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냉이로그 2013. 12. 30. 00:55



 용인에서 수료식을 마치고 서울로. 프랭스를 만나 시청광장으로. 한파경보라지만 그리 추운 줄은 몰랐다. 물론 겹겹이 껴입기도 하였고, 수료식 뒤에 바지도 솜바지로 갈아입어 몸뚱이를 단디 싸매기도 하였지만, 광장의 인파 속에서 추운 줄을 몰랐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안녕>의 깃발들, 나보다 더 멀리에서 모여든 전국 곳곳의 사람들, 재기넘치는 표현들로 저들을 풍자하고, 분노를 승화해낸 갖가지 손피켓들. 그동안 나는 그 자리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만큼 깊이 슬퍼하지 못했고, 뜨겁게 분노하지 못하였음을 안다. 그러나 다시 광장으로 나가면서, 어떤 이들의 얼굴에서 몇 해 전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의 팔뚝질에서 십 여 년 전 내 모습을 보는 것도 같아. 길을 막아서는 경찰 방패 앞에서 흥분을 삭이지 못하고 몸뚱이를 던지는 앳된 얼굴의 학생들, 그 앞에서 눈동자가 흔들리던 경찰 이등병들. 

 변호인의 송우석이 술에 취해 소리치던 것처럼 '데모 몇 번으로 변할 수 있을만큼 세상은 말랑말랑하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절망을 하기도 했고, 광장의 데모만으로는 삶을 구성하는 근본에 가닿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삶을 바꾸는 것에 그 근본의 답이 있다, 고 되뇌이고는 있으나, 그러나 그건 너무도 어려운 일. 이 싸움에 목숨을 걸 수는 있어도, 일상을 걸 자신은 없다던, 어느 소설 속 인물의 말처럼, 날마다 광장에서 경찰 방패 앞에 설 수는 있으나 몸 속 깊이 배어있는 자본과 문명의 달달함을 버리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삼성을 반대한다고 외치기는 쉬워도 내 삶에서 삼성을 거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여전히 답은 삶에 있고 일상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광장의 실천을 무용한 것으로 여기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삶과 광장, 그 둘을 선택적으로 취해야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삶을 바꾸어가지 못하는 채 광장에서만 떠들썩한 외침은 허약하겠으나, 삶과 광장은 뿌리와 잎새처럼 그 둘이 함께 단단하며 무성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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