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답사 6

굴 속의 시간 2010. 3. 16. 15:04

환구단

사직단을 둘러보고 난 뒤 다음 코스는 환구단. 환구단에 대해서는 자료들을 찾아 어느정도 살펴 본 일이 있었다. 그러니 더욱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택시기사 아저씨에게는 환구단 가주세요 하는 것보다 조선호텔 가주세요 하는 편이 나을 일. 앞서 자료를 살펴볼 때도 많은 사람들이 탄식해 마지 않던 것처럼 환구단은 이미 조선호텔 뒷문 쪽, 커피숍에서 내다보는 후원 정도로 전락해 있기 때문이다. 일제에서 황궁우를 헐어 그 자리에 경성철도호텔의 지은 뒤 그 호텔이 지금의 조선호텔로.

시청 앞 광장, 그리고 그 뒤로 몇 개의 호텔과 빌딩 숲 사이로 들어가니 정말 조선호텔의 뒷마당 같은 곳에 기와를 인 팔각삼층건물이 살짝 보였다. 나야 시청 앞은 자주 갔어도 호텔 쪽으로야 갈 일이 거의 없었으니 지나치면서도 본 일이 없어. 일부러 찾아온 사람이면 누구나 착잡한 마음일 것이다.

강의에서 교수님은 '일제는 이미 조선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고, 그 수순을 밟고 있었는데 왜고종이 황제의 나라를 참칭하며 대한제국을 선포하고황궁우를 세우는 것을 그대로 봐주었을까' 하는 질문을 한 일이 있었다. 많은 자료들에는 고종이 황제국의 위용을 과시하고청나라나 일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위한 거였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본이 일부러 조선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위해서는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를끊게 하기 위해 그러지 않았겠느냐는 얘기였다. 당시환구단에서 있던 고종의 황제 즉위식 장면을 묘사한 외교관들조차 '그처럼 즐겁지 않은 황제 즉위식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하고, 고종 자신도 그날 아침부터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니차라리 그러한 해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팔각평면의 삼층 건물. 1, 2층이 통층으로 되어 있고, 3층의 각 면에는 각각 세 개씩의 창이 나 있는, 온칸물림으로 중층을 이루는 건물이다. 내부에는 층을 달리하여 평면의 위계를 달리했으며 여덟 면을 돌아가며 제단 같은 것들이 있다. 바깥 기둥열은 보조기둥들을둬 기둥이세 개씩 있는 모습이며, 기둥과 기둥 사이의 창방 밑에는 낙양각이 있다. 지붕을 보면 2, 3층은 겹처마, 1층은 홑처마인데 이러한 때 연목을 원재로 쓰고 부연을 각재로 쓰는 것이 보통인데, 1층은 부연 없는 서까래인데 각재로 썼다.



맨 바깥의 기둥열이다. 보조 기둥을 두 개씩 더 세웠기에 팔각의 한 귀퉁이마다 이처럼 기둥이 셋씩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를 잡아주는 창방 밑에는 낙양각을 설치. 여기에 쓰인 포작을 보면서 이것이 초익공인지, 이익공인지 서로 이야기가 좀 있었는데 사진으로 보고 있는 1층에서는 초익공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안그래도 교수님은 익공 양식을공부하던 강의 시간, 귀포를 볼 때 익공 수를 착각하기 쉽다면서 헷갈릴 때는 평주 위를 살펴보라고 했다. 왜냐하면 도리방향에서는 장혀 뺄목도 마치 익공처럼 초각을 해 놓아서 익공으로 착각하기 쉽다며 말이다.헷갈리게 하는 것은 장혀 뺄목 뿐 아니라 보머리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단청까지 되어 있을 때는더욱 헷갈리기가쉬워.


이 사진들은 각 층의 공포부들을 찍은 것이다.2층, 3층의 것들은 줌으로 끌어당겨 찍은 거라 별로 또렷하지가 않다. 하지만 1층은 보방향으로는 보머리 초각이, 도리방향으로는 장혀 뺄목 초각이 있는 몰익공의 초익공 양식임을 알 수 있고, 2층과 3층은 끝이 뾰족하게 초각된 익공 둘 위에 장혀 뺄목 초각이 있는 이익공 양식임을 알아볼 수 있다. 2층과 3층은 이익공 양식이니 주두 또한 대주두와 재주두 둘이 보인다.

1층 내부에서 바깥 쪽을 보며 찍은 사진.

1층 내부에서 천정을 보며 찍은 사진. 추녀와 서까래 모두 각재를 쓰고 있으며 말굽선자로 되어 있다.


1층은 반외부 공간이어서 들어설 수 있었지만 2층 기둥열로 둘러진 건물 내부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문도 모두 막혀 있어서 바깥에서 들여다 볼 수도 없었는데 곳곳에 분합문의 창호지가 발라져 있지 않은 곳들이 아주 조금씩 있어 그 안으로 눈을 대고,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고 되는대로 찍어보았다. 내부의 가운데에는 태조의 신위를 모시는 제단이 있다 했고 그 둘레로 여러 천신들의 제단이 있다 하는데, 그렇게 구멍으로 볼 때는 내부를 빙 둘러 제단들이 있구나 하는 정도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부의 지붕 구조를 볼 수 없던 것은 물론이다. 그나마 또 한 가지 보고 싶은 것은 바닥면이 각 층마다 높이를 달리해 위계를 두었다 하는데, 겨우 이 정도로나 사진을 찍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딛고 있던 자리가 반외부 공간인 1층이니 거기부터 하면 층을 지며 점점 높아지는 것이 맞다.

환구단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황궁우 건물과 황궁우의 석조 대문, 그리고 고종 즉위 40년(51세)을 기념하여 만들었다는 돌북만이 남아 있다 하는데 이것이 그 가운데 하나인 석조 대문이다. 저 뒤로 보이는 멋진 빌딩이 바로 조선호텔, 그러니 이 문은 조선호텔의 뒷문이거나 쪽문 쯤으로 보이겠다. ㅠㅠ (아, 남아 있는 것 하나가 더 있다. 1960년 해체되어 없어졌다고 하던 환구단의 정문이 강북구 우이동 옛 그린파크호텔 터에서 발견(2007)되어 2009년 12월에 복원을 마쳤다는 뉴스를 올려놓은 일이 있다.)


황궁우 건물 오른 편에 있는 석고. 정말 어찌 저리 했을까 싶을 정도로 조각이 대단하다.



환구단의 정문은 황궁우에서 돌아내려온 곳에 복원되어 있는데, 이러한 내용을 모르면 사실 이 문과 저 뒤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 황궁우와 별 관계가 없을 정도로 생뚱맞게 서 있다. 표지판 내용을 잘 읽어보면 이 정문은 그동안 우이동의 그린파크호텔 정문으로 쓰이고 있었다 한다. 정문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문 건물의 모습이다.



측면을 보면 이 정문에는 이익공 일출목의 익공 양식임을 알 수 있고, 출목이 있는 오량 맞배지붕 건물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측면의 가운뎃 기둥은 종보를 받고 있어 맞보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그 어미기둥을 기준으로 전면 쪽은 방화벽으로 되어 있고, 후면 쪽은 판재로 벽을 쳐놓았다.

서울문화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환구단에 대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건 환구단 정문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동영상.(여기에서 퍼왔다.)

'굴 속의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몇 가지 질문  (4) 2010.03.17
서울답사 7  (2) 2010.03.16
서울답사 5  (0) 2010.03.15
속리산 펜션  (0) 2010.03.15
서울답사 4  (0) 2010.03.12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