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답사 2

굴 속의 시간 2010. 3. 10. 16:34

근정전이다. 흥례문을 지나 영제교를 건너고 다시 근정문을 지나 들어가게 되는 경복궁의 정전.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 건물 안으로 몸을 집어넣어 겨우 내부를 살핀다. 정전 내부에도 공간의 위계에 따라 천정에도 층이 나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을 왜 찍었더라, 근정전은 공포의 내부 초각을 잘 보라 했다는데 사실 그 대목이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이 날 답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강의를 듣는길목수라는 형님과만나 같이 다니게 되었는데, 그 형님이 일러주던 얘기였다. 글쎄, 일단 잘 봐둔다. 내출목쪽으로는 구름모양으로 초각들이 되어 있다. 근정전.

이 건물은 강녕전이다. 근정전을 지나 강녕전으로 가기 전에 사정전이라는 건물이 하나 더 있기는 한데 사정전을 보면서는 건축 양식에서 특별히 봐두어야 할 게 없다 여겼는지 사진을 찍어두진 않았다. 그래도 궐내의 입지를 생각하면 사진 하나씩은 찍어둘 걸 그랬나 보다. (답사초보자라다 보니 어떤 걸 사진으로 담아두어야 하는지, 무얼 메모해두어야 하는지 좀 서툴었다.) 아무튼 근정전 건물 뒤에 있는 사정전 건물은 경복궁의 편전, 왕의 공식적인 집무실인 곳이다. 그리고 정전이라 했던 근정전은 그야말로 왕권을 상징하는 궐내 가장 중심 건물로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외국사절의 접견 등 국가 행사를 치르는 곳이었고 말이다. 이렇게 정전인 근정전과 편전인 사정전을 지나면 강녕전이 나온다. 강녕전은 왕의 사적인 공간인 침전이다.

이 사진은 왜 찍었더라, 아마 저 용마루를 다시 확인하면서 찍은 듯 하다. 사진으로 보다시피 용마루가 없다. 지붕 꼭대기의 용마루는 말그대로 용을 상징하는데, 용이란 다시 말해 왕을 상징키도 한다. 그런데 이 집은 왕이 누워 잠을 자는 공간이기도 한데, 용(왕) 위에 용(용마루)이 있게 할 수 없다 하여 이와 같은 궁궐의 침전에는용마루를두지 않았다. 왕이 둘 있을 수 없다는 뜻이라던가. 또한 사진에서 보듯 침전인 강녕전 앞에도 월대가 놓여 있다. 월대가 있다는 뜻은 이 공간 역시 연회를 열었다는 뜻일 텐데,그것은 침전의 공간에서 역시 정사를 논하는 정치행위가 이뤄졌을 거라는 뜻이 될 것이다.

합각부를 보면서 찍은 사진이다. 합각부의 마감은 재료에 따라 흙으로 미장을 하거나 판재로 마감을 하거나 이처럼 전돌과 회를 섞어 문양을 넣거나 아님 와편으로 무늬를 넣기도 하는데, 특히 전돌로 문양을 넣는 곳들은 왕과 왕비의 침전 혹은 대비들을 위한 건물에 그러하다. 정전이나 편전 같은 건물들은 판재로 마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검소함을 중요시한 유학의 이념을 따르느라 그런 것이라 한다. 또한 아무래도 합각부를 전돌 같은 것으로 하려면 합각부의 하중이 커지기 때문에 건물 자체의 부담이 커지는 것도 중요한 까닭일 것이다.

