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남 / 사소한 골목

 

 

 아가들이 만났다. 아가와 아가와 아가. 삼십일 개월을 지나는 울림이, 여덟 달이 되어가는 감자, 넉 달이 되는 이음이. 감자에게는 형아와 동생을 만나 함께 지내는 특별한 시간. 지금껏 감자는 맨날 사십대인 엄마아빠랑만, 찾아오는 손님들이라 해도 그보다 더 많은 오십대 큰엄마큰아빠이거나 기껏해야 삼십대 이모삼촌들. 그랬으니 감자에게는 저와 같은 아가들, 형아와 동생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새로운 만남이 될까!

 

 

 

 감자야, 안녕! 나는 울림이 형아야 ^ ^

 

 

 

 동급 최강 미모의 네살박이 울림이.

 

 

 

 

 바람, 해원, 울림, 이음 네 식구와 제주에서 만나. 내가 서울에 올라가던 다음 날에 배를 타고 건너왔다 했으니 제주에선 이미 나흘째 되던 날, 내가 서울에서 내려오고 나서야 감자네 식구와 만났고, 그러고는 또 나흘째가 되어. 앞으로 사흘을 더 지내다 토요일 배로 올라갈 거라 했으니 열하루나 되는 긴 여행길.

 

 

 

 바람이는 우리를 형, 누나라 부르고, 해원이는 이모, 삼촌이라 불러. 내가 해원이를 처음 본 게 이오덕 선생님이 불러주셔서 무너미에 내려가던 구십구년,  그때 욘석은 사내아이처럼 보이던 귀여운 열살 꼬맹이였는데, 이 녀석이 삼촌보다 먼저 아기 엄마가 되어. 암튼 그래서 아빠는 형이라 부르고, 엄마는 삼촌, 울림이와 이음이도 삼촌이라 부르는 이상한 촌수로 우리는 만나 ㅋ  

 

 

 

 울림이 형아가 감자 곁에서 눈맞추며, 만져보며, 끌어안고 입을 맞추기도 하면서 놀아주네. 순둥이 이음이는 아무 곳에서나 잘도 잠이 들어.    

 

 

 

 

 

 

 아마 더 멋지고 좋은 사진들은 전문 찍사인 바람이 사진기에 가득할 텐데, 암튼 우리는 <사소한 골목>이라는 밥집에서 첫날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상한 촌수의 대가족이 되어 ㅎ

 

 

 

 2. 이음 / 최마담네 빵다방

 

 

 지난 가을 우리가 감자를 낳고, 넉 달이 지나 올해 일월에 해원, 바람이네가 둘째 아기를 낳아. 장하지 뭐야, 이 멋진 녀석들! 첫째 아기 이름을 울림이라 하였을 때도, 와아아 이름 참 잘 지었다 싶었는데 둘째 이름도 기가 막히게 지었네. 멋진 후보들이 많았지만, 그 가운데 간택한 이름은 이음. 울림이와 이음이. 울림을 주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마음을, 세상을, 작고 여린 것들을. 그리고 그 울림을 잇는 아이가 되겠지. 가난한 마음과 마음을, 여린 존재와 존재를, 그리고 저 너머의 것까지. 

 

 

 

 이 아가가  이음이.

 

 

 

 그래봐야 넉 달이지만, 감자가 세상 처음 만나는 동생. 감자 머리를 빡빡 깎는 걸 보고는 해원 바람이네도 이음이 머리를 싹 밀었다나. 바리캉을 사다가 직접 손수 깎아주었다고. 그랬더니 이 아가 둘이서 쌍라이트가 되어. 송악산과 용머리해안을 돌아보는 유람선을 타고 있을 때는 배에 탄 아줌마들이, 쌍둥이 아니냐며 신기해하기도 ㅎㅎ

 

 

 

 

 

 찻집에서 나오는 길. 아기 하나씩을 안고, 뒤에서는 조금 더 큰 아기 사진을 찍고. 이렇게들 다니는 모습에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나왔네. 묘한 기분.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나는 자꾸만 한 발짝 멀리 있곤 하였고, 마치 할아버지라도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더라니까.   

