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형만들기 1

모형만들기 재료를 사온 건 벌써 두 달도 넘었나 보다. 예산 고건축박물관에 갔을 때 한쪽 사무실에서 전시해놓고팔기도 하는 것을눈 딱 감고 한아름 사가지고 왔다. 이 공부 시작하고 첫 주를 넘길 무렵, 봉정사 극락전부터 하여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종단면도 쯤은 모두 외워야 한다고, 공포도를 설명하고 첨차와 살미,주심포를 설명하는데 도무지 나로서는 그걸 어찌하겠는지 자신이 없기만 했다. 주심포에서부터 이렇게 헤매는데익공에 다포까지 넘어가면 저 복잡해보이기만 하는 것을 어떻게 외운단 말인지, 외우기는커녕 구조를 이해하는 것조차 까마득한 일처럼 여겨지기만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마침이러한 공포 모형을 판매한다고도 하여 두 눈을 꽉 감고사기로 한 것이다. 대학에서 건축 전공하는 학과에 교구재로 쓰도록 만들어서 납품한다는 거라던가? 암튼,어떻게든 되겠지, 날마다 조물락거리며 만져보고 만들어보고 다시 뜯어 다시 맞추고, 그러다보면 무턱대고 외우는 것보다야 훨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있는 것들 다 달라 해서 사다 놓았다. 그런데 한 주 한 주 수업 내용을 복습해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허덕이고 있었으니 이것들을 사다놓곤 만져볼 짬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에 쫓기기는 지금도 마찬가지.강의는 종강을 했어도 아직 오분의 일도 복습을 못해내고 있고, 답사를 다녀온 것 또한 정리를다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구조를 공부해야지, 도면을 그려봐야지, 답사를 다녀야지, 그리고 이렇게 모형을 만들어봐야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고 있는 것이 없다. 주어진 시간을 빈틈없이 꼴아박고 있지만 늘 허덕이기만. 게다가다다음 주부터 시작하기로 예정한 집짓는 일도 이제 임박했다. 그 전에도 몇 번은 현장으로 더다녀와야 할 것 같다. 그러니 일판에 들어가 있는 두어 달의 공백기는 이제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어. 방 한 구석 사다놓고 모셔두고만 있던 것들을 밤중에 꺼내어 조립했다. 하하하, 재미있다. 이렇게 잠깐이면 되는 것을, 정말로 공포 따위는 이제 더 이상 공포스러울 것 없어!

맨 처음에 만들어본 것은 봉정사 극락전.

물론 제대로 하자면야 이것들 하나하나 사포로 갈고, 수평수직도 다시 잡고 해야하겠지만 지금은 내가 무슨 전시회에 출품할 것도 아니고 일단 이 상태로 조립을 시작했다. 설명서에는 십이 분의 일로 축소한 모형이라 되어 있다. 그런데 나름 정교하게 되어 있기는 해. 주두와 소로의 내반곡을 준 것이나 굽받침이 있는 양식에서는 그것까지 깎아놓은 거며 보머리의 초각양식이나 첨차의 마구리면과 밑면을 깎아놓은 양식들까지.

그런데 중요한 것은 봉정사 극락전의 공포 모형이라고 해서 세트로 묶여진 이것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봉정사 극락전의 공포 모형과 다르다는 것! 봉정사 극락전은 소첨차와 소첨차의 십자결구 위로 보방향은 대첨차, 도리방향으로는 뜬장혀라 할 수 있는 긴 가로재가 가로지르는 것으로 소첨소첨-대첨대첨으로 결구되는 부석사 무량수전과는 다른 점이 특징이었다.그렇기 때문에 봉정사 극락전은 긴 가로재가 한 번 포벽을 분할해주기 때문에 복화반이라는 부재를 쓸 수 있었던 거고, 소첨소첨-대첨대첨으로 그대로 짜 올라가는 부석사 무량수전은커다란 포벽부가 덩그러니남게 되어 쪽소로를 수장재로 붙였다는 점이 큰 특징이었다. 그런데 이 모형조립에서는 봉정사극락전도 소첨소첨-대첨대첨을 짜올린 뒤 그 위에서 뜬장혀가 가 지나가게끔 조립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에이 참, 어쩌자구 이렇게 만들었나. 아무튼 뭐가 잘못되었나 찾아보는 것도 공부다 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조립을 해 들어갔다. 어쨌든 조립한다는 일은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밤에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사진을 찍은 거라 빛깔이 영 흐릿하다. 플래쉬가 터지면 더 반사되고 그럴까봐 일부러 안터뜨리고 찍었더니 ㅠㅠ

맨 먼저 할 일은 기둥을 세우고 창방을 결구, 그리고 그 위에 주두를 조립했다. (아, 재미있다. ^ ^)

주두 위로 소첨차를 보방향으로 먼저, 그 다음 도리방향으로 십자결구한 뒤에 첨차들의 네 귀와 가운데에 소로들을 얹었다. (실수로 플래쉬 터뜨림. 이게 훨 낫구만. 계속 터뜨릴 걸 그랬지 뭐야.)

