으며 걸어올랐다.

이 사진을 찍다가 하마트면 미끄러져 큰일일 뻔 하기도 했는데, 아무튼 성벽 바깥 부분의 모양을 보고 아! 이거구나 싶어 반가운 마음이었다. 그래서 한 발 한 발 더 내려가다가는 돌 하나가 흔들 빠져나가면서 미끌, 겨우 중심을 잡았기에 망정이지 휴우우. 그토록 반가운 마음에 성벽 끄트머리에 매달리듯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계단식으로 층단을 지은 벽면 때문이었다.

성곽의 축성 양식을 나누는 방법 가운데 또 한 가지는 벽면이 어떠한가에 따라 나누기도 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직선형 성벽과 곡선형 성벽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직선형 성벽 가운데에는 직선형 경사를 가지고 있는 '기울기형'이 기본으로 있고, 그 기울기가 한 번 꺾여 올라가는 '굴절형'이 있다. 이 굴절형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평양성의 을밀대 일부 구간이 굴절형의 성벽면을 가지고 있다 했다. 그리고 직선형에서 또 한 가지는 '층단형'이라 했는데 서서히 기울기를 가지며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 층을 지듯 쌓아올린 것을 말한다. 이것의 대표적인 사례로 삼년산성의 일부구간을 들었는데 저 부분을 보게 되면서 아, 저걸 말하는 건가 보다! 하며 크게 반가웠던 것이다. 이처럼 성벽의 면이 층단형인 것은 너무 높은 성곽일 때 나타나는 모습이라 했는데, 조선시대에도 높게 쌓아올린 성곽에는 '층단형'의 모습을 보인다 했다.

이 밖에도 곡선형의 성벽면을 갖도록 쌓아올린 것들도 있는데 안으로 곡이 진 모양을 '규형'이라 하고, 바깥으로 둥글게 곡을 가진 모양은 '궁형', 그리고 궁형으로 올라가다가 규형으로 이어지는 것은'절충형'이라 하여 부른다 했다. 안으로 곡을 가진 '규형'의 대표적인 예는 수원 화성이라 했고, 바깥으로 곡을 둔 궁형의 사례로는 세종년간에 쌓아올린 서울성곽이라 했다. 앞서 축성방법을 바른층쌓기, 체감있게 쌓기, 층단쌓기, 난석쌓기 등으로 나눠 살펴볼 때 세종년간의 서울성곽은 체감있게 쌓기 기법을 썼다고 했다. 다시 말해 밑에 큰 돌, 위로 갈수록 작은 돌을 쌓아 안정된 모습으로 쌓는 거라며 말이다. 이렇게쌓으면마치 항아리의 윗면처럼 바깥으로 불룩하게 곡을 지며 올라가게 되니 성벽면의 형태 분류로 보면 궁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밑에서는 외반곡을 위에서는 내반곡을 가진 절충형이라면 남한산성의 일부구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이러한 궁형과 규형 절충의 대표적인 예는 첨성대의 바깥면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남문지로 오르는 길은 이처럼 길이 끊겨 있었다. 발을 딛다가 돌이 흔들리면서 빠질 뻔한 것도 지금 이곳은 석축 보수 공사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법주사에서 원통보전이 보수공사 중임에도 비가 내리는 날씨여서 일이 쉬고 있었듯 아마도 여기도 궂은 날씨 때문에 일이 잠깐 멈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돌을 쌓다 만 흔적이 있고, 산성 들머리에서는 축성에 쌓을 돌들을 계속 옮겨다 쌓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즈음에서 한 가지 의문이라면 축성 양식 가운데 축조 기법 면에서 보자면 여기는 과연 어디에 해당할까 하는 것이다. 축조 기법을 나눠본다면 퇴물림 방식과 경사쌓기 방식, 그리고 그 둘을 혼합한 방식의 혼합축조 방식 정도가 될 텐데 수업 시간에 간단화시킨 그림으로 봤을 때는 명확하게 떨어지지만 이렇게 실제 성곽의 단면을 보니 그 경계가 애매해 잘 모르겠는 것이다. 먼저 퇴물림 축조 기법이라는 것은 물려쌓기라고도 하는 것으로 지면이나 성벽의 기울기에 관계없이 면석을 수평으로 쌓아올리는데, 이 때 성벽의 기울기만큼 매단을 뒤로 물리면서 쌓아올려 체성의 경사와 안정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라 했다. 그러니 면석의 앞면은 수직으로 떨어지고 살짝 계단을 이루며 층이 올라갈수록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 된다. 우리나라 성곽의 기본 형식이라 했는데 그러고보면 이 삼년산성도 전형적인 퇴물림 쌓기 기법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경사축조 기법은 성벽의 기울기에 따라 성돌을 경사면에 맞춰 기울여 축조한 형식이라 했는데, 글쎄 어찌보면 이 성벽도 살짝 경사지면서 경사면으로 계단이 지지 않고 바르게 올라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강의 시간에 듣기로는 이 축조기법은 우리나라에 많지 않고 일본 성곽에 많다 했고, 우리 나라에서는 경주의 명월산성 아랫부분에서 경사축조 기법이 보인다고 했다. 명월산성의 아랫부분은 경사축조 방식, 윗부분은 퇴물림 방식이라며 말이다. 그 다음 혼합 축조 기법은 퇴물림을 하면서 성돌에 경사를 둔 방식이라 했는데, 그러니까 퇴물림 방식처럼 윗단을 쌓을 때 조금씩 뒤로 물리게 하면서 성돌 하나하나의 기울기는 성벽의 기울기에 맞춰 기울여 쌓는 것으로 말이다. 이러한 방식의 축조 기법은 남한산성의 일부 구간에서 볼 수 있다 하면서.