 

 

 

 금악 아래 바람이네 식구가 머무는 숙소. 해원이는 선물로 준비해온 게 있다며 펼쳐 보이는데, 바느질 몇 땀을 더 해야 한다며 흐린 불빛 아래서 마무리를 해. 자수 놓는 걸 배우면서 처음으로 한 작품이라는데, 하얀 티셔츠에 냉이와 달래, 감자를 수놓아. 바람이 사진이 어딘가에 저 옷을 입고 찍은 인증샷이 있을 텐데, 정말로 예쁜, 정성이 가득한.

 

 

 

 3. 사귐 / 감자네 집

 

 

 이틀째 되면서부터는 이 아가와 아가, 아가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 아주 오래된 그것인 양. 아가들은 이렇게 아가들끼리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던.

 

 

 

 앗, 감자가 무언가를 발견!

 

 

 

 그게 모냐면 말이지, 이음이의 발 ^ ^

 

 

 

 얼마 전부터 자기 발을 입에 물기 좋아하던 감자는, 이음이 발을 보더니 눈이 반짝. 자기 발이랑 닮은 발이 눈 앞에 있는 거지. 그것도 몸을 힘들게 구부리지 않아도 바로 입으로 가져갈 수 있는 ㅎㅎㅎ

 

 

 

 아니나다를까, 이음이 발을 잡고 입에 넣어 물고 빠네 ^ ^ 이게 내 발이면 어떻고 네 발이면 어떠랴 ㅋㅋ

 

 

 

 이 사진을 받아본 도토리 언니 왈, 동무 몸이 내 몸이란 걸 이 아가들이 알고 있나 보다며. 하하.

 

 

 

 울림이 형아는 감자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네. 당근 울림이도 까막눈이지만, 아빠가 읽어주는 걸 들어 기억하고는 감자에게 읽어줘. 울림이는 제법 진지하고, 감자는 사뭇 집중하며 즐거워해. 다시마세이죠 할아버지의 <뛰어라 메뚜기>. 

 

 

 

 4. 어울림 / 초록채

 

 

 아가들은 천성이 다 그런 걸까, 신기하기도 하지. 그동안 감자에게 또래의 친구도, 형아도, 동생도 없이 나이든 어른들하고만 지내게 했다는 게 안쓰럽기도 해. 이렇게나 좋은 걸.

 

 

 

 

 울림이 형아의 간지럼.

 

 

 

 

 해원 이모야 품에 울림이 형아가 감자를 안고, 이음이는 달래 이모야가 안고.  

 

 

 

 

 울림이 형아가 하나, 둘, 셋, 찰칵!

 

 

 

 5. 산책 / 한담

 

 

 아마 감자네 식구였다면 이렇게 멀고 긴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야. 기껏해야 하룻밤 자고 오는 일정으로 겨우 군포 행사엘 다녀왔고, 그 다음에 용기를 내어본다는 것이 서울, 안동, 제천으로 두 밤을 자고 오는 일정. 그런데 참 용감도 하지. 게다가 이음이는 고작 백이십 일밖에 되질 않았는데. 열흘도 넘는 일정을, 두 아가를 데리고.

 

 아가들이 함께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솔직하게는 에너지가 달리기도 하였다. 해원, 바람은 별로 피곤한 기색도 없는데, 으이그, 늙긴 늙었구나 ㅠㅠ 암튼 하루이틀 사이에 금세 에너지가 바닥나버리는 걸 느끼니, 이 먼 길을 온 아우며 조카들에게 충분히 잘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내내 마음에 걸리곤 해. 그래도 어쩌겠어, 내 용량에 솔직해야지. 무리를 해서 과부하에 걸렸다간 차라리 더 말썽이 될지 몰라.

