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허달림

냉이로그 2008. 6. 22. 20:21

[광주 0622] 강허달림

엄마와 형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다가 나왔다. 잘 쓰고 싶으니 더 어렵기만 해. 이곳에서 지내면서 그 동안 못 쓴 편지들을 꽤 여러 통 썼어. 이런저런 찜질을 하거나 바람목욕과 찬물뜨건물목욕 같은 것들 사이 쉬어야 할 시간들이면 찜팩을 깔고 엎드려, 혹은 책상 앞에 앉아 편지를 쓰곤 했다. 배고픈 글씨를꾹꾹눌러가면서.굶고 있는 시간이, 가만히 있는 시간이 나도 몰래 떠올리게 해 주는 이들이 있어. 편지를 쓰고 있다 보면 나 또한 어딘가로 다녀오게 되는 것만 같아. 마치 내 몸 어딘가에우표라도 붙여, 그 날개를 달아.

이제 내일이면 사잇골로 올라간다. 지난 열흘의 시간, 돌아보면 이상스레 아득하게 느껴진다. 아침저녁으로 하던 바람목욕에, 어느덧 목욕탕마저 정들게 해 버리던 냉온욕, 된장을 배에 얹고 누워 있어야만 하던 시간, 잦은 설사와 숙변. 그래, 아무 먹은 것도 없이 변소에 들어갔다 나오면 뭔가 계속 배워내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기도 했지. 가벼워, 가뿐해, 비워지고 있어……. 엊그제 엉아에게는 명현반응이라는 것이 있었다.위아래로 피를 토해내는 일이었어. 얼마나 괴로워하는모습이었는지 아주무서울 정도였다.하지만 그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이래. 안에 있던 종양덩어리가 터져 바깥으로 나오는 거라고, 몸이 많이 안 좋을수록 그 명현반응이라는 것 또한 아주 심하게 일어나는 거라고, 그 일로 해서 몸 안의 나쁜 것 바깥으로 보내게 한 거라고 말이다. 아직기운을 찾지못하고 있지만, 정말로그 일이 좋은징조가 되었음 좋겠다.이곳에 있으면서 엉아에게 더 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실은 내가 무얼 어떻게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어. 그저 같이 있는 것, 곁에서같이 굶는 것, 그렇게 같이 견디는 것으로나마 힘이 되어 주고 싶었던 것인데 아무래도 나는엉아의 아픔과 외로움, 두려움과 절망에 대한 싸움들을 함께 하지도, 잘 지켜봐주지도 못한 것만 같아. 이 힘든 시간 함께 보내면서 좀 더 마음 편할 수 있게 더 잘 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솔직히는, 무어엔지, 나도 지쳐 있었는지 몰라. 힘이 들었거든.

아, 제목이 왜 강허달림이냐 하면,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 강허달림이라는 가수의 기막힌 노래들을 우연히 듣게 되었거든.아, 이 노래들 휴우,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

춤이라도 춰볼까? / 독백 / 지하철 자유인 / 버려진 꿈 …… 강허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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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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