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얼추 챙겨 실었다. 옷가지 몇 벌에 김치 한 통, 고추장된장과 책 한 보따리 정도일 뿐인데도 한 짐 이사가 되어버렸다. 겨울 옷들이라 두꺼운 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 절애를 오르는 비탈이 얼마나 얼어있으려는지, 자주 오르내릴 수도 없을 테니 마을 어귀에 들면 소주도 한 상자를 싣고, 담배도 보루로 꿈쳐놓는 것을 잊지 말 것. 땔나무는 어느 정도나 재워져 있으려는지, 막상 들어가려니 그런 것들이 다 걱정이다. 아저씨도 한 번씩은 위문 공연을 다녀가줄 거고, 달래도 한 번씩 면회 신청을 하러 오겠지. 그리고 또, 꽃보다할배꽃보다언니꽃보다찌질이들이, 겨울밤 몸을 함께 녹이러 다녀갈지도 모를 일이다. 낡은 노트북을 하나 가져가긴 하나, 거기는 인터넷이 되질 않아, 전화기도 그런 것 되지 않는 구식폰이니, 그런 쪽으로는 연락이 막히겠다. 그렇게 잠시 눈귀를 닫아. 밤사이 배고픈 멧돼지라도 내려오거들랑 막걸릿상에 두부라도 데워주고선 한 잔 같이 하고 가달라 해야지. 올 마지막 밤은 그 오두막에서 작별을 하고, 그리고 해가 시작하는 날도 그 언덕에서 맞이하겠다. 가는 해에게도, 오를 해에게도 안녕을, 안녕을.
여름이 지날 무렵, 에게해에서 보내어준 할아버지 얼굴. 그러고도 벌써 넉 달이 지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