이것을 그림으로 나타낼 때는 헷갈릴 것 없이 명확했다. 퇴물림 방식은 층층이 조금씩 뒤로 물리면서 앞면에는 살짝 계단이 지는 모양으로, 경사축조 방식은 성돌 자체가 성벽면의 기울기로 누워 있으니 성벽면에는 계단식 층 같은 것이 지지 않고 일자를 이루는 모양으로, 혼합 축조 기법은 성돌도 성벽의 기울기에 따라 기울어져 있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윗단을 쌓아가면서 살짝씩 뒤로 물려 계단이 지는 방식. 그런데 이처럼 면석 자체가 가공석이 아닌 경우에는 그것을 딱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 가공석이라면 면 자체가 고르게 되어 있어서 그것이 일자로 이어지는지, 아님 조금씩 뒤로 물려 퇴물림이 되었는지, 혹은 경사를 두고 기울어 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겠지만 여기 삼년산성에 쓰인 전판암형 성돌은 면 자체가 일단 고르지 않다. 그러나 가만가만 따져보니 아무래도 이 삼년산성은 퇴물림의 축조기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윗단을 쌓을 때 뒤로 물려 계단식이 된다 하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건물에서 보는 그 계단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뒤로 물린, 그렇게 하여 층이 꺾여 올라간다는 것을 말하는 거였다. 면 자체가 일자를 이루는 것에 상대적인 개념으로 쓰인 거라 할까? 나는 자꾸만 머릿속에서 계단식, 계단식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이게 무슨 계단식 층을 이루고 있나, 어떻게 보면 일자로 이어지고 있는 거 아닌가?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던 것인데, 가만히 잘 보면 윗단으로 올라갈수록 돌이 조금씩 뒤로 물려져 있다. 자, 그렇다면 퇴물림인 것은 맞기는 한데 혹시 성돌이 기울어져 있으면서 물림이 된 혼합축조 기법은 아닌가? 하는 것도 의심해 볼만 하다. 혼합축조의 퇴물림이 아니라 기본형의 퇴물림이라면 맨 바깥 면이 수직으로 떨어져야 하는데 이 역시 딱 잘라 말하기가 곤란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 바깥 면은 수직에 더 가깝다면 가깝지 성벽의 기울기에 가깝지는 않으니 여기에서도 이 삼년산성의 축조 기법은 퇴물림이라 말하는 편이 옳겠다 싶다.

이렇게 고개가 갸웃거려지고 있으니 경주의 명월산성엘 가 보고 싶다. 남한산성에서 쓰였다는 혼합축조 양식을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그 둘을 보게 된다면 비로소 그 셋의 기법이 어떻게 다른가를 확연히 알 수 있게 될 텐데….