 

 그래도 저녁에 헤어지기 전에 가까운 이 바닷길은 잠시나마 함께 걷고 싶었지. 감자네 집에 손님이 다녀갈 때면 꼭 한 번은 나오게 되는 곳.

 

 

 

 금세 어두어지더니 흐리기까지 해.

 

 

 

 그런데 나는 이 흐린 물빛이 좋더라. 눈을 현혹시키는 투명민트 빛 바다에선 마음을 비춰볼 수가 없어.

 

 

 

 

 

 저녁에 헤여지고 나면 더 잘해주지 못한 게 못내 미안하고 아쉽고 그런 마음이 들곤 해서 속상 ㅜㅜ

 

 

 

 까페 <봄날>이 간판을 바꿔 달았나 했더니, 여기가 요즘 하는 드라마 세트장으로 쓰이고 있다던가. 두 식구 모두 그 드라마를 보고 있진 않지만, 누가 나오고 있다는 건 알기에, 엄마랑 이모야는 유연석을, 아빠랑 삼촌은 강소라를 궁금해하면서, 우리도 이 앞에서 사진 한 방 찍자며 ^ ^

 

 

 

 6. 함박 / 제라진

 

 

 이틀을 함께 보내고, 엊저녁은 왜 그리도 지치던지. 다음 날은 하루 쉬자 하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감자를 보니 울림, 이음이가 눈에 어른거려. 세 아기가 함께 있는 게 뭐니뭐니 해도 좋다는 걸 새삼. 그래서 다시 연락을 하고는 오후에라도 함께 만나는 걸로.   

 

 또치 이모야와 라면 삼촌이 있는 제라진 갤러리에. 여기에는 그림도 많고, 인형도 많고, 맨발로 뛰어다닐 수 있어. (게다가 갤러리 문을 닫고 난 뒤엔 한 켠에서 아빠, 삼촌들이 막걸리를 먹을 수도 있었으니 완전 좋았다는 ㅋ)

 

 

 

 울림이 발바닥은 어느새 시꺼매졌네 ㅋ

 

 

 

 감자에게 달려와선 두 손으로 볼을 감싸 뽀뽀를. (아, 저기 저 티셔츠가 해원이가 달래, 냉이, 감자를 수놓아준 그 옷. 선물을 받고 나서 우리는 이틀을 내리 저 옷만 입고 있었네. 선물을 받은 거라서가 아니라 정말 예쁘게 수를 놓았거든. 눈에 확 띄지도 않게, 부담스럽지도 않게.)

 

 

 

 

 감자와 이음이는 테이블 위로 마주 앉혀 놓으니 뭐가 그리도 좋은지.

 

 

 

 이십 초짜리 동영상으로 짧게 찍어놓은 거. 저렇게 끼악끼악 웃으며, 서로 돌고래 초음파 소리를 내가며, 얼마나 한참을 좋아하던지.  

 

 

 

 앞으로는 이음이를 안고, 뒤로는 감자를 업고, 울림이까지 함께. 스물여섯 해원이는 어느새 이렇게 육아의 달인, 육달이 되어 있었네 ㅋ  

 

 

 

 달래도 포대기로 감자업기를 처음 시도. 해보니까 제법 잘 하던걸.

 

 

 

 7.  

 

 

 오늘은 새벽부터 밤까지 비가 주륵주륵. 나는 완전 방전이 다 되었고, 오늘 하루는 쉬는 걸로 하기로 ㅠㅠ 아가들 모여 있는 거, 보는 거 만으로도 좋고 행복하지만, 힘이 달리는 것도 사실이라.

 

 내일은 또 울림이 형아랑 이음이를 만나면 얼마나 좋아할까. 내가 눈으로 보지 못할 그것, 내가 느끼지 못할 그것, 아가들 사이에 오가는 그것들로 기쁘고 행복하겠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엄마나 아빠는 채워줄 수 없는 그 무엇.

 

 그렇게 지금 아가들이 만나고 있다. 아마도 오랜 인연이 될 형아이고 아우이고 동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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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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