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산성

굴 속의 시간 2010. 3. 19. 01:25

삼년산성의 답사를 다녀와 그곳의 후기를 쓰면서 성곽 관련한 전반의 내용들을 떠올려 정리해보았지만 그 밖에 더 짚어봐야 할 것 같은 부분들 몇 가지를 더 살펴보았다.

삼년산성은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오정산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산성으로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년)에 축조되었으며, 소지마립간 8년(486년)에 아찬 실죽이 일선군 장정 3천명을 동원하여 대규모로 보수하였다고 한다. 삼년산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성으로 사적 제 235호이며, 삼국사기에는 축성을 시작한지 3년만에 환성하여 삼년산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둘레 1,680m, 최고높이 22m, 폭 8~10m에 이르며, 동서남북 4개소에 문지와 다수의 건물터가 남아있다.

이 산성은 신라가 서북지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중요한 전초기지로 사용되었으며, 삼국통일 전쟁 때 태종 무열왕이 당나라 사신 왕문도를 접견하는 장소로도 이용하였다고 한다. 오정산의 능선을 따라 세 봉우리와 서쪽 골짜기를 잇는 포곡식 산성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에서 바라보면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성벽은 납작한 판돌로 한 켜는 가로로 놓고 다음 한 켜는 세로로 놓아 우물 정자처럼 엇물려 쌓았다.특히 기초를 견고히 하여 하중을 잘 견딜 수 있게 하였다.

성벽을 쌓을 때 판돌을 한 켜는 가로로, 다음 한 켜는 세로로 놓아가며 우물 정자처럼 엇물려 쌓았다는 얘기는 여기에서 처음 보았다. 그래서 다시 사진들을 보며 살펴보는데, 어떤 부분들은 정말 그렇게 되어 있는 것도 같고 또 다른 사진의 측면이나 단면들을 보면 갸우뚱하게 된다. 글쎄, 아무래도 가공석이 아닌만큼 어떤 질서나 규칙이 원칙에 맞게 적용되지는 못한 모양이다. 어쨌든 의도 자체는 그렇게 켜켜이 엇물리게 하면서 쌓으려 했다는 정도로만 기억해두어도 좋을 것 같아.

또 한 가지 기초 부분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건 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성벽을 드러내고 땅을 파보지 않는 이상 기초를 어떻게 했는지는 기록에 있는대로 그대로 알아둘 수밖에. 아무래도 이렇게 높고 커다란 성을 쌓으려면, 그것도 돌로만 이뤄져 있어 엄청난 하중을 가진 성을 쌓으려면 그 기초가 웬만큼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될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축성 시기가 470년(축조)이고,486년(보수)이라 했으니 천오백 년을 그 자리에 서 있어온 것이니 그 얼마나 오랜 세월인가 말이다. 게다가 가장 높은 것은 22미터나 된다 하고 폭이 10미터 가까이 되는 것이니 엄청나도 정말 엄청나다. 실제 가서 볼 때도 물론 그랬다.

성곽의 구조를 공부하는 강의시간에 축성 양식 가운데 하나로 지대석 양식 부분을 살펴보기도 했는데 크게 보아 세 가지로 분류했더랬다. 지대석을 1단으로 한 일반 지대석이 그 한 가지 양식이고, 지대석을 2단으로 둔 중첩 지대석이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아예 지대석이 없는 경우를 들면서 말이다. 지대석을 1단으로 두는 일반 지대석은 가장 많은 경우에 해당한다 하겠다. 지대석 밑에는 잡석지정을 하게 되고 규모가 크고 넓적한 기초석을 지대석으로 뒨 뒤 그 위에 성돌을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지대석 둘을 겹쳐 쓰는 중첩 지대석 양식 같은 경우는 지반이 약하거나 아님 체성이 무척 클 때인데, 글쎄 삼년산성에서 지대석을 어떻게 썼는지는 나로서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지대석이 없는 경우는 암반으로 된 지반 위에 체성을 쌓는 경우일 텐데 이 때는 지정이라는 것도 따로 필요가 없고 지대석도 물론 따로 둘 필요가 없겠다. 이것은 마치 목조 건축물에서 자연암반 위에 기둥을 세울 때 기초 없이 바로 세우던 것과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위에 있는 설명글을 읽는데 '오정산의 능선을 따라 세 봉우리와 서쪽 골짜기를 잇는 포곡식 산성을 이루고 있으며' 하는 대목이 나왔다. 포곡식 산성이라면 익히 들어본 말이다. 아, 그런데 삼년산성에, 그것도 서쪽으로 골짜기가 있었다니? 내가 줄곧 돌아본 곳이 서문지를 중심으로 해서 서쪽이었는데 말이다.그래서 다시 지도도 살펴보고 했더니 서문지 바로 앞에 있는 연못 아미지를 그 계곡으로 표현하는 모양이었다. 길목수 형님과도 그 아미지를 보면서 아니 산성에 이렇게 연못이 있네, 이 물을 어디로 빼주어야 하나, 수구 같은 게 있을 텐데…… 같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아,그래서 삼년산성 또한 포곡식 산성이 되는 거였구나.