어쨌든 이렇게 남문지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끊어진 부분이 있었으니 성곽의 단면을 볼 수가 있었다. 실제로 성곽공사에서는 앞서 말했듯 체성의 속채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했는데, 이 성곽이라는 것은 그 속을 뜯어보지 않으면 속채움이 어떤 방식으로 되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하자가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 한 번 뜯었을 때 잘 봐두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도 수리 공사를 하게 되면 뜯었을 때 제대로 된 해체 조사를 하고 기록으로 남겨두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시공을 한 뒤에도 꼭 해야 할 일은 성을 다 쌓기 전에 단면의 사진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대로 시공을 했음에도 제출할 자료가 없어 억울한 경우도 생기기도 하다면서 말이다. 그랬으니 이번 답사 길에서는 여러 모로 운이 좋았나 보다.

성곽을 분류할 때 체성의 형식으로 보면 크게 둘로 나누기도 한다. 하나는 협축성이요, 또 하나가 편축성인데 그것을 풀어 설명하자면 협축성은 석축으로 안팍을 동시에 축조해서 쌓은 성벽이고, 편축성은 외벽면만 석축으로 쌓고 내부는 돌과 흙으로 채워서 축성한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한쪽만 쌓은 것이 편축성, 양쪽으로 같이 쌓은 것이 협축성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편축성은 경사지에 많이 쌓게 되고, 대부분 산성이 되게 된다. 한쪽으로만 쌓아올려도 성의 안쪽은 이미 성곽의 상부 바닥면과 거의 같게 되니 안쪽에서는 쌓으려해도 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협축성은 주로 평지에 쌓는 성곽이 될 테고 말이다.

그런데 이 삼년산성을 보자. '어,이건 한 쪽만 쌓은 게 아니지 않나…'자칫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은 협축성이어서 양쪽 면을 가진 성곽이 아니라 석축을 일부 노출한 방식을 썼기에 편축성이면서도 뒷면에도 살짝 지면 위로 성을 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기왕에 편축성의 일부노출 뒷채움이라는 것을 들어 말했으니, 뒷채움의 여러 방식에 대해서도 잠깐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협축성에서의 뒷채움이란 재료를 무엇으로 썼는가에 따라 나뉠 뿐 달리 다양한 형식일 것이 없다. 뒷채움에 쓰인 재료로 봤을 때 석재 채움과 토석 혼합 채움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한 번 정리해놓고 지나왔다. 편축성에서도 역시 뒷채움에 쓴 재료로 분류를 하자면 협축성에서 말한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편축성에서는 뒷채움을 어느만큼의 깊이와 폭, 모양으로 했는가에 따라 역사다리꼴 뒷채움, 사다리꼴 뒷채움, 역사다리꼴의 층단 뒷채움, 사다리꼴의 층단 뒷채움, 석축일부 노출, 층단형 석축 노출, 경사 석축노출 따위로 나뉘어진다. 꽤나 복잡해 보이지만 말로 풀어놓아서 그렇지 그림으로 표현하면 사다리꼴이냐 역사다리꼴이냐, 그러면서 층을 지고 있는 사다리꼴/역사다리꼴이냐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지금 말한 네 가지 방식은 성벽의 윗면이 지면과 나란히 갈 때라면 여기에서 보고 있는 삼년산성처럼 석축의 뒷면이 지면보다 살짝 높게 노출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게 된다. 이 때 노출된 석축의 뒷면이 층을 졌느냐, 경사를 두었느냐에 따라 나눠본 것일 텐데 이러한 분류가 그리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렇게 석축의 뒷면을 일부 노출시킨 까닭에 대해 생각해둘 필요가 있겠는데 그것은 비가 내릴 때 성곽의 배수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할 수 있다. 돌이라는 재료는 물에 약하기 때문에 언제나 배수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협축성 같은 경우는 비가 내리더라도 양쪽으로 흘려보낼 수가 있지만 편축성에서는 성을 쌓은 경사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빗물을 모두 성이 받아 앞면으로밖에 흘려보낼 수 없기 때문에 성곽 자체에 많은 유수량이 모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경사면의 지면보다 살짝 높여 뒷면 일부를 노출시켰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빗물에 침수, 침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성곽에서는 협축성의 경우에도 성곽의 윗면은 구배(경사)를 두어 빗물을 잘 흘려보내게 하고, 편축성 같은 경우도 윗면에는 구배를 두어 상부 마감을 한다. 성곽의 성체 위에 쌓게 되는 여장의 경우도 마찬가지, 여장의 맨 위를 덮는 옥개석도 언제나구배를 둬서 빗물이 잘빠져나가게하는 것이다.