이 부분부터가 문제다. 주두 위에서 소첨차들의 십자결구가 있고, 그 위에서는 보방향으로만 대첨차, 도리방향으로는 가로인방재(뜬장혀)가 결구되어야 하는데 이 모형조립품은 또다시 대첨차끼리 십자결구를 하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모형대로 조립해서 이와 같이 되었으나 도리방향에서 대첨차와 그 위의 가로인방재는 위아래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태에서는 그렇게 자리를 바꾸려 해도 가로인방재 윗면에소로 촉을 꽂는 홈도 없고, 대첨차가 제자리로 갔을 때 보를 받을장으로 받아 결구할 수있게 하는 장부도 없어 그리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이렇게 엄청난 불량품이라니! 그런데 이건 실수로 불량이 나온 것이 아니라 아예 회사에서 만들기를 그렇게 한 것이니 불량이 아니라이럴 땐 뭐라고 하나, 말 그대로모형 자체가 잘못된 거였다.)

어쨌든 보방향으로 더 내민 대첨차 끝에는 소로를 놓은 뒤 그 위로 장혀가 결구된다. 외목도리를 받는 장혀.

단장혀와 가로재(원래대로라면 대첨차)위로 보를 결구한다. 보머리는 이분두로 초각이 되어 있다. 이처럼 보머리를 이분두 초각하는 것은 고식 수법으로 봉정사 극락전 보머리 초각의 특징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봉정사 극락전의대들보는 외목도리를 직접 받아주는데, 조금 전 보가 결구할 때 보머리 끝에는 외목도리 단장혀가 이미 보방향 대첨차 끝에 올라 있었고, 보머리 끝이 그 단장혀와 결구하면서 이처럼 외목도리를 받아주게 된다.

주심열에서는 가로재로 표현된 것이 소로를 올리고 있는데, 원래 봉정사 극락전은 그 자리에 대첨차가 가로놓이면서 소로를 얹고 있다.

주심열의 가로 인방재(원래는 대첨차)위로 소로들이 놓이면서 주심도리의 장혀가 소로와 결구하며 올라가고 보방향으로는 승두라고 하는 받침부재가 십자로 결구한다. 봉정사 극락전에서는 대들보가 주심도리를 직접 받아주지 못하고 승두라는 받침부재를 써서 받아준다는 것 또한 중요한 특징이라 했다.

그래서 승두 위에 주심도리까지 얹고 나면 조립 끝! (이건 측면에서 본 모습인데, 이렇게 측면에서 볼 때는 봉정사 극락전의 측면 공포도와 다를 것이 없다. 도리방향 대첨차와 가로인방재의 위아래 순서만 바뀌었을 뿐이니 측면에서 봤을 때는 어차피 같은 단면이니 말이다.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정면에서 봤을 때는 그게 아니다. ㅠㅠ 소첨차 위에 대첨차가 저렇게 바로 가서는 안 되고, 그 사이에 가로재가 쭉 질러갔어야 한다. 그러니 다시 말하면 이 사진 속에서는 대첨차와 가로인방재가 위아래 자리를 서로 바꿨어야 해. (아, 그런데 외목도리 장혀는 왜 저리 삐딱하게 기울었담? 기둥 위에 있는 주두도 제자리에 있질 않고 옆으로 살짝 삐져나와 있구나. 전체적으로 조립 부붐들이 헐겁게 되어 있어 접착제를 쓰지 않으면 고정되어 있지가 않다. ㅠㅠ)

소첨차 위에 가로재가 지르고 있고 그 위에 대첨차가 있는 게 원래 모습. 그래야 포벽부도 자연스레 위아래로 분할이 되면서 복화반이라는 부재가 창방과 그 가로재의 폭만큼 크기로 맞춤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조립모형대로라면 포벽부의 폭이 훨씬 커지게 된다. 마치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그래도 처음 만들어본 거라며 이리저리 돌려가며 사진을 찍었다. 대첨차와 가로인방재의 자리가 바뀐 것만 아니었다면 기분이 훨씬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래도 머릿속으로 그걸 감안해서 본다면 부재 하나하나를 끼워맞추며 조립하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리고 공포라는 것하고도 점점 더 친해져가는 것 같아 좋았고 말이다. 나름 흐믓한 기분.

앞으로도 심심할 때면 다시 뜯었다 만들고, 또 뜯었다 주무르고 하면 더 많이 친해질 수 있겠지. 언제 시간이 나면 가로인방재에 소로 촉 구멍도 파놓고, 대첨차 윗면을 도리와 결구할 수 있게 장부도 따서 다시 조립해야겠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심심하면 뜯었다 다시 만들었다 하면서 충분히 친해져야 해. 어쨌든 이렇게 직접 만들어보니 그림과 글만으로 설명을 읽고 이해하던 때보다 훨씬 잘 들어오는 것 같다.

하하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봉정사 극락전의 공포를 만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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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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