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나러 다녀온 삼박사일의 서울 나들이. 바다 건너 제주에서 낳아 지내고 있으니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보고싶어도 마음만큼 볼 수도 없어. 그러니 감자 돌을 맞아서라도 인사를 다녀오겠다 하면서 추석 명절도 건너뛰고, 이제야 육지엘 올라가.
이미 한 차례 생각지도 못한 잔치가 제주에서 있기도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무슨 연회장을 빌리고 손님들을 초대하는 뻑적지근의 잔치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아. 그저 할머니할아버지들이랑 밥 한 끼 먹는 자리에, 하룻밤씩이라도 감자를 품에 안겨드리고자 나선 길이었지만, 서울에서의 사흘밤은 날마다 잔치가 되어버렸다. 눈에 선하기만 하던 녀석 하나가 올라왔으니, 오늘 보면 또 언제 보랴 하며 가는 시간이 아쉬운 마음이었으니, 커다란 잔치는 아니더라도 떡과 과일을 올려 돌상이라도 차려주고 싶은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이 할머니 댁으로, 저 할머니 댁으로, 또 저쪽 할머니를 만나러 정신없이 다녔던 삼박사일. 그랬으니 감자는 제주에 내려오자마자 곯아떨어지고 말아. 그러나 감자야, 얼마나 좋으니. 사랑 많이 받고 왔구나. 엄마 뱃속 품자도 형아 생일 잔치 따라다니느라 고생 많았다 ^ ^
고맙습니다, 할머니들 할아버지들. 그리고 큰아빠큰엄마 이모이모부 고모고모부. 돌아서고나면 언제나 짠한 가족이라는 이름.
1. 회기동에서, 할머니랑
제라진에서 인연맺은 영화 씨가 감자 돌 한복을 빌려주었어. 손재주 많은 영화 씨가 둘째 아이 돌 때 입히려고 손수 바느질해 만들었다는 한복. 벌써 이 한복을 입고 돌사진을 찍은 아기가 몇이나 된다더라. 한 번씩 빌려주어 입히고, 다른 아기에게 또 빌려주고, 그러던 것이 감자에게까지 돌아와. 그래서 감자도 할머니 집에 가서는 한복을 입고 돌상 앞에 앉았네. 으하하하 감자도령, 감자 도련님.
양말도 싫어, 모자는 더 싫어 ㅎㅎ 답답한 거 싫어하고, 몸에 뭐 걸치는 거 싫어하는 감자는 자꾸만 도련님 모자를 벗으려고만 해 ^ ^
큰엄마랑 사촌형아, 누나랑 다같이 사진을 찰칵, 하려는데 모가 좋다고 빵 터져버렸나 ㅋ
실로폰이랑 제기, 연필, 색연필, 그림책, 쌀, 천원짜리 하나를 올려놓은 상에서 이번에도 감자는 쌀에 손이 갔네. 감자는 정말로 농사를 지어야겠네. 아하하, 아빤 대만족이야!
할머니랑 하룻밤을 자고 나서는, 외할머니외할아버지를 만나러 잠실 이모네 집으로. 외갓집이 있는 울진까지 가기는 아무래도 무리라, 울진에 사는 외할머니외할아버지, 그리고 큰이모랑 작은이모, 이모부가 감자를 보러 서울까지 올라오기로 해. 서울에 살고 있는 이모네 집에서 외갓집 식구들을 만나기로.
보따리, 보따리를 싸들고, 감자는 포대기로 싸서 아빠 등에 업히고. 마치 피난길 같은 모양새를 하고서 전철을 타고 가는 길. 이야아, 아빠 등에 업힌 채, 감자도 전철 손잡이를 잡았네 ^ ^
2. 잠실에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외갓집엔 이모들이 많으니 모이면 언제나 까르르 까르르. 외할머니랑 이모야들이 저 멀리 울진에서부터 음식을 준비해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오고, 서울 이모야는 풍선도 준비하고, 고깔모자도 준비하고, 이웃집에서 한복도 두 벌이나 빌려다놓고, 그렇게 외갓집표 감자 돌상을 준비해 ^ ^
이번에는 이모야가 빌려온 분홍 저고리를 입은 감자도령 ㅋ
도련님 모자 쓰고 사진 찍는 거 성공 ^ ^
이번에는 엄마아빠랑 고깔모자를 쓰고.