성벽이 끊어졌으니 아쉽게도 더 올라가지는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못내 아쉬워 멀리 이어지는 성벽들을 내다보다 보니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보였다. 아, 저건 뭘까, 뭐지? 하면서 성벽 끄트머리로 바짝 다가가 어렵게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이것도 층단형 성벽 구조를 보여주는 구간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이건 층단형 성벽구조라기 보다는 성벽 하부에 보축을 했다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성벽이 너무 높아 기저부를 보호할 필요가 있을 때도 보축을 한다 했으니, 사진에서 보듯 급경사 낭떨어지가 되는 성벽 아랫부분을 좀 더 두툼하게 해주느라 덧대어 돌을 쌓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 외곽선이 동일한 면석으로 이어져 올라가며 층단을 이룬 것일 텐데, 맞물린 부분의 단면 쪽을보면 원래부터 하나의 모양으로 쌓아올린 것 같지가 않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내려가는 길. 사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찍고 난 것을 늘어놓고 보니 아까 올라오면서 찍은 그 자리에서 또 찍었나 보다. 그만큼 그 즈음에서 내다보는모습이 아주 멋져. 둥글게 불룩하니 면이 져 있는 부분이 '치' 부분이고, 그 위에 길목수 형님이 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빗줄기는끊이지 않게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우산을 펼 수도 없어. 그대로 비를 맞으며, 바람을 맞으며 내려가려는데 왜 그리도 아쉬운지.여기에서 담배 한 대는 피워줘야 해, 하면서 담배 연기를 쭈욱 빨았고, 그리고 또 한 가지. 저 성곽 위에서 성벽 밑으로오줌싸기를. 으흐흐, 정말 신났다.길목수 형님은 어어, 왜 문화재 훼손을 하고 그래? 하고 말했지만 이렇게 비오는 날,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성곽 위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글쎄, 저 멀리 보이는 읍내에서 설마 보이기야 할려구. "형님, 이렇게 해서 문화재기술자 공부하는 사람들한테 징크스 같은 걸 만드는 거야. 비오는 날 삼년산성 꼭대기에서 오줌 싸면 시험에 합격한다!" "지금은 헛소문이지만 우리가 덜컥 합격하고 나면 아주 터무니없는 건 아닌 게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와, 그러면 이 공부하는 사람들 비오는 날만 기다려 여기로 오줌싸러 오겠네." 따옴표를 따로 따로 했지만 다 내가 한 혼잣말들이다. 길목수 형님은 그저 흐흐 웃기만. 하긴 길목수 형님은 오줌은 안 쌌거든. "그럼 비오는 날 삼년산성 오면 시험에 붙는다, 이렇게 소문을 낼까?" 하여간 나는 삼년산성 꼭대기에서 시험 합축기원 오줌을 쌌다. 비바람을 맞으며 그 꼭대기에서 성벽 아래 낭떨어지로, 아주 신나게!

아, 내려오며 생각하니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다. 삼년산성에는 도무지 여장이라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고가의 구조를 공부할 때 그것은 크게 미석을 기준으로 하여 성체와 여장으로 나뉜다고 했다. 성체라는 건 성곽의 몸체를 말하는 것으로 성곽의 실질적이고 구조적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장이라는 것은 성곽 위에 담장 같은 것이랄까? 성곽 위에 사람이 서 있을 때 그 뒤에 숨을 수도 있고, 개구부를 통해 성곽 바깥을 내다볼 수 있게 해주는 구조물 같은 것. 성곽의 본래 기능인 군사적 방어와 행정적 감시 관리 기능에 비추어볼 때 여장은 그 성곽을 지키는 사람이 나름의 방어나 엄호, 엄페를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구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성곽의 구조를 보자면 크게 봐서 성곽의 몸체 부분을어떤 재료, 어떤 축조기법, 어떤 축성양식을 가지고 쌓았는가를 살펴야 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여장 부분은어떠하며 어떤 재료, 어떤 기법과 양식을 가졌는가를 살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핀 바로는 체성의 축성 기법과 양식 부분 밖에 달리 여장이라 할 만한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성곽을 다니면서 여장이라 할 만한 것은 흔적조차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삼년산성에는 여장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 것인지, 아님 그 때 내가 둘러보고 있는 그 구간에서만 볼 수 없는 것인지조차 알지를 못했으니 말이다. 성곽 공부가 어려운 것은 같은 성곽이라 해도 경우에 따라서는 수 대에 거쳐 지어졌기 때문에 구간구간 축성기법과 양식이 달라지기도 하며, 같은 구간 안에서도 시대층을 가지며 양식이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수님께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삼년산성에는 여장이 없는 것이 맞다 한다. 워낙 고대에 지어진 거라 여장을 갖추지 않은 산성이라며 말이다.

