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을 아홉이나 올렸으니 이미 다 담겨있지만, 사진으로 보는 정지 장면들엔 또다른 재미와 감동이 있어. 이날 돌잔치가 열리기 한 시간 쯤 전,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렀던 손님이 찍어준 것들이랑 복현이모가 달래 전화기로 찍어준 것들. 아쉽게도 그날 함께 한 사람들 모습, 돌상 중심으로만 사진이 남아 있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2015년 10월 4일 일요일 오후 다섯 시,
기차길옆작은학교 식구들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카페에서 열어준
감자의 첫 생일상.
이 조그만 카페 안에서 아주 조그맣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어.
기차길 이모들이 차려준 돌상.
그리고 그 앞에는 감자의 돌잡이 준비.
지구별에서 일 년, 어땠니, 감자야, 살만은 했니? 아빠랑 사는 거 힘들지는 않았니 ㅎㅎ
이렇게 돌상 앞에 앉아 사진을 찍어. 냉이, 달래, 감자, 그리고 품자.
어느 새 일 년이야.
지구 별을 타고 커다랗게 한 바퀴.
기차길 이모들이랑 형아들이 밝혀준 첫번째 촛불.
다른 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이 사랑만큼은 기억하렴.
엄마아빤 어쩔 줄을 몰라 그저 웃음만.
할아버지 신부님까지 찾아와 주셨어!
팔십 평생에 돌잔치는 처음이라던 문신부님 ^ ^
약하고 여린 것, 순정하고 눈물겨운 것들이 살아가기에는 절망스런 세상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건.
감자도 할아버지 말씀을 열심히 들었구나!
그러다간 할아버지가 선물해주신 한과를 입에 물고.
아빠한테도 한 입 ㅎ
언젠가 감자에게 길 위의 신부님 이야기도 들려줄 때가 있겠지. 감자야, 그 때까지 이젠 우리가 신부님을 자주 찾아뵙기로 해.
기차길옆 공부방 형아들이 노래를 불러주었어.
이 어린 아가들이 해주는 더 어린 아가를 위한 축하공연.
앞으론 감자도 기차길옆작은학교의 공연을 보러 다니게 되겠지. 감자도 나중에는 공부방 친구들이랑 공연을 함께 하는 날도 올까. 아마도 그건 인천, 강화에 가서 살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겠지만 ㅜㅜ
감자야, 엄마아빠가 결혼하던 날에도 공부바 언니, 형아들이 노래를 불러주었더랬어. 그리고 세상 가장 가장 낮은 자리, 눈물겹게 살아내는 이들의 곁이 되는 자리에는 언제나 공부방 언니형아들이.
그래, 감자도 공부방에서 함께 공연을 하고 그러진 못하더라도, 아마 세상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아 곁이 되어 살아가는 일은 할 수 있겠지. 그렇게 공부방 식구들과 함께 손을 잡아.
감자도 형아들, 친구들이 불러준 노래가 좋았나봐 ^ ^ 노래하는 내내 형아들을 따라 엉덩이를, 다리를, 팔을 들썩이며 좋아하더니, 공연이 끝나니까 신나하며 소리를 내지르네! 아가들에겐 그런가봐. 무엇보다 또래 친구며 형아들이 보여주는 거에는 자기들만의 무언가가 느껴지는.
세상에나! 이건 세나 이모가 카톡으로 보여준 사진. 학교에 가야 해서 제주도에 함께 오지 못한 예나 누나가 교실에서 만들었다는 감자 생일 떡이래 ^ ^
감자 떡도 예쁘지만, 예나 누나 얼굴이 더 예뻐 ^ ^ 어쩜 이렇게 깜찍한 선물을 보냈을까.
그리고 이번에 제주에는 함께 오지 못한 청년부, 고등부, 중등부 언니형아들이 감자에게 보내온 특별한 선물.
으으응? 이게 모지? 여기에 내 얼굴이 있어 ^ ^
함께 내려오지 못한 언니형아들이 쓴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어주어.
지난 여름에 다녀가며 만난 누나들도,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형아 누나들도.
감자야, 생일 축하해. 저번에 북콘서트 때 만났었지? 그 때 네가 박기범 삼촌이랑 다르게 너무 통통해서 많이 놀랐는데 지금은 더 통통해졌을려나…… (한길이 편지 중에서 ㅍㅎㅎㅎ)
형아들의 삐뚤빼뚤 그림들에,
여섯 살 래원이 형아가 쓴 편지도,
그리고 이모삼촌들.