아, 그리고 이 합각부를 이루는 박공들 사이사이에는 까치발을 대놓았다. 길목수님의 설명은합각부의 하중이 커지기 때문에 그것을 지지, 보완해주기 위한 것 같다 하는데, 조금 뒤에 나오는 교태전의 작은 건물 합각부에도 그러한 까치발이 보인다. 그렇담 작은 건물들에서는 양식의 통일을 위해 장식적 기능으로 까치발을 대준 것인지. 부재들을 볼 때는 한 가지 기능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장식적 기능인 것 같다 할 때 역시 그것은 어떠한 구조적 필요에 의해 쓰여졌을 것이며, 그 필요에 의해 쓰이면서 장식적인 효과를 가미한 것이 대부분일 거라며 말이다. 보통 합각부의 박공에는 목기연을 끼워넣는 것만으로 마감이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건물, 강녕전 뿐 아니라 교태전을 비롯 궁내 대부분 건물에는 이처럼 박공에 까치발을 대준 모습들이 보인다. -그 쓰임과 의미에 대해서는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아참, 경복궁에는 다포식 중층건물로 세 개의 문과 근정전 뿐이라 기억하는데, 역시 강녕전 역시 공포부가 이익공으로 간소하게 처리되어 있다.


강녕전 뒤에 있는 교태전이다. 강녕전이 왕의 침전이라면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 여기에도 또한 용마루는 생략되어 있다. 건물 전체의 모습은강녕전과 거의 같다.강녕전에는 월대가 있었으나 교태전에는 그것이 없고, 교태전의 양 옆으로는 부속건물들이 이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전면의 칸 수가 강녕전보다 교태전이 한 칸씩 적다는 정도가 다르달 뿐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아참,강녕전에서는 특이하다 할 만한 것이 맨 끝의 퇴칸은 기단이 낮아지면서 누하주 형식의 석주가받치고 있다는거였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모두일제가 창덕궁에 소실된 침전을 짓는다면서이 건물들을 헐어 창덕궁 희정당과 대조전을 지었다 한다. 그래서 지금 보는 두 건물은 모두 1995년에 복원한 것이다.

방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마루에는 올라설 수 있어 들어가 천장 위를 올려다보니 특이한 모습의 주두가 눈에 들어왔다. 팔각주두를 쓴 것인지 아님 사각주두를 틀어놓은 것인지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겠으나 나로서는 처음보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주두의 두께도 아랫 것보다 재주두인 위에 있는 것이 더 두껍다. @@

교태전 퇴칸에서 맞붙어 이어진 부속건물들의 문과 행랑 난간이다.난간에 쓰인 조그만 화반들이 눈에 띄었다.

교태전과 그 부속건물들에 있는 합각부 모습이다. 역시전돌로 문양을 예쁘게 해놓았다. 박공 사이사이에 까치발들도 보인다.

얘는 교태전 뒤에 있는 아미산이라는 왕비의 후원. 경회루 연못을 팔 때 나온 흙을 옮겨다 쌓은 계단식 화단이고 전돌로 만든 굴뚝들이 있다. 그러니까 저 굴뚝은 교태전에서 땐 불이 땅 밑으로 연기길을 내어 후원으로 뽑아 올린 것이다. 그리고 강녕전과 교태전 두 건물은 1918년에 헐렸다가 1995년다시 만들어진 거라지만 이 굴뚝만은 고종 때 만든 그대로라는 거.아미산, 아미산 하여 아미산이 뭔가 했더니 요 작은 언덕이었어.

교태전 일원에서 담장 너머의 자경전을 보며 찍은 사진이다. 합각부를 예쁘게 장식한 예로 강의 시간에 늘 이야기되던 곳이 자경전이었다. 담장들도 참 예쁘게 해 놓았다. 흥선대원군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건물.그 건물도 두 차례 불에 탔는데 1888년 재건한 뒤로 경복궁 침전의 전각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 건물이란다. 건축 양식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다 여겼는지 사진을 찍지 않았는데, (사실 건물마다 사진기를 들이대는 게 처음에는 왜 그리도 어색한지 사진기를 주머니에서 잘 빼지를 않았다. 일단 되는대로 찍어두었어야 하는데 ㅠㅠ) 아무튼 저 자경전 안에 들어가 행랑 한 구석에서 김밥을 까 먹었다. (경비 아저씨 없었음.)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나서는데, 역 계단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김밥을 팔기에 라디오스타 영화가 떠올라 사가지고 갔더니 출출하던 차에 아주 요긴했다. ^ ^