성곽을 분류해보면 그 기준에 따라 몇 가지로 나눠볼 수가 있다. 우선 축성 재료에 따라 목책성, 토축성, 석축성, 전축성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 목책성은 쉽게 생각해 나무 울타리 같은 것으로 가장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청동기 때부터 이미방어용 목책으로 이미 사용되었고, 다른 재료로 쌓은 성곽보다 취약하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쓰이지는 못한다. 또는 일단 목책으로 구성을 했다 하더라도시간이 지나 다른 재료의 성곽으로 보완, 대체가 되기도 할 테고 말이다. 대표적으로는지금도남아 있는 몽촌토성을 들 수 있겠는데, 이것은 백제 시대의 것이지만 고구려의 유물(밑바닥이 평평한)도 발견되고있는, 평지에 세운 책성이다.토축성은 말 그대로 흙으로 축조한 성곽인데 이것은 기법에 따라 판축법과 성토법, 삭토법, 토석혼축성 등으로 나뉠 수 있다. 판축법은 15~20cm 두께 정도의 흙을 계속 다지면서 쌓아올라가는 것으로 벌레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매우 견고하고 단단하다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단점을 지닌 기법. 성토법은 판축 다짐을 하지 않고 토루를 만들듯 주변의 흙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삭토법이란 완만한 지형의 외면벽을 급경사로 깎아 조성한 방식이고 토석혼축성은 성곽의 토루를 조성할 때 그 내부에 석재를 넣고 외부를 흙으로 마감하여 축조하는 방식이라 하는데, 바로 그 까닭 때문에 이것이 토성인지 석성인지를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토축성들은 그나마 원형을 알아볼 수 있는 판축기법의 성을 제외하고는 어디까지가 성곽인지, 어디부터가 원래의 땅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그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에 쓸려가기도 했을 것이고, 또는 먼지층이 두껍게 쌓여 분간하기 어렵게 되었으니 말이다. 석축성은 가장 이상적인 성곽 축조 재료로 여겨지지만 채석과 운반의 어려움, 석재를 다루는 가공 기술이 많이 필요한 것이어서 손쉽게 만들 수는 없다 하겠다. 그래서 태조년간에 쌓은 서울성곽을 보면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성을 쌓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돌을 구하기 쉬운 산지에서는 석성으로 쌓고, 돌보다 흙을 구하기 쉬운 평지에서는 토성으로 쌓으면서 말이다. 전축성은 전돌 혹은 벽돌을 이용하여 쌓은 성곽이겠는데, 우리나라에는 순수 전축성을 찾아볼 수 없고 돌과 전돌을 혼용해서 쌓은 혼축성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성을 쌓는데 전돌이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체성 부분보다는 여장이나 홍예 같은 곳에 주로 쓰인 것이고 말이다. 이러한 사례를 찾자면 수원 화성의 일부 구간이나 일부 부분(옹성이나 문, 여장)에서 쓰인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살펴본 것은축성 재료를 기준으로 분류해본 것이고,축성 지형에 따라 다시 분류를 해보면 우선은 커다랗게 산성과 평지성, 평산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산성은 말하자면 산에 지은 성곽이라는 뜻인데, 전쟁이 났을 때 방어에 가장 유리한 지형이 산성이기 때문에, 대피성의 개념으로 많이 쌓았다. 그런데 이러한 산성도 또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산의 정상부 능선을 따라 축조한 퇴뫼식 산성과 계속을 감싸는 산지의 능선을 따라 축조한 포곡식 산성, 그리고 산지의 능선을 따라 축조했지만 계곡이나 산지를 여러 개 포함하여 퇴뫼식이나 포곡식 어느 것으로도 정의하기 어려운 성곽을 일러 복합식 산성이라 한다 했다. 각각의 특성이나 장단점을 살펴보면 먼저 산의 정상부 능선을 따라 축조한 퇴뫼식 산성 같은 경우에는 일단 수원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규모도 작을 수밖에 없으며, 수용인원도 적기 마련이다. 이에 반해 포곡식 산성 같은 경우는 일단 골짜기라는 수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고, 더 오랜 시간을 머물 수 있어 장기전에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 규모 자체도 퇴뫼식 산성보다는 크게 가져갈 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안학궁의 대피성으로 지은 대성산성이나 공주의 공산성이라 했다. 그런데 여기 삼년산성도 바로 이 포곡식 산성에 든다는 것이다. 퇴뫼식 산성과 포곡식 산성 외에 위에서 언급한 복합식 산성이라는 것이 더 있다 하겠다. 산성이라는 것은 이렇게 세 가지 정도의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평지성이란 말 그대로 평지에 위치한 성곽이 되겠으며, 평산성은 평지와 산지를 포함하거나 산지를 배후로 하여 해안이나 강안 지역에 조성된 성곽을 말한다 할 수 있겠다.

