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대로 따라가자니 그 건물들을 다 찾아보며 다지고 가기에는 꼬박 하고 있어도 아직 한참 멀었고, 그래서 일단 점핑! 지난 주 수업 복습으로 넘어왔다. 주심포 건물들을 살핀 뒤 다포 양식의 건물들과 익공 양식, 하앙식, 그리고 소로수장 가구들과 장혀수장 가구들, 민도리 가구들까지 아직 못 쫓아가고 있는 것들이 한참이다. 그렇게 가구 구조들을 살핀 뒤 상부의 지붕 구조로 들어가 맞배지붕부터 우진각지붕을 거쳐 팔작지붕 구조로 들어서게 되는데, 건너 뛰어도 정말 후욱 뛰어버렸다. 아무래도 밀린 복습에만 계속 매어 있으면 다음 수업을 쫓아가기가 버거울 것만 같아, 계속 밀린 채 못 쫓아갈 것만 같아. 그래서 지난 주에 공부했던 팔작지붕 구조와 모임지붕 구조, 혼합양식 구조, 중층구성 양식의 구조들 복습으로 넘어왔다. 으아, 그런데 참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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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작지붕의 구조

01. 부석사 무량수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팔작지붕 건물이 바로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봉정사 극락전보다는 뒤인 것 같고, 수덕사 대웅전보다는 앞섰을 거. 일단, 팔작지붕의 구성을 공부자하면 종단면도 보다 횡단면을 주의깊게 바야 한다. 그러면서 각 건물을 볼 때마다 꼭 이해하고 가야할 것이 이것들이다.

팔작의 측면을 어떻게 만들어줬는가, 그러니까 측면서까래를 어떻게 받춰줬는가 하는 것,

팔작지붕이면 당연히 생기는 측면의 합각부, 그 합각부가 어느 위치에 들어가는가 하는 것,

합각부의 틀을 형성하는 지부사라는 거대한 틀이 어떠한 형식으로 합각구조를 잡아주고 있는가,

추녀는 어떻게 올라가 결구되고 있는지, 추녀의 뒷뿌리가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이제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면, 부석사 무량수전을 비롯 초기 팔작지붕들은 측면 서까래를 쭉 올려서 종보가 받고 있는 형태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기에도 외기도리라 할 만한 것이 있기는 하다. 횡면으로 봤을 때 하중도리의 높이에서 종방향으로 지나오는 도리. 이것이 가능할 수 있던 것은 기둥열이 이주법을 쓰지 않고 정치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횡단면도로 끊었을 때 퇴칸의 넓이와 종단면도로 끊었을 때 퇴칸의 넓이가 같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만약 두 퇴칸 면의 폭이 갖지 않으면 외기도리에 있어서 측면과 횡면에서 똑같은 형태를 구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건물에서는 퇴칸의 너비들이 똑같을 수 있고, 그러다보니까 측면 서까래가 올라가는데 외기에서 끊이지 않고 종보까지 올라가는 형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기억하는 것처럼 정면은 다섯 칸, 측면이 세 칸으로 이뤄진 건물이다. 밑에서 올려다 본 앙시도면을 보면 퇴칸과 측면에서 봤을 때의 퇴칸이 그 폭에서 동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건물평면의 네 귀퉁이에 있는 칸의 세로가로 폭이 일정한 정방형의 모양이다.그 정방형의 공간에는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귓보가 보이는데, 이 귓보가45'로 걸렸다는 건 가로세로의폭이 같다는 걸 거꾸로 확인시켜주는셈이다.다시 말해내진열의 귓기둥에서 외진열의 귓기둥으로귓보가나가고 있다는 것이며마찬가지로 추녀도 그 위에서 올라가게 된다.바로 이 추녀가 어떻게 올라가는가 하는 것이 팔작 건물에서는 중요한데,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는일단 외목도리 왕찌를 올라타면서 시작한다. 그러고는 주심도리 왕찌에서는 주심도리 왕찌를 반 정도 파고 물고 들어간다. 그런 뒤에 하중도리 왕찌 부분에서는 위로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밑으로들어가, 그 부위에서 결구를 하게 된다.그런니까 추녀가 외목도리를 타고 올라가다가 주심도리 부분부터는 온전히 올라타지 못하고 반을 파면서 물고들어가고, 하중도리에서는 그 밑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서까래의 경사가 점점 왕찌들의 경사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중도리 왕찌 밑으로 들어가면서 거기에서 추녀와 하중도리 왕찌가 결구되고, 추녀의 뒷뿌리는 좀 더 올라가 내진열의 귀주가 끝나는 머릿부분 보다 조금 높은 위치까지 연결되어 딱 붙어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부분, 하중도리 왕찌를 지나 내진귀주까지 올라간 추녀 뒤뿌리의 부분은 다른 부재들과 결구가 되어 있지는 않다. 추녀 뒷뿌리를 그냥 45'로 깎아서 밀착이 되게 대놓았을 뿐이다. 그래놓고는 철물을 이용해 고정시켜놓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그 철물고정이 커다란 역할을 하지는 못하고 그냥 잡아주는 정도로 박아놓은 것 같다. 그러니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는 추녀가 실질적으로 결구하고 있는 건 하중도리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왕찌 위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그 밑으로 파고 들어갔다는 게 특이!