여장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떠올려보면 일단 여장은 그 재료에 따라 목여장, 토축여장, 석축여장, 전축여장 들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은 체성을 쌓는 방식에서도 목책성, 토축성, 석축성, 전축성으로 나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대체적으로 여장은 체성의 재료와 같은 것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목책성에는 목여장을 쓰게 되고, 토축성에는 토축여장을 쌓는 식으로 말이다.여장은 기본적으로 타와 타구로나누어성곽의 길이를 나타낼 때도 '타'라는 단위를 써서오십 타 구간이니 백 타 구간이니 하는 말로 표현을 하는데, 이 타와 타구를 그림이 아니라 말로 설명하자니참 쉽지가 않다. 이를 테면 요철식 담장 같은 것이 이어졌다 할 때가려지는 부분이 타, 그 사이사이에뚫려있듯 낮게 되어 있는 부분이 타구가 되는 것인데 일반 여장은 하나의 타 안에 원총안이라는 것과 근총안이라는 개구부를 두고 있고 옥개석을 지붕처럼덮고 있다. 총안은 말 그대로 총구멍으로 이해하면 될 텐데, 원총안이라면 좀 더먼 곳을 경계하거나 먼 곳에 공격을 하기 위해 낸 구멍이고 근총안은 근접한 거리를 경계, 감시, 공격하기 위해 만든 구멍이라 하겠다.그러니 근총안은 길이로 길게뚫린 개구부가 되는 것이고 원총안은 조그만 사각 구멍정도에해당하는 개구부가 된다 하겠다. 그러한 모습이 제대로 갖출 것을 다 갖춘 평여장이라 한다면 어떤 여장은타구나 총안이 없이마치 담장처럼 죽 이어진 여장도 있고(연결여장 - 건물 보호의 요구가 강하고 방어가 주목적인 곳,주로 출입구의 문루 건물 앞에 쓰인다.), 타구 없이 총안만 있는 여장도 있다.거꾸로 총안은 없고 타와 타구만 있는여장도 있고 말이다.이러한 것들을 모두 평여장의 범주 안에 넣고 있고, 요철 여장이라 하면 총안이 없이 타구만 있는 평여장과 거의 같지만 여기에는 옥개석이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철여장으로 타구 부분에 단이 진 형태로 어깨가 파여진 형태다. 그 밖에도 총안이 있는 반원형 여장과 총안이 없는 반원형 여장이 있고, 여장이라 하기에는 키가 높은 여장, 통석여장이라 하여 키가 낮은 턱 같은 것으로만 쭉 이어진 여장도 있다. 이 통석여장은 주로 누각의 앞 부분에 있다 하는데 강화도에 있는 많은 문루 건물의 앞에 가면 볼 수 있다 한다. 이 말고도 난간형 여장이라 하여 타나 타구 개념이 아니라 그야말로 난간처럼 이어져 있는(사다리를 뉘어놓은 것처럼) 여장이 있기도 한데 이 역시 누각의 앞에 가면 볼 수 있다 한다.

