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기차길 식구들이 드디어.

 이모야들이랑 누나야,

 그리고 무엇보다

 감자랑 같은 말띠 친구 하준이까지. 

 

 

 아침일찍 제주에 닿은 기차길 식구들이 강정에 갔다가 감자네 집으로 넘어오던 시간은, 아빠가 퇴근해서 막 집에 닿을 무렵. 감자야, 하준이가 온대, 감잔 좋겠네, 친구가 올 거야, 어디만큼 왔니. 길가에 나가 기다리자, 어디만큼 왔니

 

 

 실은 엄마아빠가 더 기다렸을.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이모들, 어느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것만 같은, 다른 질서, 다른 경험, 다른 관계, 다른 바탕의 닮고 싶은 얼굴들.

 

 

 하준이를 바라보는 감자의 눈빛이 얼마나 반짝이고 진지하던지. 하준이가 비행기를 가지고 놀거나 자동차를 가지고 놀거나, 블럭을 끼우거나 그 무얼 할 때에도, 감자는 하준이에게 눈을 떼지 못해. 가만히 살펴보는 눈빛이었다가, 신기하고 좋아서 반짝이는 눈빛이었다가, 때로는 부러워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가,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어, 하준이를 따라 하고 싶어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눈빛이었다가.

 

 

 

 

 

 

 큰이모 품에, 솔비 누나야 품에 품자가 안겨. 기차길 아이들은 누구할 것 없이 다 그렇지만, 이제 갓 스물이 된 솔비 누나야는 어찌나 아가를 잘 보는지. 아니, 잘 보는 거 이전에 정말로 좋아서 눈을 떼질 못하는.

 

 실은 달래도 나도, 감자품자를 낳기 전엔 그러지 못했거든. 아가들이 예쁘고 귀여워, 예쁘다 예쁘다를 하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를 몰라. 잠깐 예뻐하다 말 뿐이지, 내내도록 좋아 어쩔 줄을 모르는, 그런 마음이지는 못하는. 감자품자를 낳고나 뒤에야 비로소 여느 아가들도 다 감자품자처럼 보이면서, 여느 아가라 해도 보기만 해도 애틋해지고 내내 좋을 수 있는.

 

 

 그런데 솔비는 어쩜 아가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마음인 걸까. 솔비 뿐 아니라 지금껏 만난 공부방 출신 기차길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서너살 꼬맹이부터 이십대 중반을 지나는 청년들까지, 어쩜 하나같이 그럴 수가 있는지.

 

  아마도 거기에 있겠구나 싶었다. 기차길옆작은학교 공동체 식구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왼쪽, 가장 낮은 곳을 살아가면서, 진보나 변혁을 표방하는 그 어떤 곳보다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급진적인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그 힘은, 생명에 대한 감수성, 자연스레 몸과 마음에 배어있는 그것에 있겠다는 것을.

 

 

 날 어두워지기 전에 감자네 집에서 나와 건너편 이모야들 숙소로 자리를 옮겨. 감자는 처음에 하준이랑 헤어지는 줄 알고 안타까워하는 얼굴이다가, 우리도 갈 거라고, 감자도 저쪽 집으로 가서 하준이랑 같이 놀 거라고, 그랬더니 말을 알아듣고는 그제서야 애요애요애요애요~! ("애요애요~"는 밖에 나가고 싶을 때 소리내는 감자나라 감자어 ㅋ)

 

 

 

 

 

 

 어머나어머나, 손가락에 반지를 낀 이 모습을 본 복현 이모야는, 어디 중동에 있는 나라 왕자 같다면서 ㅎㅎ 아빨 닮아 가뜩이나 까만 피부인데, 노란색 가락지가 번쩍이며 큼직하게 끼워져 있으니 더 그래보이는 것 같아. 감자 형아한테도 그러더니, 품자에게도 이렇게 백일반지라는 걸.

 

 

 담날 아침, 아빠는 회사엘 나가야 하니 함께 다닐 수가 없고, 기차길 이모야들이 감자품자랑 엄마랑 다같이 나들이를 다니기로 했어. 기차길 이모야들이 아니었으면 아빠없이 감자품자를 다 데리고 어딜 나간다는 건 엄두를 내지 못할 일.

 

 이모야들이랑 엄마랑 여자들끼리만 실컷 수다를 떨며 놀러다닐 거라니, 아마도 이모야들은 달래를 힐링해주려 작정을 했는지 ^ ^ 암튼 그렇게 하여 아빠가 출근한 뒤, 기차길 식구들이 감자네 집엘 들러 감자품자달래를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출발을 ㅎ (그러므로 이 아래부터는 아빠도 사진으로만 본 거임 ㅠㅠ)

 

 

 

 감자에겐 생애 첫번째 친구, 하준이. (감자야, 하준이가 신고 있는 개구리 장화가 부러워 그러는 거야? ㅋ)

 

 

 맨 처음엔 집에서 가까이에 있는 한담산책길로 나갔다지. 솔비 누나야 뒤를 따라 병아리처럼 쪼르르 ㅎ

 

 

 

 하준이가 마치 형아처럼 감자 손을 잡아주며 걷기도 하면서 ^ ^

 

 

 그러고 난 다음에 찾아간 데는 곽지 바다 모래밭.