향원정이다. 평면배치 양식을 공부하면서 육각형 평면 건물로 살펴본 것. 저 정자 안으로 들어가려면 연못 안으로 나 있는 취향교를 건너야 하는데 거기에는 '들어가지 마시오'라 써 있어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다.기껏해야 멀리서 줌 렌즈로 끌어다 보는 것으로 만족. 육각기둥을 써서 올린 중층의 정자다. 외1출목의 주심포식 익공 건물. 특이하게도 절병통이푸른빛이도는데 그게어떤 재질인지는 잘 모르겠다.아차, 연못 북쪽의 '열상진원'이라는 우물을 확인하지 못하고 왔구나. 이 연못에 물을 마르지 않게 한다는 샘.

향원정 뒤로는 고종이 지냈던, 그리고 명성황후 시해 장소로 알려진 건청궁이 있고 그 서북쪽으로는 집옥재 일원이 있다. 양옆을 벽돌로 쌓아올린 청나라풍의 건물인데 그 왼쪽에는 역시 청나라풍의 팔각정자인 팔우정이, 그 오른쪽에는 협실당이라는 조선식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는 그 밑으로 내려오면 제례를 위한 건물이던 태원전이 있고, 태원전 일곽을 지나 더 내려오면 경회루가 나온다. 정말 듣던대로 무지무지하게 큰 누각.



경회루의 측면. 박공을 보니 수리보수를 하는 과정에서 그랬는지, 애초부터 그랬는지 박공널 하나가 부재 셋으로이뤄져 있더라.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시피 누하주의 바깥 기둥들은 사각이고 그 안에는 원형,천원지방설에 따라 기둥배치를 했다는 그것이다. 이것을 중층건물로 본다면 적층형이 되는 것인데 누하주와 누상주 사이에는 뺄목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귀틀을 누상주하부를 파고 꽂은 것이다.

정면에서 보는 모습. 가장 답답한 건 이 건물 역시 2층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다는 거였는데 2층으로 들어가면 내내진 공간과 내진 공간 그리고 외진 공간이 한 뼘 정도의 높이 차를 두어 공간 위례를 나눠놨다던데 그거야 그저 자료에서 본대로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내내진의 세 칸은 천지인의 삼재를 뜻한다 했으며 내내진을 이루는 여덟 개의 기둥은 팔괘를, 그 둘레를 이루는 내진 열두 칸은 일년 열두 달을 의미한다고 했다.그리고 내진 공간에 있는 예순넷의 분합문은 64쾌를 의미, 맨 바깥의 스물 네 칸은24절기를 의미한다던가.

연못 앞 벤치에 앉아 칸의 너비를 비교해 보았다. 얼핏보면 칸 너비가 모두 동일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이익공으로 되어 있는 공포 숫자를 세어보니 퇴칸과 협퇴칸에는 여섯 개씩, 어칸과 어협칸에는 일곱 개씩 들어가 있어 어칸과 어협칸에 비해 협퇴칸과 퇴칸이 공포 하나 정도의 너비만큼 좁아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경회루에서 나오면서 수정전이라는 왕실업무를 위한 관청인 수정전을 지났다. 수정전 앞에는 문무백관들이 일을 보는 궐내각사들이 있었는데 이것들은 갑오개혁 때 내각본부인 군국기무처로 사용되기도 하다가 1915년 일제가 조선물산공진회라는 걸 개최하면서 완전히 철거, 지금은 빈 터로 남아 있다.



