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증이건 렁증이건 아무래도 나한테는 감자만한 약이 없네. 지금도 그래 ㅎ 전화기 안에 있는 감자 얼굴을 하나씩 넘기고 있는 시간만큼은, 울도 렁도 없이 평화로운 햇살이 잔잔히 반짝이는 것 같은.
그럼 시간 역순으로, 손에 잡히는 것부터 하나씩 ^ ^
엊그제 일요일, 수니 이모야네랑 주영 이모야네가 다녀가던 때 151213
요즘은 자꾸만 밥먹을 때 자기 이유식을 먹다가 엄마아빠 밥상에 있는 걸 달라고 그러네. 그래서 콩나물국에 있는 콩나물을 하나씩 건져주면 좋다고 그걸 한 가닥씩 받아먹어 ㅎ
그래놓곤 이쁜 지~~잇! 해보라 하면, 손가락을 콧구멍에 집어넣어 ㅋ 그걸 보곤 엄마아빠할머니가 우습다고 배를 잡으니까, 다들 웃어주는 게 좋아 그러는지, 툭하면 콧구멍에 손가락을 ㅎ
콧구멍에 손가락 넣기랑 더불어 감자가 요즘 밀고 있는 표정 또 한 가지. 이쁜 짓 해보자~ 하거나 사진기를 앞에 들이대면 자꾸만 저런 입모양을 해서 푸하하하 웃게 만든다니까. 달래 말처럼, 자꾸 웃으니까 더 그러는 건가 봐. 감자야, 너 개그본능이 있는 거니? 왜 이렇게 웃기려고만 드는 거야 ㅎㅎ
파하하하, 가짜로 우는 시늉을 하는 감자군 ㅋ 정말로 우는 게 아니라 이제는 꾀가 나는지, 제 맘에 안 드는 걸 하면은 이러구 우는 시늉을 하곤 해. 주로 모자 씌울 때나 양말 신길 때. 이 날은 선물받거나 얻어온 겨울옷들이 몸에 맞는지 하나씩 입혀보는데, 귀찮다고 저런 얼굴을 ㅠㅠ
그러다가도 입기 싫다는 잠바를 벗겨주니, 내가 언제 찡찡댔냐며 이렇게 말짱한 얼굴을 ㅎ
깟난장일때부터 목욕물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던 감자군은 지금도 목욕물에만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
말하자면 여기는 감자가 다니는 학교 ㅎ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는 (실은 엄마가 애엄마들끼리 만나러 나가는 게 아닌가 싶은 ㅋ) 한라대학교 문화센터에서 여는 아가들 놀이프로그램. 일주일에 한 번 사십 분씩 진행되는 거라는데, 감자는 갈 때마다 이삼십 분은 멍한 얼굴로 여기가 어딘가, 가만히 있다지. 다른 아가들은 프로그램이 시작하자마자 그날 놀이 재료에 달려들고, 덤벼들고 그런다던데, 매번 감자는 멍한 얼굴로 한참을 ㅎ
겨우 적응이 되어 무언가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면, 이렇게 팔을 들어 손가락질을 하며 어, 어, 어!
이날 프로그램은 국수가닥 자투리들을 쏟아놓곤 그걸 만지고 주무르며 노는 거라던가. 어쩐지 주방에 있는 요리사 모자를 뒤집어 쓰고 있더니만 ㅋ 안녕하세요, 감자쉐프입니다 ㅎㅎ
이날은 감자 학교에 다녀오면서 (무려 대학교를 다니는 감자 ㅋ) 달래가 하귀에 있는 라다언니를 만나 같이 밥을 먹기로. 그러고는 라다헤어 샵에 들러 쉬다 들어왔는데, 라다 이모가 감자 몸에 보자기를 둘렀다지 ㅎㅎ 감자는 어리둥절, 이게 모하는 건가, 모르고 있다가,
기이이이잉, 바리깡 지나는 소리가 나니까 으! 으! 으! 으! 으! 겁을 내더래 ㅋ
말랴 삼촌이랑 말랴 삼촌 손님이 같이 들르던 날, 이야아! 감자는 망치질 개인기를 보여주었어 ㅋ
모자만 씌우면 벗기고, 씌우면 벗기고 하는 감자에게 모자 씌우기란 고양이 목에 방울 걸기. 감자가 딴 거에 정신팔려 있을 때 씌우는 줄도 모르게 씌워야 성공할 수 있는 ㅎ
아마도 감자는 모자를 쓰고 있는 줄 모를 거임 ㅋ
아, 여기에도 모자를 쓰고 있네 ㅋ 이거는 속초 종숙이 이모야가 보내온 빵모자에 목도리, 벙어리장갑을 받던 날, 인증샷 사진을 찍어보내자며 하나씩 씌우고 끼우고 했는데, 결국 장갑 끼우기에는 실패. 고집쟁이 감자같으니라구. 하여간 지 의사는 얼마나 확실한지 ㅠㅠ
감자네 집, 돌밭 마당. 실컷 기어다니더니 마음에 드는 돌멩이 하나를 골랐는지 ㅎ
감자가 보라고 가리키는 저기는, 리사무소 지붕에 펄럭이는 깃발들. 감자는 깃발 펄럭이는 모습엔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는가봐. 아, 그것보다 더 좋아하는 건 바람에 나뭇가지며 이파리 흔들리는 거.