 

 

 지난 밤, 감자네 식구(아빠 빠진 ㅜㅜ)도 다같이 다녀보자, 하면서 얘기했던 게, 비만 쏟아지지 않으면 감자 좋아하는 그 바다에도 가보자, 하는 거였는데, 그래서 곽지 바다를 찾았는지.

 

 

 아빠는 일하다 한 번씩 까똑까똑까똑, 카톡이 울려 전화기를 열어보면 이런 사진들이.

 

 

 

 

 

 

 여긴 어디였다더라. 중문에 있는 어느 짜장면집이라던데. 품자는 솔비 누나 품에서 이렇게나 편안하게 잘 안겨 있었나봐.

 

 

 그러고나선 대평리에 있는 쓰담뜨담 찻집엘 찾아갔다지. 이건 몰까, 감자가 하준이에게 바다를 가리키며 무언갈 얘기해주는 건지, 여기 바다 예쁘지? 라거나, 저기 저 검은 바위들 멋지지? 하면서.

 

 

 

 

 

 감자에게 친구가 다녀갔다. 어느 새 달래에겐 친정 언니와도 같아진 기차길 이모야들이 다녀갔다. 행복하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던 시간. 그런데 말이지, 이상도 하지. 낮은산 큰아빠부터 감자친구 하준이까지, 그 일주일 동안 그 그립고 고마운 이들이 바다건너 감자네 집엘 다녀갔는데, 아빠는 그 담날부터 어떤 우울에 깊이 잠겨. 좋았던 시간만큼의 허전함이나 아쉬움, 그런 건 아니.

 

 글쎄, 뭐랄까. 이렇게나 좋은 이들이 있는데, 고마웁게도 이렇게나 좋은 이들이 곁에 있는데, 자꾸만 나는 그이들이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지를 못하고 있는 것만 같은. 나는 어쩌다 이렇게 그저그런 직장인, 적당히 관행대로 움직이고, 내게 돌아올 책임에 대해서만 피해갈 길을 찾는, 병든 한국사회의 그렇고 그런 부속품이 되어 살고 있는 건지. 이공일사사일육으로 시간이 멈춰져있는 세월호를 보면서도, 가방에 컵라면을 두고 떠난 열아홉살 스크린도어공을 보면서도, 아무래도 나는 그 모든 일에 암묵적 방관, 미필적 고의를 함께 하고 있는 이 사회의 공범인 것만 같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지가 않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는 공부방 청년들 얘기를 전해들으면서도, 미싱이 아니라 마우스를 돌린달 뿐, 그 시절 청계피복의 노동자들과 지금의 자신이 다를 것 하나도 없다던, 대학 졸업을 앞두게 되면, 특별한 변혁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분노가 자연스레 쌓여가고 있다는, 젊은 친구들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세상을 한탄하기보다 나 스스로가 참담하게 느껴지는. 

 

 그랬다. 그 그리웁고 고마운 이들이 다녀간 뒤, 곁에는 이렇게나 좋은 이들이 많은데,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은, 깊은 마음의 우울.

 

 

 

 

 

 

 [부록] 친구야를 기다리며 ㅎ

 

 

 

 기차길 식구들을 맞이하면서는 감자 할머니가 열무국수를 준비하신다 하였고, 거기에 들어갈 홍고추를 사느라 감자랑 같이 하나로마트엘 ^ ^

 

 

 

 

 

 감자 친구 하준이가 이 멀리까지 오는데, 조그만 거라도 선물을 준비하면 좋겠어서 시내로 나간 길. 무어가 좋을까, 무어가 좋을까 하다가 기껏 찾아간 곳은 대형마트. 육지보다 한 주일 먼저 시작한 제주 장마에 아가 둘을 안고 걸리기에는, 죽죽 쏟아지는 장대비가 아주 대단하던 날.

 

 

 엄마가 옷을 고르는 동안 감자는 바퀴달린 바구니, 품자는 유모차. 하하, 그야말로 두 아가의 아빠라는 게 실감나던 순간이었네. 저러고 한 손으론 감자, 한 손으론 품자를 밀고 당기며 다니는데, 바퀴 여덟 개가 어찌나 제 멋대로 휙휙 돌아가던지, 운전이 쉽지만은 않더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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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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