그 안에 담긴 마음을 감자도 느끼는 걸까, 한참이나 편지책을 뒤적이더니 좋아서 웃네 ^ ^
그리고 그 편지책 안에 함께 들어있던 성수 형아의 그림.
형아가 그려준 자기 얼굴을 더듬어.
달래는 이 편지책을 받아들자마자 울컥,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저 멀리, 고작해야 한 두 번, 아니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누나 형아들이 담아준 이 정성을 어떤 말에 담을 수 있을까. 거기, 인천에, 강화에 기차길옆작은학교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공동체가 있어. 엄마아빤 그저 그 공동체를 좋아하고, 그 공동체를 보며 평화를, 가난을, 더불어 살아가는 일을 배우고 있을 뿐인데. 공동체 바깥에 있는 감자네한테까지 이렇게나 정성스런 마음을.
감자야, 우리가 평화를, 가난을, 그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쫓아 걸어간다면, 아마 우리도 기차길옆과 식구 아닌 식구로 지내어 가는 게 될 거야. 나누고 나누어 더 나눌 것이 없는 삶, 감자도 그런 삶을 찾아 살고 싶어 하게 되겠니. 기차길옆 식구들에게 받은 사랑을 갚는 건, 함께 그러한 꿈을 꾸며 길을 걸어가는 동무가 되는 거. 언젠가 공부방 정기공연 제목이기도 한 것처럼 '길 · 동무 · 꿈'.
이제는 돌잔치의 하이라이트, 돌잡이 시간 ^ ^
먼저 돌잡이상에 어떤 거를 올렸는지, 그것부터 얘기를 해.
이 개구리 모양 실로폰은 엄마가 올린 거. 꼭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며.
그 다음엔 나명 씨가 올려놓은 쌍안경. 처음엔 과학자를 생각하며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사러 문구점엘 갔다는데, 그 둘이 같이 들어있는 게 있다며 쌍안경을 가져왔다며. 그런데 올려놓고 보니 왠지 과학자보다는 탐험가 쪽일 거 같다나 ^ ^
이 지렁지렁한 거는 말랴가 올린 건데, 자전거를 좋아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자전거 바퀴 튜브를 올려놓았대. 감자야, 이거 잡고 자전거포 아저씨 되어도 좋겠다! 따뷔랭처럼 자전거 못타는 자전거포 아저씨 ㅋ
그 다음에 이건 아빠가 올려놓은 대패. 감자야, 아빠랑 같이 집짓지 않을래?
이거는 승민, 선경이 만든 도자기 인형. 감자가 이걸 잡는다면 모습 공방의 수제자로 삼겠다고 했어. ㅎㅎ
이 뒤지개는 누가 올렸나요?
이번에도 엄마가 올렸대 ^ ^ 감자가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면 좋겠다나 (아빠처럼! ㅎㅎ) 요즘 뜨는 것처럼 쉐프가 되어도 좋겠다면서 ㅋㅋ
이거는 수연이모가 올려놓은 기차길옆작은학교 명함 ^ ^ 여기 모인, 그리고 오지 못한 공부방 식구들이 감자 돌을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올려놓고 싶으셨다지. 와아아, 감자가 이걸 잡아도 좋겠는 걸. 감자도 가난한 공동체에서 평화를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아!
어머나, 이거는 누가 올렸어요? 하하하, 이 돈은 신부님이 올리신 거네.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어서 투쟁 후원금도 많이 내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그러셨어 ^ ^
그 다음에는 전통적으로 돌상에 올린다는 명주실이랑 쌀이 더 올려놓았어.
두두두두두두둥! 과연 감자는 무얼 집었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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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뜻밖에도 감자는 제일 멀리 놓인 쌀에 손이 갔어. 간장 종지에 담아놓은 쌀알을 만지작만지작 하면서 손으로 쥐어. 쌀을 집는 거에는 만석꾼이라는 뜻이 담겼다나? 어이구야, 옛날에는 사람들을 부려 만석 농사를 지었겠지만, 만석이나 되는 쌀농사를 지으려면 감자 허리가 휘겠구나 ㅎㅎ 게다가 엄마아빤 땅 한 평 물려줄 수 없으니 소작농부터 시작을 해야 할 텐데 ㅋ
그래도 좋다, 감자는 농사꾼이 되어라! 그러고 보니 그게 제일 좋으네 ^ ^
사람들이 웃고 떠들어도 감자는 아랑곳 않고 쌀알만 만지작만지작.
