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다. 제주의 날씨는 여전히 구름과 비와 바람과 햇살이 오락가락이지만, 비와 바람이 없는 오월의 하늘은 어찌나 맑고 파란지. 아침저녁으로에 창을 열면 바깥에서 귤꽃 내음이 진하게 들어온다. 아직 베지 않아 누렇게 익은 보리밭엔, 바람이 불 때면 마치 무림과 강호의 고수들이 한 판 대결의 장면이 있을 법한 멋진 장면. 잠들 때를 놓쳐 늦은 밤까지 놀아달라 감자가 잠에 들지 않으면, 마당으로 나가 서서 밤하늘을 한참도록 바라보곤 하였다. 이젠 감자도 달님을 알아, 달님 보러 가자, 하고 말을 하면 손가락으로 하늘 꼭대기를 가리키며 먼저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들고 기다리는.
그렇게 오월의 제주는 귤꽃 내음이고, 바람 속 보리 밭이고, 밤하늘 달빛이었다. 그리고 하늘이 바다이고, 바다가 하늘인 온통 파란 빛의 그것. 그 속에서 오월감자와 오월품자는 파릇파릇하고 있다.
바다에 나갔던 날, 갈아입을 옷을 충분히 챙기질 못해, 아빠 티셔츠를 원피스처럼 걸치고도 좋아라 모래밭과 바닷물을 뛰어다니던 감자.
바람이 센 탓에 이번에는 언덕 위에다 그늘막을 차려놓았지만,
그게 어디건, 감자는 신난다.
감자 머리에 챙 넓은 중절모 하나만 눌러놓으면 은하철도구구구에 나오는 ㅎㅎㅎ
감자는 바깥으로만 뛰어나가고 싶어.
엄마를 뿌리치고서 ㅎ
나왔다!
그늘막을 차려놓은 모래언덕에서 한참을 놀더니,
바닷물 찰랑찰랑 물장난을 하러 뛰어내려가.
으아아아, 발이 자꾸만 빠진다 ㅎ
실컷 놀고 올라와서도 바깥으로만 빙빙 돌며 장난을 치시는 ㅋ
우슬이 목!
지슬이 목!
우슬이 볼!
집에 돌아와 아빠랑 목욕을 하고 나와서는, 옷도 안 입고 다다다다 달려가 품자를 안고 있는 엄마한테 매달려.
그래도 엄마 품은 동생에게 내어줄 수밖엔 없고,
감자는 하는 수 없이 오디오 리모콘만 만지작만지작.
형아야, 내가 얼른 커서 같이 놀아줄게
감자가 요즘 꽂혀 있는 그림책 가운데 하나가 해원 언니가 쓴 <<오일장이 열렸어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장날 풍경이 한 장면씩 나오곤 하는데, 그 가운데 감자가 젤로 좋아하는 건 뻥튀기 가게 앞. 뻥이요! 하고 소리칠 때 그 앞에 선 사람들이 귀를 막는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이 나올 때마다 감자도 귀를 막아. 할머니가 뻥이요! 하고 소리를 치고 귀막는 흉내를 내어주니까, 감자도 그걸 따라해. 그리고는, 뻥이요! 를 해 달라고, 또 해 달라고.
뻥이요! 장면 말고도, 장터에서 아저씨들이 국밥에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도 있는데, 그 그림 볼 때마다 달래가 아빠가 먹는 거야, 하고 알려주니, 감자는 그 그림을 가리켰다 아빠를 가리켰다 손가락을 왔다갔다 ㅎㅎ 고추, 양파, 마늘을 파는 할머니도 나오고, 신발가게, 옷가게도 나오고, 호미와 낫, 삽을 만들어 파는 대장간도 나오고 그러는데, 제주 오일장에 가면은 그걸 다 볼 수 있거든.
그래서 마침, 오일장 날짜와 토요일이 겹치던 날, 할머니랑 아빠랑 감자 셋이서 장을 보러 나갔다.
아, 이 꽃은 그 전날 들이누나네 엄마가 감자품자를 보러 다녀가면서 가져다준 꽃.
마침 어버이날을 하루 앞두기도 하고 그랬으니, 이 꽃과 함께 감자 사진을 찍어 서울과 울진의 할아버지할머니들께, 그리고 전국에 있는 감자의 이모삼촌큰아빠들에게 보내볼까 하였는데,
감자는 이렇게 까불기만 하였다 ㅎㅎ
눈을 꽉 감더니, 뭐가 좋은지 그렇게 웃음이 터져버려. (감자가 장난꾸러기가 되고부터는 설정 사진을 찍는 건 매번 실패야 ㅠㅠ)
드디어 오일장 뻥튀기 가게. 얼마나 손님이 많은지,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콩을 튀기려는 사람들이 줄이 길게 늘어져 있어. 쌀이나 옥수수를 뒤켜야 뻥이요, 뻥! 하는 걸 볼 수가 있는데, 그러려면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하겠네. 할머니랑 한 바퀴, 장을 보고 왔는데도 너댓 번은 더 기다려야 해.