추녀는 언제나 뒷뿌리가 들리거나 빠지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강다리로 고정을 한다던지 아니면 관아나 궁궐 같은 곳에서는 띠철로 감아놓는다던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돌이라도 올려놓거나 했다. 그만큼 항상 추녀의 뒷뿌리가 들리는 게 걱정이었다. 우진각 지붕도 마찬가지였고, 팔작지붕도, 모임집도 다 마찬가지.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추녀 뒷뿌리가 들리지 않도록그것의 밑 부분에 있는 부재에감아 놓았다.그런데 고려시대에는 추녀 뒷뿌리가 들리는 것을 어떻게 해결했는가 하면 추녀 뒷뿌리가 왕찌 밑으로 들어가게 하여왕찌가 추녀를 타고앉게 했다. 그렇게 해서 추녀 뒤가들어올려지려는 힘을 지붕하중으로 내리 누르려한 것이 아니었을까 보여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추녀 뒷뿌리를 고정시킨 사례들이 초기 팔작지붕들에서 더러 보이고 있다. 이렇게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는 추녀가 하중도리 왕찌밑을 파고 올라갔으니 추녀가 들리려고 하면 지붕을 다 들어야 하는 것이 될 테고, 그 힘은 지붕에 있는 상부구조로 내리 눌러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확인. 추녀는 외목도리에서는 정상으로 타고 올라 있고, 주심도리에서는그 왕찌 부분을 반쯤파고 들어가면서 내리깔고 앉아 있다.그러다가 하중도리 부분에서는 그 밑으로 들어가 있다. 그러니 이 추녀 뒷뿌리가 들리려면 하중도리 위의 모든 상부 가구가 다 들려야 하는데그 하중을 상부의 하중이 다 내리 눌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추녀 뒷뿌리가결구되는 하중도리 왕찌 부분부터 그 위는 말하자면 맞배지붕이 올라간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그 하중도리를 기준으로 그 밑은 우진각 지붕이 짤린 형태이다. 그러니까 우진각 지붕처럼 추녀를 구성하다가 그 위에는 합각지붕이 내리누르는 형상으로 만든 거라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추녀의 뒷뿌리는 내진고주의 귀주 부분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거기에서는 결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그 상태에서 하중도리의 측면도리를 기점으로 측면에 합각이 들어서게 되는데, 합각이 들어서려면 人 자 형태로 된 지부사라 하는 부재를 써야 한다. 이 지부사라는 합각의 틀이 있어야 박공도 붙이고 풍판도 갖다 대고 할 텐데, 만약 이러한 합각틀이 없다면 하중도리와 중중도리, 종도리의 마구리면들이 그대로노출되게 된다. 그래서 人 자 형태의 지부사라는 부재를 대는 것이다. 또한 그 위의 종마루에는 용마루곡을 만들어야 하니 그 부분에도 지부사와 연결을 시키면서 작은 목재를 갖다 댄다. 마치 추녀 쪽 선자서까래의 하부에 갈모산방이라는 받침을 대는 것처럼 그 위에도 작은 받침재를 대는 것이다. 그래야 용마루곡이 양쪽 끝으로 갈수록 올라가는 형상을 만들 수 있다.

합각의 윗쪽은 그렇게 용마루곡을 위한 받침재를 대고, 옆쪽으로는 人 자 형태로 나무를 잘라 측면 삼각형의 합각을 만드는 틀을 대는 것인데, 지부사라 하는 그 틀에 박공도 붙이고, 풍판도 달고 하는 것이다. 이 때 이 지부사는 단순히 합각의 틀만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는데, 그것은 이 지부사 역시 추녀가 들리는 것을 방지해준다는 것이다. 지부사의 위치를 보면 추녀의 등을 밟고 앉아 있다. 그런데 이 지부사는 그 자체로무게가 나가는 부재이기도 하면서 이것이 직접 측면의 풍판이나 박공 같은 측면 합각부를 다 달고 있어꽤 무거운 하중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지부사가 추녀를 밟고 있으니 추녀의 뒷뿌리가 들리는 것을 방지하는 것에 일조를 하게 되는 것이다.또 한 편으로는서까래가 걸린 위로 서까래들이 들리지 말라고 누리개 같은 것이 건너질러지는데,지부사에서 그 누리개 위로도 동자주 같은 것을 내려 받게 하고 있다. 아무래도 지부사가 人 자형 부재다 보니 그 중간이 부러지거나 붕괴될 수 있어 그 중간을 받쳐주는 부재를 누리개 위에 세운다는 것이다. 이 때 이 누리개도 추녀 위를 걸터서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까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추녀가 들리는 것을 방지하려 하는데,흔히 추녀 들림을 방지하는 것이라 할 때 '추녀 들림 방지는 강다리, 철물, 돌' 정도로만 떠올리곤 하는데 그게 끝이 아닌 것이다. 지부사라 하는 부재가 추녀의 뒷뿌리를 올라타고 있기 때문에 지부사도 추녀의 뒷뿌리가 들리는 것을 방지하는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추녀의 뒷뿌리 고정 하면 너무 단순히 생각하지 말고 이 추녀의 뒷뿌리에 결구되어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고려시대, 조선 초기 팔작 건물들은 추녀가 들리는 것을 강다리보다는 도리 왕찌 부분이 올라타고 있는 형상이니까 추녀를 결구하는 방식, 추녀 뒷뿌리를 고정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지부사라는 것 잊지 말 것! 지부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살필 것!" 쉽게 생각하면 지부사 따로, 추녀 따로 생각할 수 있는데 인접되어 있는 부재들은 서로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주고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서로 인접한 부재들을 보면 그것들이 저마다어떠한 도움을 주고, 어떤 식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지 잘 살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지부사가 서 있어야 하는데솔직히 추녀 위 밖에는 마땅히 밟고 서 있을 것이 없다. 그렇다고 서까래를 올라타기에는 서까래가 너무 약해 부러지기 십상이니 추녀말고는 달리 올라탈 게 없는 것이다. 그러니 지부사와 추녀는 이렇게 상부상조, 추녀는 지부사의 발판을 제공해주고, 지부사는 추녀 위로 올라섬으로써 추녀가 들리지 않게 밟아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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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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