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달

냉이로그 2014. 9. 16. 21:27

            

 - 아니, 저 익숙한 얼굴이 왜 저기에 서 있는 거지? 알고 온 건가? 오늘 이리로 일하러 온 거는 아무도 모를 건데. 그런데 저 언니가 어떻게 저기에 있는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라니.



 깜짝 놀랐다. 돌아서던 나도 놀라고, 저 편에 서 있던 언니도 놀랐다. 


 - 아니, 쟤가 왜 저기에 있는 거지? 떠나기 전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렀는데, 왜 쟤가 여기에 있는 거지? 저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제주도로 일을 하러 내려갔다는 얘길 듣긴 했지만.







 실로 오랜만에 현장으로 일을 나간 날이었다. 엊그제 진부장에게 전화를 받아, 현장에 손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부탁받아, 안 그래도 어디로든 나가고 싶은 마음에 흔쾌히 대답을 했던 거. 그래서 나간 현장은 시내에 있는 '삼성혈(三姓穴)' 이라는 사적이었다. 처마도리 위 연목들 사이 당골 미장을 보수하는 일. 오전 시간이 다 지나고, 배에서 꼬르륵, 진부장과 함께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하는 얘기를 하던 즈음, 삼문 쪽으로 돌아보니, 거기에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 나처럼 놀란 얼굴을 하며 서 있던 것이다. 웃는달 언니. 세상에나, 이게 뭔 일이야. 

 웃는달 언니도 마찬가지로 놀라. 설마 니가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다. 삼성혈이란 데가 어떤 곳인가 하고 들어와봤다가, 담장 안에서 어떤 어벙한 목소리가 꼭 너 목소리처럼 들리기에, 혹시 너인가 했는데, 정말 너가 있을 줄이야. 







 그러니까 언니는 제주에 내려온지가 벌써 엿새나 되었다고 했다. 세상에나, 어저께도 아니고 그저께도 아니고 그그그그그그저께 내려왔다면서 어떻게 전화 한 번을 안 했을까. 그랬더니 언니는 당연히 내가 아직 제주에 와 있지 않았을 줄 알았다나 모라나. 그게 무슨 소리냐며, 벌써 내려와 있는 걸. 암튼 웃는달 언니는 지난 11일 쑥부쟁이 언니와 함께 제주에 내려와 우도니 성산이니, 거문오름이며 한라산 성판악이며 그렇게 함께 다니다가, 쑥부장이는 토요일에 먼저 올라가고 혼자 남아서 영실을 오르고, 올레길을 걷고, 관덕정을 둘러보고 그랬다나 어쨌다나. 그러다가 오늘 비행기로 올라가려는데, 공항에 가기 전에 잠깐 그곳엘 들른 거라나. 

 헐, 진작에 전화 한 통이라도 걸어볼 것이지. 여기 제주까지 내려와서 시내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며 돌아다녔다 하니 마음이 그랬다. 서울에 올라가고 그럴 때면 누나 집으로 쳐들어갔던 날이 얼만데. 으이그, 빙충멍충같으니라구. 전화 한 번 해보는 게 모가 그리 어렵다고. 비행기표 물러라, 못물르는 거면 그냥 버려라, 내일 표를 끊어줄 테니 하루라도 자고 가라, 붙잡아보기는 했지만, 약속한 일이 있어 그럴 수가 없다며, 어쩔 수 없이 그러지는 못해. 

 마침, 돌아다보며 언니를 알아본 그 시각, 내가 일하던 일터로 언니가 들어온 그 시각이 열두 시 쯤이었고, 그때는 딱 점심시간. 게다가 언니는 두시 이십분 비행기를 예약해놓고 있었으니, 둘 다 아무리 짜내어도 그 점심시간, 딱 한 시간 밖에 시간을 가질 수가 없어. 삼성혈 건너편 국수 집에서 보말칼국수를 한 그릇씩, 그리고 막걸리 한 병. 이내 웃는달 언니는 다시 배낭을 메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정거장으로 걸어갔고, 나는 미장 사모래를 개러 일하던 곳으로 뛰어들어가야 했다. 


 


   
 이제는 내가 많이도 건방져져서 언니를 적잖이 답답해하기도 하고, 툴툴거리기도 하지만, 어느덧 십오년이 다 되도록 내가 니 누나다, 임마! 라며 물심으로 챙겨주고 있는. 정말 우연하게도 만났고, 정말 아쉬웁게도 헤어져. 그래, 딴 건 몰라도 별명 하나는 꼭 어울리게 잘 지었단 말이지. 웃는달이라니, 하하하하! 웃는달이 웃는다.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4) 2014.10.10
와즈다  (0) 2014.09.30
제라진  (0) 2014.09.13
카트  (0) 2014.09.11
추석 아침  (0) 2014.09.08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