이모이모부들 고맙습니다~!
감자 덕에 잘 먹는다 ^ ^ (감자야, 너는 이유식 먹어 ㅎㅎ)
외할머니한테도 어부바.
그렇게 서울 이모네서 하룻밤을 자고, 이젠 할아버지할머니를 만나러 또다시 아빠 등에 업혀.
잠실 이모야네는 아파트였으니, 제주 촌놈 감자는 아파트란 데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본 거였네. 우아아아, 높은 집에 올라간다, 우뚝우뚝 우뚝우뚝 이거도 아파트, 저거도 아파트. 여기는 아파트 단지야. 주말이라 그런가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언니형아들이 많이 있네 ^ ^
감자도 처음으로 놀이터에 들어가 말을 타보곤 으아아아아~~~!
아하하, 신난다!
3. 광명시에 가서, 할아버지할머니랑
셋째날은 할아버지할머니를 만나러. 할머니는 팔을 다치고, 할아버지는 어깨가 부러지셨어. 상 차릴 거 없이 간단하게 바깥에서 밥이나 먹으면 좋겠다고 하였더니, 할아버지할머니가 그 몸으로도 어느 식당에다가 돌상을 마련해. 이래서 감자도령은 또 한 번 한복을 입고, 떡과 과일이 놓인 돌상 앞에 앉았네 ^ ^ 높은 걸상에 올라앉은 감자는 또다시 어리벙벙 ㅎ
이날 찍사는 고모가 하였는데, 핸드폰으로 찍는 게 아니여서 아직 사진들을 받지는 못했네. 아마 거기에 재미난 사진들이 많이 담겨져 있을 텐데, 아쉽지만 핸드폰에 있는 사진 몇 장만.
어유, 그런데 이 녀석 술만 보면 이렇게 달려드네 ㅎㅎ 저게 뭐길래 나는 안 주고 아빠만 맨날 먹나, 궁금했을까. 뚜껑도 따지 않은 맥주에 입을 대보고는 저렇게나 좋아하네 ㅋ
아빤 왜 맨날 혼자 먹어?
입을 있는대로 힘껏 벌려.
아무 것도 안나와 ㅠㅠ
아무리 입을 크게 벌려도 ㅜㅜ
뚜껑 좀 따주세요~~
하하하, 그래도 좋다, 캬~!
아, 그리고 이건 써비스 샷!
잠실에서 아파트 놀이터에 갔을 때, 미끄럼틀이고 그네고 감자는 아직 놀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 엄마아빠가 안고 놀아보려해도 언니형아들이 얼마나 쌩쌩 뛰어다니며 술래잡길 하던지, 끼어들 틈조차 없어. 그래서 형아들 노는 거 구경만 하게 하다가,
"감자야, 너 여기 올라가볼래?"
혹시 싶어 내려놓았더니.
카페에서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도 기어올랐으니, 혹시 이것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제법 경사도 있는 데다가 계단처럼 발디딜 수 있는 바닥이 있는 것도 아니. 그저 동앗줄 같은 걸로 되어 있는 줄사다리일 뿐인데, 그래도 어쩌나 보고 싶었다.
그저 매달려있는 것만 해도 대단타, 아무래도 무리다 싶었어.
그런데 이게 웬걸. 내려오겠다고, 안아달라고 찡얼대거나 하지를 않고 얼굴이 빨개지며 용을 써보네.
매달린 채로 한참을 있더니, 몇 번이나 발이 미끄러져 내리더니 끝내 한 칸을 더 올랐어.
괜찮으니, 감자야? 힘 다 빠진 거 아니야? 그만 안아줄까?
다시 자세를 가다듬더니 이내 편안해진 얼굴. 할 수 있어요, 아빠.