여기에서 특히 문루 건물에 있는 여장들은 따로 살펴보기도 했는데, 문루 건물에 있는 여장이라 했을 때는 먼저 그것의 특징이 방어기능이 강하다는것이 중요하다.언제나 성곽에서는 가장 취약부분이 출입문이 되겠는데, 특히 이 문이라 하는 건물은 목구조물이기 때문에 불에 매우 약하다. 때문에 문루 건물을 지키는 성곽의 여장은 혹시라도 불을 이용한 공격에 노출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흔히 문루 건물에는 가장 일반적으로 타와 타구, 원총안과 근총안을 모두 갖춘 평여장이 쓰이거나 그렇지않으면 타구 없이 총안만 있는 연결여장, 아님 타구도 총안도 없이 담장처럼 꽉 막혀 둘러 있는 연결여장을 쓰곤 하는 것이다.휴우, 일단 이 정도로만.

남문지 쪽으로 오르다가 성곽이 끊겨 다시 서문지로 내려왔다.아무래도 길목수 형님이오래걷는 게 불편하긴 했지만, 이대로 돌아가고싶지는 않아 한 번 더 물었다. 우리저 반대쪽 성곽으로도 한 번 올라갔다 가면 어떻겠느냐고, 저 위로 올라가면 내려다 보는 경치가 또다를 것 같다고, 언제다시 오게 될지 모르는데 그냥 가기 아쉽다며 말이다. 그랬더니 형님도 좋다며앞서 올라갔다. 그렇게 얼마간 오르다가 뒤돌아서서 조금 전 올라갔다 내려온 남문지 쪽으로 가는 성곽쪽을 사진으로 찍어보았다. 이렇게 보니 중간에 불룩 나가 있는 치 부분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그 밑 부분에 보축이 되어 있는 것도 눈에 잘 띄고 말이다. 아하하, 그 위에서 내가 오줌을 쌌다는 거 아니겠나 ㅎㅎ

이건 조금 더 올라서 맞은 편 치에서 건너편 치와 성곽을 내다 보며 찍은 사진.

이 사진은 왜 찍었더라. 한참을 더 올라가 거의 꼭대기 쯤에서 서북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성곽을 내다보며 찍은 것인데, 저것도 치라 할 수 있겠는지, 암튼 네모지게 툭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눈에 띄어 사진기에 담아놓은 듯. 보축이라 보기에는 그것도 좀 아닌 것 같고, 아무튼 그랬다. 저것 좀 봐라, 저건 또 뭐지 하면서. 사진기를 세워서 찍었더니 여기에 올려져 있는 사진은 누워 있는 것이다.

사진기를 바로놓고 찍은 건 이런 모습. 하아, 길 예쁘다. 마음 같아서는 하염없이 걸어도 좋았을 길.

마지막으로 내려오기 전에 아주 서문지 밑으로 내려가 그 아래서 올려다 보며다시 한 번 사진을 찍어보았다. 사진에 보이는 성벽이 처음 가자마자 올랐던 남문지로오르는길.그리고, 아, 이거 너무 많이 말하고 있나? 저기 보이는치가 거기라는 거. ㅎㅎ

아직 법주사에서 보고 온 건물들에 대해 정리하려면 한참이나 남았지만, 어쨌든 이 날 돌아본 보은의 답사는 그렇게 마쳤다. 정말 알차게 돌아본 하루. 그 전날 여관방에서 형님과 함께 답사할 곳 자료를 준비하던 것까지 하면 후회없이 꽉 차게 보낸 일박이일이었다. 비가 내려 젖은 길로 다니느라 바지 밑단이 흙물에 범벅이 되었지만, 비가 와서 오히려 좋았던 답사길. 방문객이나 여행객들은 물론 심지어는 지키는 분들까지 자리를 비워 마음껏 둘러볼 수 있었으니 그깟 비 좀 맞고 옷 좀 버리면 어떠랴.

마침 청주에 가면 영월까지 오는 기차, 직접 이어지는 건 아니고 제천까지 와서 갈아탈 수 있는 기차가 있다기에 보은에서 청주까지 길목수 형님이 태워다 줬는데 충청북도도 겹겹이 산으로 이어져 있어. 가까운 줄 알았지만 허겁지겁 기차역에 닿을 수 있었다. 생전 처음 타보는 충북선 열차. 글쎄, 다음 주에도 어느 곳을 정해 함께 가자 얘기를 하긴 했는데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 길목수 형님이 가기 어렵다 하면 혼자 갈 준비를 해서라도. ^ ^ 보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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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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