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빡빡

감자로그 2015. 5. 26. 00:57

 

       

 

 아가들 배냇머리를 한 번씩 빡빡 밀어준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어. 그래야 검은 머리가 숱이 많아진다면서. 그런데 제주에선 부처님오신날에 그걸 하는 풍습이 있다네. 한 달 된 아가도, 여섯 달 된 아가도, 돌이 다 되어가는 아가도, 그냥 다 부처님오신날에. 달 수와 상관없이 다들 그날에 깎는다는 게 뭔가 합리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게다가 감자는 머리숱이 모자라거나 그런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식으로 해보고 싶어서 감자도 이 날을 기다렸어, 두둥!

 

 


 

 

 

 

 오늘은 부처님오신날, 감자네 식구는 어느 절에 갈까, 한라산 중턱 관음사엘 갈까, 아님 아빠가 일하던 영실 쪽 존자암엘 갈까, 하다가 역시 아빠가 지난 해 일을 하던 불탑사엘 가기로. 거기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신 곳, 현무암으로 쌓아올린 고려시대 오층석탑이 남아있는 곳. 아마도 지구 위에 현무암 석탑은 그거 하나 뿐일 거.

 

 

 

 이렇게 연등이 가득 걸려 있는 대웅전에서 감자도 인사를 드려. 부처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건강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불탑사가 있는 삼양에는 정말 오랜만에 간 거. 오랜만에 섬의 동쪽 바닷가로 넘어갔으니 거기 바닷바람도 맞고 가야지. 불탑사가 있는 원당봉 바로 아래에는 현무암 알갱이로 이뤄진 검은모래 해변이 있어. 그 앞 벤치에 앉아 감자도 맘마공양을.

 

 

 


 

 

 동쪽 바다 구경을 마치고 서쪽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오랜만에 바깥에서 맛난 게 먹고 싶다지. 그래서 언젠가 솟대큰아빠가 데리고 가주었던 '시인의 집'이라는 까페엘 들러. 조천읍에 있는 거니까 함덕 바다에서는 십 분도 걸리지 않는 곳. 거기는 손세실리아 시인이 가꾸고 있는 까페. 지난 번엔 차만 마시고 왔는데, 차가 좋았던만큼 피자도 아주 맛있게 한다는 데라고 솟대큰아빠가 그랬어. 그래서 엄마 맛난 거 먹게 해주러 시인의 집으로!

 

 

 까페에서 바로 맞닿은 바닷물에는 솟대큰아빠가 만든 솟대가 꽂혀져 있어. 감자야, 지난 주말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러 갔다가 동화나라에 가서 봤던 솟대들이 여기에도 있네. 해는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고, 물이 들어오고 있어 솟대는 점점 잠겨들고 있어. 그것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고 있네. 감자랑 엄마가 함께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피곤했는지 차 안에서 바로 곯아떨어져 버리네. 감자야, 네가 고생이 많다. 이렇게 서툴고 어설픈 엄마아빨 데리고 사느라 ㅋㅋ

 

 

 

 머리깎으로 나가기 직전에 찍어두었던 감자 얼굴. 하하, 한동안은 머리가 길던 이 모습은 보질 못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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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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