가게 앞에 앉아 기다리면서 뻥이요, 뻥! 귀막는 걸 연습하고 그랬는데, 자세히 보면 감자는 귀를 막는 게 아니라 볼에 대고 얼굴을 누르고 있다 ㅎㅎ 팔이 짧아 그런가 ㅋ 암튼 감자의 뻥이요 자세는, 저렇게 얼굴을 꾹 눌러주는 거.
기다리던 동안, 아빠는 양치기 소년처럼, 몇 번이고 뻥이요, 뻥이요, 뻥이요, 를 하면서 감자가 귀를 막는 걸 ㅎㅎ
막상 뻥이요! 하고 기계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뻥! 하고 울릴 때는, 감자는 귀막는 걸 놓치고 말았네 ㅎㅎ
그러곤 기계가 다 터지고 난 뒤에야 귀를 막아 ㅎㅎ
감자가 손짓으로 무언가를 가리켜 말을 하려는 것 같아. 으응, 그래. 바닥으로 뻥튀기들이 막 떨어져 있지? 그림책에서도 이렇게 뻥튀기 과자들이 막 떨어져 있던 거 봤지? 그림책에서 본 거랑 똑같네, 그치?
우슬아, 잘 놀고 있었니?
품자도 이제 눈 맞추어 얘기해주기를 기다려.
오올치 그래그래 오올치 으응으응.
할머니랑 아빠, 형아가 장에 다녀오는 동안 품자는 엄마랑 눈맞추어
품자도 이젠 눈맞추어 어르고 하면은 까르르르르 웃기를 잘해.
어머나, 이게 웬일이야. 형아한테는 육개월 무렵에도 옷이 커서 헐렁하던 게, 이제 두 달 된 품자에게는 벌써 빵빵해 ^ ^ 품자야, 빨리 형아랑 놀고 싶어서 이렇게 쑥쑥 크고 있는 거니.
그날 저녁엔 아빠랑 감자 둘이서강정낭독회엘. 회사에 나가지 않는 주말이라도 아가들을 돌보아야 하는 건데, 다녀올 일이 있었으니 달래에게만 감자품자 둘을 돌보게 두고 갈 수는 없어. 그래서 감자만이라도 함께 다녀기로 한 길. 그렇게 하여 감자와 아빠 둘이서 강정으로 데이트를.
무대에 올라 무언가를 읽어야 했는데, 감자가 잘 있어줄지가 걱정이었다. 낯선 곳, 적어도 내가 무언가를 읽는 동안에는 감자와 눈맞추며 있을 수도 없고, 감자를 안거나 어르거나 할 수도 없을 텐데, 감자가 몸을 비틀며 힘들어하지는 않을지, 아빠를 잡아끌며 어디론가 가자고 하지는 않을지. 그러나 고마웁게도 감자는 이십 분 가까운 시간동안 가만히 있어주었다. 놀랍게도.
제주에 내려와 한동안은 못내 어색하거나 힘겨운 마음으로 발걸음이 쉽지 않기도 했다. 부끄러움이며 미안함 같은 것이 앞서는 못난 마음. 그러나 이제는 아니. 그건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이 가셔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더 멀어지거나 피하려는 그 못난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겨내고 싶어서인지도 몰라.
반갑고 고마운 얼굴들이 많았다. 여섯번째 낭독회.
무대에 나가 이렇게 인사부터 시작.
이천육년 오월, 꼭 십년 전에 쓴 그 글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아빠에게 안겨 무릎 사이에 앉아있던 감자는, 자기도 같이 읽어가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왔다갔다 글자들에 밑줄을 그으며 가만히, 얌전히.
십 분 가까이 지나고 있을 때였을까. 그렇게나 오래, 가만히 있기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때부턴 아빠 얼굴을 만지거나 하면서 얌전히 장난을 시작해.
두 돌도 되지 않은 아가가 그 불편한 자세로, 그렇게 오랫동안 가만히 있으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니. 나는 여전히 읽어내려가면서 감자만 살짝 옆에다 내려주고 두유 하나를 내어주니, 바닥에 흘린 그거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가만가만 혼자서 노는 거라.