왜 웃어요, 아빠?
쌀 다음으로 손에 잡은 거는 기차길옆작은학교 명함, 그리고 그 다음엔 자전거 바퀴 튜브를 잡았어. 그럼, 이걸 어떻게 해석하면 좋으려나 ㅋㅋ 감자는 농사를 지으면서 가난과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게 되려나, 자동차 아닌 자전거를 타고 세상으로 나가며 ^ ^ 꿈보다 해몽이고, 그래봐야 재미로 하는 거지만은, 어쨌거나 상상해보니 그림이 참 예쁘네. 어쩌면 내 마음에 그런 꿈을 묻어두었을까, 끝내 이루지 못한 그리운 그것.
엄마아빠도 한 마디씩을 하라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고맙고 감동스러울 뿐. 감자에게도, 감자엄마에게도, 그리고 이렇게 상을 마련해준 기차길옆 식구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힘겨운 걸음을 마다않고 해주신 신부님과 평화바람 식구들에게도, 갑작스런 연락에도 기꺼이 달려와준 친구들과 이웃들.
모쪼록 감자가 이 고마움을 잊지 않기를. 이렇게 받은 마음들은 더 크게 갚아나갈 때 진정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마지막으로 형아들이 준비한 선물을 전하는 시간 ^ ^
아참, 깜짝 선물이 하나 더 있었어.
소길 이웃인 순심이네 집에서 온 감자 생일 축하 메시지 ^ ^ 돌상을 차리는 동안 말랴가 순심이네 집엘 잠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감자의 첫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부조 봉투를 보내와. 야, 이런 걸 받아오면 어떡하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감자 생일인데 당연히 선물을 보내는 거라는 말을 듣고는, 그저 고마운 마음으로! 와아아, 감잔 좋겠다 ㅎㅎ
그런 다음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시간. 사실 이 뒤의 시간들은 가슴이 진정되지를 않아 어떻게 흘렀는지를 잘 모르겠어 ㅜㅜ
신부님께도 술을 한 잔 따라 드리고 ^ ^
감자는 이내 잠이 들어버렸네. 그런데 기차길 식구들 가운데 이모들 네 분이랑 한빈이, 래원이 형아, 예준이는 저녁 비행기로 먼저 올라가야 해. 월요일 출근을 해야 하는 이모들. 감자야, 예준이는 가야 한대. 아빠가 대신 인사할게. 등에는 감자를 업고 앞으로는 예준이를 안아.
이모랑 아가들 일곱이 돌아가고, 강정의 평화바람 식구들도 내려가고, 단출하게 남았지만, 하준이의 재롱에 그 따뜻한 밤이 더욱 무르익어가던.
어머나, 하준이는 벌써 뱅뱅뱅 노래에 맞춰 춤을 추네. 어쩜 그렇게 동작도 딱딱 맞게 할까.
감자는 한 숨을 자고 났는데도 여전히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네. 마침 그때 난장이공 미란 이모야랑 누리 누나야가 들어왔어 ^ ^
감자야, 가까운 동네에 말랴 삼촌이 있으니 얼마나 좋으니.
꿈같은 사흘 밤을 보내고 이젠 기차길옆 이모들이랑 헤어질 시간.
어젯밤에 먼저 간 이모야들, 형아들이 있을 때 다같이 단체 사진을 못찍은 게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감자네 집 마당에서 단체 사진을 찰칵!
하준아, 이람아! 우리 겨울에 만나자. 이람이가 첫 생일을 맞을 즈음엔 이 마당에 있는 귤들도 노랗게 다 익었겠네. 그때 이 귤을 따가지고 올라갈게.
이모야들 안녕! 하람이 형아, 하준아, 이람아 안녕!
정말 꿈같은 시간들이었다. 감자네 집에는 아직도 그 온기가, 감동이 남아있어. 아마도 쉽게 잦아들지 않을, 서로의 곁이 되는 행복한 경험, 서로를 보듬는 귀한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