이제 경복궁을 나오면서앞서 보았던 근정전 일곽을 다시 지났다. 경회루 정면에 앉아 칸 너비를 세어보다 보니 근정전은 어찌되었던가가 다시 궁금해. 중층건물인 근정전은 전면 다섯칸의 너비는 모두 같은데, 측면 다섯칸은오히려 어칸과 협칸이 좁고 퇴칸이 두 배 너비로 되어 있다.그것은 아마도 상층부를 구성하기 위한 배려인 모양이었다. 상층부의 정면을 보면 어칸과 협칸은 하층과 그대로 올라가지만 퇴칸만 반으로 줄어드는, 앞서 말한 반칸물림 중층구성의 전형을 보여준다.그렇다면 측면에서도 퇴칸의 반칸이 줄어들면서 올라가게 될 텐데, 하층에서 측면만 두 배 너비로 되었더니 상층에 올라가서는 어칸, 협칸, 퇴칸이 모두 같은 너비로 세 칸을 유지한다. 그러니 이 건물은 하층에서도 다섯칸, 다섯칸, 상층에서도 다섯칸, 다섯칸을 이루게 되는데 그 칸 폭을조정하는 방식이아주 짜임새가 있다.


근정전 일곽을 지나 거꾸로 근정문을 통해 흥례문 쪽으로 나오는 길이다. 역시 중층건물인 근정문의 칸 구성은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확인해보았다. 대부분 문 건물이 그렇듯 하층은 세 칸, 두 칸 형식이다.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측면의 두 칸은 조금씩 좁아지면서 두 칸으로 섰고, 정면의 세 칸 역시 퇴칸 쪽이 공포부 하나 크기만큼 체감되면서 세 칸으로 올라갔다. 반칸물림이라 하여 정확히 반을 잘라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온칸의 상대되는 개념으로 칸의 일부가 줄어든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 근정문을 나와 정면 사진을 찍으니 그 뒤로 근정전 건물이 보인다.

아무래도 경복궁은 언제라도 다시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다. 아니, 경복궁 뿐 아니라 창경궁과 종묘, 사직단, 환구단과 덕수궁 대한문까지 몇 번이고 다시 더. (가장 가보고 싶던 창덕궁과 덕수궁은 월요일 정기휴일인 걸 몰라 가지 못했다. ㅠㅠ)지금이렇게 사진 찍어놓은 것들 들춰보며 기억을 떠올려보려 하니 어떤 것은 이 사진을 왜 찍었더라, 이 대목에서 길목수와 나눈 얘기는 뭐였더라, 내가 뭘 보며 이상하다 여겼더라…… 하는 것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나는 수첩 하나 들고 다니지를 않았다. 미리 무얼 보아야 하는지, 무얼 확인해야 하는지 준비해가지도 않았다. 사진 하나 찍을 때마다 수첩에 기록해가면서, 이렇게 지금 다시 보면서도 여전히 또렷하지 못한 부분들은 미리 짚어놓고서 다시 가봐야 할 일이다.

평일이라 그랬는지, 아님 휴일이어도 마찬가지겠는지 그 안에는대부분 중국인이거나 일본인 관광객들만이 가득했다. 따뜻한 봄볕을 기대했지만얇게 입은 옷에대면날씨도 무척이나 쌀쌀했다. 아, 그러나 좋았다.도면으로보고, 책에서 보던 건물들을 직접 만나는 것만으로도 큰 떨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길목수와 같이 갈 수 있게 되어 서로 못보고 지나칠만한 것들을서로 이야기해주며다니니 그 또한 좋았다. 오후 한 시 쯤 되어 경복궁에서 나오게 되었나? 궐내에서는 금연, 으 세 시간을 못 피우던 담배를 피웠다. (아니구나, 자경전에 들어 김밥을 먹다가 몰래 한 대 피웠음. 이거이거, 문화재 공부한다는 사람이 ^ ^;;) 아무튼간에 말이다. 그랬다는 것이다.

손을 놓고 쉴 겸, 나름 한 번 더 복습이라도할 겸 서울시인터넷방송이라는 싸이트에서만들어놓은동영상을 찾아 틀어보았다.서울의 역사편찬위원회에 있는 연구위원이 해설해준다.

또한 서울문화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경복궁에 있는 중요 문화재들에 대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경복궁 경회루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

-경복궁 자경전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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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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