아마 이십 분은 읽었나 보다. 감자는 한발짝씩을 떼어 무대 위를 돌아다니다가는 아빠한테로 와 힘을 주는 얼굴을 하는데, 감자는. 응가가 마려운데도 그렇게나 잘 참으며 기다려준 거였지 모야.
어버이날엔 집에와 계시는 할머니랑 무얼하면 좋을까, 맨날 침을 맞으러 한의원엘,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엘, 그렇게나마 겨우 버티면서도 집안 살림을 돌봐주시는 할머니한테, 그날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무얼 먹으러 가면 좋을까 하다가 집에서 가까운 해안도로, 조그만 카페엘 다녀오기로.
일흔다섯 살 할머니도, 두 달 된 품자도 카페라는 데에서 처음으로 밥을 먹어보았네 ㅎ
감자도 먹을 게 있어야 하니까, 감자가 김밥 한 줄과 아빠 김밥 한 줄을 ㅎ
그랬더니 감자는 김밥을 다 헤집어가면서 우엉만 골라 먹네.
엄마도 먹어봐, 우엉 맛있어 ㅎ
할머니도 우엉 한 개 먹어 ^ ^
우와아아, 이게 모지.
낚시 놀이 장난감에 있는 그림이랑 똑같은 거야.
그래봤자, 감자한테는 우엉 골라먹는 거가 제일 좋아!
품자는 천장에 있는 별자리 불빛들을 보면서 가만히, 고마웁게도!
이날도 제일 신이 나는 건 감자.
그런데 감자가 신이 나면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행복하다는 거.
아무래도 감자가 어버이날 선물을 주는 건가보다 ㅎ
엄마랑 손가락끝만 맞추어도 행복하고,
음식에 놓여있던 작은 풀잎 하나만 쥐어줘도 기분이 좋아.
지붕없는 테라스로 나오면 하귀해안도로 아래로 바다가 넘실넘실.
으응, 여기는 아빠가 혼자 노트북 들고 들어가 일을 하곤 하던 별두개라는 조그만 카페. 맨날 삼천원짜리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몇 시간씩 공사 서류를 정리하다 나오곤 하던, 옆 자리 손님들이 먹는 음식을 보며, 언젠가는 달래에게 한 번 사다주어야지 생각만 했던 거.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랍스타라는 거, 전문 쉐프의 솜씨로 담아내는 몇 가지 파스타들.
그래서 어버이날 할머니한테 그런 거 드셔보았냐고 (당연히 못 먹어보셨다지), 그럼 그런 거 한 번 먹으러 가보자고 (처음엔 연밥이 생각난다 하시다가, 할머니도 호기심이 생기셨는지, 그러자고!) 그래서 하게 된 조금은 어색한 외식 ^ ^
바다 좋아하는 감자는, 실컷 바다구경을 하기도!
생전 처음 카페라는 데서 밥을 먹는 일흔다섯 할머니와 두 달 품자 ㅎㅎ
엄마랑 뒤안으로 나갔다 오더니 풀꽃 팔찌가 생겼네 ㅎ
사진기 좀 한 번 봐달라고 해도 그러질 않기에 "뻥이요!"를 외쳤더니 정말 놀란 얼굴을 ㅋㅋ 이러다 아빠는 정말 뻥쟁이가 되고 말 거야 ㅠㅠ
외식을 하고 돌아온 저녁, 감자 형아는 먼저 잠이 들었고, 할머니랑 엄마아빠가 품자에게만 눈을 맞추는 시간.
이렇게 할머니 방에서 빨래를 개면서.
품자도 까르르까르르 웃음으로 어버이날 선물을 주었네.
달래도 나도 너무나도 큰 어버이날 선물을 받았다. (날마다 받고 있긴 하지만 ^ ^ )
해가 길어지고 있어. 어느 하루는 퇴근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저녁 볕이 좋았다. 섬의 서쪽에 있는 감자품자네 마을, 노랗게 떨어지는 볕이 좋아, 감자에겐 물론 품자에게도 볕을 쪼여주고 싶어 나간 마을 산보.
감자야, 같이 가자! 아무리 불러대어도 감자는 신이 나서 혼자 내달려가기만 ㅎ
아빠가 회사에 나가 있는 동안 품자는 이렇게 엄마 품에서.
감자만 돌보며 지내던 때랑은 다르게, 품자가 크는 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ㅠㅠ
어머나, 품자야!
아빠랑 안고 바깥에 나가보자 ^ ^
감자는 씩씩하게 뚜벅뚜벅.
감자야, 같이 가자!