다시 몸을 끌어올리려는데 보폭도 너무 크고, 저 위에 있는 줄을 잡기에는 팔이 너무 짧아. 이거 쉽지가 않으네 ㅠㅠ
기합넣는 법은 어디에서 배웠니, 하다하다 안 되니 이야아 소리를 지르네. 힘을 주는 거구나. 그래, 그렇게 힘 다 빠질 때까지 끝까지 해봐라. 더는 무리일 거라며 그만 안아주는 건, 너도 원하는 게 아닐 거야.
한 칸을 오르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곤 했을까. 발을 들어올려 미끄러지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그래도 한 칸을 더 올랐어.
그러곤 끝내 마지막 칸까지 기어올라.
자꾸자꾸 미끄러질 수록 입을 꽉 물어.
그래, 다했다, 거기까지 손이 닿았으면 다한 거야. 그렇지, 옳지!
감자가 힘을 줄 때마다 나도 같이 힘을 주고 있었을까. 휴우우우, 나도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야. 그래, 기어이 다 올랐구나, 잘 했다, 감자야.
뭉클하였다. 저기를 다 기어올랐다고 해서 뭉클한 게 아니라,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줄을 붙잡고 용을 쓰는 모습이 그러했다. 줄을 붙잡은 감자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보면서, 문득 그 모습에 내가 지나온 어떤 순간들이 떠오르곤 했어. 여기에서 놓치면 안 돼, 더는 밀릴 수 없어, 안간힘을 쓰면서, 마치 감자가 그러했듯, 힘이 다 빠져나간 팔뚝을 부르르 떨면서, 이를 악물고 기어이 붙잡고 버티던 어떤 순간들.
언제나 그렇다. 쉽지 않았기에 뭉클하다. 이루지 못한 거라 할지라도 거기에 최선을 다했던 어떤 것들. 그것은 쉽게 이룬 어떤 것보다 훨씬 소중하게 남아있어.
감자가 놀이터에서 저 줄사다리를 타고 기어오른 저 날은, 그야말로 녀석이 세상에 온지 꼭 일 년이 되던 날. 감자야, 앞으로도 아빠는 너를 잡아주거나 하진 않을 거야. 그저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을 뿐. 굴러 떨어지게 되면 더 크게 다치지 않도록 받아주는 게 아니면 모를까, 섣불리 네게 손을 잡아주려 하진 않을 거다. 아까도 그런 생각 들었지만, 그건 아마 너도 원하진 않을 거야. 미끄러지지 않으려 용을 쓰던 그 모습을 아빠는 아마 잊지 못할 거야.
그리고 아빠도 그럴 거야. 무언가 포기하고 싶을 때면, 무언가 쉽게 타협해버리고 싶거나, 이쯤이면 되었다고 싶어질 때면, 감자가 용을 쓰던 그 모습이 떠오르겠지. 아빠도 감자처럼, 안간힘을 써서라도, 쉽게 놓아버리거나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고 나서도 감자는 자리를 바꾸어 다른 곳에 있는 줄사다리를 한 번 더 기어올랐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한 칸 한 칸을 어렵게어렵게 오르며, 저러다 힘이 빠져 줄을 놓지면 어쩌나 조마조마해 보이는 모습으로, 얼굴이 빨개지도록 안간힘으로 용을 써가며.
그렇게 할머니할아버지를 만나러 나선 삼박사일 육지 나들이를 하고 돌아왔다. 밖에서는 잘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서 한 숨 자고 난 감자를 보니, 그 사이에도 또 더 많이 커있는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다시 또 한 바퀴를 시작하네. 그 사이에 감자는 걸음마도 떼기도, 말을 배우기도, 그리고 형아가 되어 있겠지. 그렇게 일 년을 살았고, 또 일 년을 살아.
달래야, 고생 많았어. 감자에게 고마운 것보다 더, 달래야, 고마워. (아마 언제부턴가 달래는 이젠 날 별로 안 사랑하는 거 같지만, 그래도 난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