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벌써 봄이 와 있어. 이제 스무 몇 날, 서른 몇 날 된 품자를 안고 바깥 나들이 하기에는 가벼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집 가까이에 벚나무 예쁜 길도, 먼 육지에서 일부러 찾아드는 예쁜 바다들도 가까이에 있어. 주말에는 이렇게 제주에서, 봄을 맞을 수 있었다.
집에서 차를 타고 잠깐이면 닿을 수 있는 애월고등학교 들어가는 길. 감자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꽃터널이 된 그 길을 내달리기 시작해.
집에 돌아와 사진들을 컴퓨터에 옮기다가, 이 장면 즈음에서 화양연화의 노랫말이 떠올라. 아마 십 년 쯤, 이십 년 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났을 때, 누군가 내게 화양연화를 물으면 이 때 장면을 떠올리진 않을까 싶은.
감자가 맞은 두 번째, 품자의 첫 번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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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내달려.
지난 해, 그땐 이랬었는데 .
가끔 한 번씩 돌아다보곤 엄마가 잘 따라오는지,
품자도 잘 따라오는지.
길에 떨어진 꽃잎에 걸음이 멈춰졌다가
저쪽 길에는 또 뭐가 있는지.
길 건너편 자동차 정비소에서 나는 기계 소리에 눈길을 빼앗기기도 했다가
큰길까지 나갔다가 다시 언니형아들의 학교로 거슬러 오르던 길
엄마는 감자 걸음을 쫓아가지 못하네.
감자야, 엄마 셀카 좀 찍자 ㅋ
이렇게 가족사진도 찍고 ^ ^
품자는 아빠가 데리고 갈 테니까 엄마랑 나란히.
그렇게 엄마랑 함께 걷던 벚나무 길.
엄마랑 둘이 사진 좀 찍자 하니까 빠져나가려고 장난만 치려고 그래 ㅎ
그래놓곤 꽃이 많다고, 꽃 좀 보라고 오! 오! 오!
학교 안으로 들어가 운동장 꽃길 그늘 밑에.
우슬이도 처음 맞는 봄, 처음 맞는 꽃길.
생후 스무나흘 날, 꽃 구경을 나왔습니다!
꽃길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고는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이러고 곯아떨어져버려. 감자야, 꽃꿈을 꾸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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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엔 바다엘 나가. 아침부터 햇살이 환하게 집안으로 들어오던 날, 어차피 이날은 사전투표를 하러 달래랑 품자랑 다 같이 바깥에 나가려는 길. 투표하러 갔다가 바닷가에 가서 놀다 오자!
세상에나, 감자는 이렇게 바다 앞에 서서 삼십 분도 넘도록 꼼짝을 않고 서서 저 멀리를 바라보네. 밀려왔다 쓸려가는 파도, 발목을 적시고 나가는 차가운 물살, 아직 물이 차가워 몸을 떨면서도, 그만 가자고 하면 싫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그 자리에 꼼짝을 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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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감자가 넘어지지나 않을까, 너무 깊이 들어가지나 않을까,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리지나 않을까 싶어 감자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모래밭에 발목까지 푹 빠뜨리고는 저러고 망부석처럼 꼼짝을 않는 거라. 그러니 조금 멀리 떨어진다 해도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진 않아.
감자야, 감자야! 아무리 불러도 감자는 눈앞으로 들고나는 파도, 저 멀리 바다만 바라보았네.
곽지에는 지하 용천수가 올라오는 길이어서, 여느 바닷가보다 물이 차다고 했는데, 감자는 몸을 덜덜덜 떨면서도 눈앞의 물살, 그 위로 그려지는 무늬가 그저 신기해.
여어어~!
정말 오래였다. 나라도 그렇게 오랫동안은 발을 떼지 않고 그대로 서있지 못할 것 같을만큼.
품자는 처음 바다라는 데를 가보는 거. 햇볕을 받아 그런가, 고맙게도 힘들게 하는 거 없이 내내 깊은 잠을 자.
물에서 실컷 놀고 나온 감자에게 젖병을 물리고 보니, 달래는 품자를, 나는 감자를, 그렇게 나란히 안고 앉는 그림이 되었네. 이걸 할머니가 전화기로 찍어주었어 ㅎ
바다에 나가 신나게 놀다 들어오니 기분이 더 좋았나봐.
감자는 품자를 보면서도 얼마나 좋은지.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쫓아다니며 들여다 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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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다음 일요일, 한 번 더 바다에 나가자. 오늘은 아빠도, 감자도 갈아입을 옷도 챙겨가고, 수건도 챙겨가고, 물에도 들어가자. 물이 차가운 곽지 말고, 협재, 금능 쪽으로 가서 물에도 첨벙첨벙하면서.
물에 들어가면 안 돼! 하던 어제랑은 달리, 감자 손을 잡고 물 속으로 성큼성큼. 감자는 바닷물을 만져보고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난 놀라운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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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는 바다의 어떤 거에 이렇게나 놀라워하면서 좋아할까. 멀리서 내다보기만 해도 눈이 커다래지며 좋아하더니, 바닷물을 저벅저벅, 물무늬를 만들며 밀려들고 쓸려나가는 물살 안에서.
어쩌면 좋으냐는 얼굴을.
그토록이나 좋아하던 물에서 찰방찰방도, 흙모래 놀이도,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다같이 ㅎ
감자, 신났다!
품자에겐 벌써 두 번째 바다. 오늘도 역시 엄마 품에 안긴 채로 바닷가 햇살과 바닷바람만으로.
옷이 다 젖어 나와서는, 몸이 추워지기 전에 할머니가 따뜻한 모래로 몸을 말려.
물에서 놀고 오니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집에 와서는 김밥을 폭풍 흡입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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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말을 보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이럴 수 있다면, 주말만이라도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