아빠, 이 덩치 커다란 애는 모야?
카페 문을 열지 않는 어느 월요일, 달래에게 듣기만 하던 베이비카페라는 데를 나도 같이 가보던 날. 그 안엔 다들 아가랑 엄마들이라 왠지 들어가기가 머쓱하였지만, 그럴 땐 또 부끄럼같은 거 없이 용감한 거라. 그냥 아빠도 아니고, 나이 마흔 중반이 되어가는 아빠가 감자와 함께 온 사방을 휘젓고 다니며 놀았네. 언제 또 그런 델 가보겠냐, 하는 심정으로 ㅎㅎ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걸음마 보조기라는 저 플라스틱을 밀면서 걷는다는 게 그렇게나 신기했는데, 이젠 저런 거없이도 열발 스무발은 문제없이 걷고 있어 ㅎ 암튼 그래도 저 사진에선, 저거라도 붙잡고 밀면서, 직립을 한다는 거에 자기도 놀라워하면서 신나하던 표정이 얼마나 좋은지 ^ ^
하하하, 이건 국수 면발 놀이하던 그 전 주에 학교갔을 때인가 보다. (다른 아가들은 다들 감자보다 서너 달, 혹은 대여섯 달 어리다고 하는데, 아가들끼리 모여 있는 걸 보면 감자가 젤 째그매 ㅋ)
컵떡볶기도 컵탕수육도 아닌 컵감자 ㅎㅎ
이렇게 넋을 놓고 전화기 속 감자 사진을 하나하나 열어 넘기다 보면 울도 렁도 언제 그러했냐는 듯 가만히 감자 얼굴에서 전해오는 어떤 목소리만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말들도 ^ ^
아빠, 이래도 자꾸 우울하다 그럴래? ㅋ
이렇게 엄마도, 감자도 있는데 ㅎㅎ
감자가 내게는 약인데, 지난 밤부터 감자가 아파. 가래끓는 기침으로 자다가도 깨기를 여러 번이더니, 코가 막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지, 막힌코 콧바람을 킁킁킁. 그래서 전에도 두어 번 다녀온 제주 시내 한의원엘 가서 발목에도 손목에도, 코 주변에도 침을 열 대도 더 맞고 돌아와. 기특하게도 따꼼따꼼 침을 맞는데도, 이게 몰 하는 거지? 하는 얼굴로 멀뚱멀뚱 가만히 있네.
한의원엘 나간 길에 감자 뿐 아니라 달래도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이제 달래 뱃속 품자는 스물여덟 주. 감자 때보다 더 빨리 배가 부르고 있고, 배가 더 무겁다 하더니, 벌써부터 아프다 하던 허리가 더 많이 아파. 품자를 만날 날은 이제 겨우 십이주, 석 달도 채 남질 않았구나.
까닭도 없이, 대책도 없이, 날씨가 어쩌니 하면서 괜한 기분 같은 걸로, 울증이니 렁증이니 그러고 있는 사이 달래와 감자는 진짜로 그렇게 아프고 있었네. 못나고 못난 놈 같으니라구 ㅠㅠ
어서 집에 내려가 감자를 보고싶네. 감자야, 아빠한텐 감자가 약인데, 약이 아프면 어쩌니. 한 잠 푹 자고 나선 다시 반짝반짝 얼굴로 함박함박 웃고 매달릴 거지? 아빠 등짝에 어부바, 딱그닥따그닥 말타고 놀으자. 콧구멍에 손가락! 그런 거 하면서 잠들 때까지 또 재미나게 놀으자. 아빠도 이젠 렁증 같은 거 끝! 할 거니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