아무리 불러세워도 ㅎ
중심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뒤뚱거리며 내달려가 ㅋ
어? 그러다가 장애물을 만났네 (요것도 장애물이라고 ㅋ)
조심조심 발을 떼어 건너가더니,
다시 또 내달린다 ㅎㅎ
형아야, 같이 가자!
엄마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
한 시간 가까이를 걸었나 보다. 감자 걸음이 늦어지길래 엄마가 안아줄까, 했더니 털썩 안기네.
하루종일 품자를 안느라 엄마 어깨가 빠질 것 같다는데 ㅠㅠ 포대기라도 갖고 나왔으면 아빠가 품자를 안고 감자를 업고 했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엄마아빠는 몰랐는데, 감자는 두 발이 다 까져서 상처가 나 있던 거 ㅠㅠ 양말도 신지 않고 샌들을 신은 채 흙길을 뛰었으니, 자꾸만 발목이 꺾이고 하면서 발이 쓸려 까져 있었어. 그래놓고도 칭얼칭얼 한 번, 먼저 안아달라 표현 한 번 하지를 않았네. 감자야, 아프면 아프다고 해. 품자에게 엄마 품을 내주었을 때도 그렇더니, 어쩜 그렇게 떼 한 번 쓰질 않고, 참기만 하는 거니.
첫 외출이었다. 물론 아빠랑 같이, 할머니랑 다같이 바닷가에도 몇 차례 나갔고, 더러 바깥에 나갈 때도 있었지만, 엄마랑 둘이서만 어딘가엘 가기는 처음인 외출. 품자를 낳은 조산원, 그 조리원에서 열흘을 지내면서 함께 지내던 다른 아기 엄마들. 아기를 낳은 날짜도 같거나 하루이틀 차이로 거의 비슷하고, 거의 비슷한 육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산모들끼리 만나기로 약속한 날. 달래가 감자와 품자 둘을 데리고 나갈 수가 없으니, 감자는 할머니랑 집에서 둘이 있기로 하고, 달래와 품자만 시내에 있는 다른 아기엄마네 집으로.
으하하하, 이렇게 아기 다섯, 아기엄마 다섯이 모였다네. 엄마도 친구들을 만난 거지만, 품자도 친구들을 만난 날.
비슷한 즈음에 태어난 아가들을 눕혀놓으면, 감자 형아는제일 쪼꼬만 아가였는데, 품자는 제일 큰 아가야. 달래와 품자가 제일 늦게 도착하였다는데, 다들 놀라더라나. 열아홉 달 된 감자가 이제 10kg을 조금 넘고 있는데, 두달박이 품자는 벌써 7kg.
감자 때는 석달까지 젖을 줄 수 있었고, 그 뒤로는 유선염으로 끝내 수술까지 받아야 해서 분유를 먹었지만, 품자는 젖먹이는 걸로는 그런 힘겨움은 전혀 없다. 유선염을 앓거나 하는 건커녕 끝이 까지거나 피가나는 일도, 몸살을 앓는 일도. 그러니 앞으로 이년 삼년이라도 엄마젖을 계속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유를 먹을 때 아기가 빨리 크고 살이 오른다고들 하는데, 우리 집에선 거꾸로란 말이지 ㅎ 아무래도 감자품자는 타고나기를 그런 것 같아. 감자는 조그맣게, 품자는 크게. 이러다가 너무 빨리 품자가 형아를 따라먹으면 어쩌나 몰라.
엄마 밖에 나가 실컷 수다떨고 스트레스 풀으라고, 잘도 자주었구나.
이렇게 아기 하나씩을 안은, 다섯 엄마들과 다섯 아가들.
달래가 보여준 사진을 보면서도, 그렇게 모여서 있는다는 게 솔직히 상상이 잘 되지가 않아. 여기서 아기를 안아 재우다 보면, 저기에서 또 우는 아기가 있을 거고, 누군가는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누군가는 젖을 물려야 ㅠㅠ
품자는 어쩜 이렇게 쑥쑥 크고 있는 건지. 이러다 조금 있으면 감자 형아랑 옷을 같이 입겠네, 아, 아니다! 그러다가 조금 뒤면 감자가 품자 옷을 물려 입어야 할지도 몰라 ㅎㅎㅎ 아마도 나중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지금처럼이라면, 품자는 몸집이 크고 힘도 세어서, "우리 형아 괴롭히면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하고 형아를 지켜주는 그런 아우. 빨래를 개면서 그런 상상을 하다가 왠지 감자와 품자 캐릭터가 그런 식으로 그려져서 혼자 웃음이 지어지곤 했다.