그 밖에도 축성 위치에 따라 도성의 주변성과 국경성, 해안성, 강안성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겠다. 도성의 주변성은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도성 인근에 축조한 성곽과 대피성을 말하는 것인데 북한산성도 그러한 예가 될 것이며 경주 둘레의관문성이나 명월산성 같은 것도그 사례가 된다. 국경성은 국경지역에 축성하여 외세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한 성곽이며 해안성은 해안을 통한 외세 침입을 대비한 성곽이고, 강안성은 강안을 통한 외세 침입을 대비한 성곽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해안성과 강안성은 거의 국경성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여기에서 강안성의 대표 사례라 하면 압록강, 두만강 둘레에 있는성곽들을 말할 수 있겠고, 한강 주변의 몽촌토성 역시 강안성의 사례에 든다고 했다.

그리고보은문화원에서보게 된 이 자료는꼼꼼히 살펴보려 했는데 아직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일단 링크만 시켜놓고 저금. 삼년산성의 지형도부터 실측도, 내부배치도와 기단부의 사진, 상대초석과 하대초석의 사진과 도면, 구간 별로 성벽의 외벽과 내벽, 측면의 단면 사진과 그림들이 아주 상세히 나와 있다. (그런데 솔직히 성곽 공부는 어떻게, 어느만큼까지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문화재로 지정된 성곽만 천팔백여 개가 넘는다 하는데 그것들마다 하나하나 뜯어 살펴야 하는 것인지,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아님 그 가운데 중요 성곽이라 할만한 것이 따로 있기는 한지…. 교수님도 어느 강의 시간엔가 성곽 공부는 개별 문화재들에 하나하나 덤벼서는 해낼 수가 없다며 달리 해야 한다고 말해준 것 같은데, 어우 도무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한 가지 더,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게 된 것인데 이번에 다녀온 삼년산성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잠정목록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뉴스.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나 기억을 돕기 위해 퍼옮겨 놓는다. (퍼온 곳)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오른 곳들이 보은의 삼년산성을 비롯해 청주의 상당산성, 제천의 덕주산성, 괴산의 미륵산성, 단양의 온달산성, 충주의 장미산성, 충주산성 들이라 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도 한 곳들이다. 시간으로 여유만 있다면 그 산성들을 모두 걸어걸어 한껏 느끼고 싶지만 그럴 수 있으려나 몰라. 혹시 누가 놀자고 하면 저어기 산성이나 함께 걷자, 하면서 놀아도 좋겠구나하는 생각이나 잠깐 해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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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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