이 날 품자는 아기엄마들 가운데 우스갯소리 잘하는 한 엄마한테 '하가리 총각'이란 별명도 얻어왔다지. 하가리 총각 잠들었다, 하가리 총각 젖달란다, 하가리 총각 오줌 쌌다 ㅎㅎㅎ 나중에 달래에게 듣기로, 이렇게 다섯 아가를 한 데 눕혀놓고 엄마들이 빙 둘러 수다를 떨고 있자니까, 한 엄마가 얘기하면 다섯 아기 고개가 그 엄마 쪽으로 돌아갔다가, 반대편에 앉은 엄마가 얘길 하면 다섯 아기 얼굴이 다 같이 그쪽으로 돌아갔다가, 그러는 게 정말로 재미있더라면서.
퇴근하는 길에 달래와 품자를 태우고 집에 들어오니, 감자가 기다리고 있어. 품자야, 어디 갔다 오니? 형아가 얼마나 보고싶어했는데.
집에서 할머니랑 둘이서만 있어야 하는 감자가 조금은 걱정이기도 하였는데, 감자는 아주 잘 놀았다고 한다. 엄마아빠랑 있을 때보다 밥도 더 잘 먹고, 할머니랑 같이 마당에도 두 번이나 나가서 놀다 오고, 장난감을 가지고도 혼자서도 잘 놀고. 오히려 엄마나 아빠, 엄마아빠가 있을 때 보이던 어리광 같은 게, 할머니랑 둘이 있을 때는 하나도 보이지 않더라면서.
이날, 감자는 정말 멋진 형아였다.
그날 저녁, 할머니 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뒤적이고 만지작거리던 감자에게 할머니는 보자기를 등에 둘러주었나봐. 이야아호! 감자도 슈퍼맨 망토를 둘렀어 ㅎ ㅎ 그런데 공갈젖꼭지를 입에 문 슈퍼맨이라니 ㅋㅋ 빠라바밤빠라바밤~ 그렇게 하여 감자는 이 얼빵한 표정의 울트라공갈젖꼭지슈퍼감자맨으로 변신!
으하하, 감자가 슈퍼맨이 알게 모람, 등에서 펄럭펄럭, 보자기를 두른 것만으로도 그저 신난 감자 ㅎ
으흐흐, 슈퍼맨 망토에 공갈젖꼭지 ㅎㅎ 저 짧은 다리에 볼록 튀어나온 배, 얼빵한 얼굴을 한 공갈젖꼭지슈퍼감자맨 ㅋ
내가 모 어때서요 ㅠㅠ
슈퍼맨은 한 쪽 팔을 쭉 위로 뻗는 거야 ㅎㅎ 감자는 엄마에게 슈퍼맨 자세를 열심히 배우기도 했어 ㅋ
하지만 몬가가 마음대로 잘 되질 않으면은, 감자는 눈을 꽉 감고 웃어버리고 말아.
슈퍼맨 놀이를 한참 하고 나서도 잠이 오질 않아, 밤중까지도 엄마를 붙잡고 그림카드 놀이를 ^ ^
감자는 몰 얼마나 알아듣는지, 엄마가 해주는 얘기를 얼마나 열심히 듣는지 ㅋ 그 진지한 얼굴이 더 웃겨.
엄마가 꿀벌 그림을 보면서, 아까 낮에 마당에서 본 거 생각나느냐고, 앵앵앵앵 하고 날아서 꽃에 내려앉아 꿀빨아먹는 거 생각나냐고 물었더니, 감자가 허리를 숙이며 꽃에 꿀빨아먹는 벌 흉내를 ㅋ
엄마랑 둘이 노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까, 그 풍경이 참 고마웠다. 달래도, 감자도.
아, 그리고 이건 오늘 처음 시작했다는 감자의 개인기 또 한 가지. 두 팔을 올려 하트를 그려보이는 '사랑해요 ♡'. 드디어 이거를 감자가 이날 하기 시작하였다. 감자가 글과그림에 실린 그림들을 넘겨보고 있으니, 달래가 병수 아저씨 작품에 있는 하트를 보며 가르쳐주었다나. ㅎㅎㅎ 그런데 자세히 보면 팔이 짧은 감자는 하트를 그리는 게 아니라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어. 아니, 동그라미도 아니고 두 손을 그냥 머리에 갖다대는 거랄까 ㅎ 하지만 감자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몸으로 그려내는 사랑해요, 하트 그림.
고마워, 감자야.
아빠도 감자를 사랑해.
감자야, 아빠랑 결혼해줄래? (보름 전부터던가, 나도 모르게 자꾸 이 말이 나오고 있네 ㅋ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