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들 배냇머리를 한 번씩 빡빡 밀어준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어. 그래야 검은 머리가 숱이 많아진다면서. 그런데 제주에선 부처님오신날에 그걸 하는 풍습이 있다네. 한 달 된 아가도, 여섯 달 된 아가도, 돌이 다 되어가는 아가도, 그냥 다 부처님오신날에. 달 수와 상관없이 다들 그날에 깎는다는 게 뭔가 합리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게다가 감자는 머리숱이 모자라거나 그런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식으로 해보고 싶어서 감자도 이 날을 기다렸어, 두둥!
지난 번 엄마아빠 머리를 자르러 갔을 때부터 예약을 해두었지. 부처님오신날에 우리 감자 머리 빡빡 깎아줄 수 있어요? 라다 이모야는 흔쾌히 그러마 했고, 드디어 오늘 감자를 안고 하귀에 있는 라다헤어에.
아기들은 머리를 자를 때 많이들 운다는데, 감자는 징징징징 전기 바리깡을 대고 머리를 밀어도 칭얼 한 번을 대질 않네. 오히려 이게 무슨 소린가, 지금 나한테 몬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신기한 눈으로 눈동자를 굴릴 뿐. 감자야, 시원하지? 좋아? 우리 감자, 진짜 감자알이 되어가고 있네, 하하하!
머리를 다 자르고 나서는 아빠들 머리감는 세면대에서 감자도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입어. 감자는 내내 칭얼거림 하나 없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만. 으아아, 이게 누구야, 와아아 감자 시원하겠다!
라다 이모야는 감자를 만난 선물이라며 머리는 그냥 깎아주는 거라 했어. 감자야, 이모 고맙습니다! 인사하자. 이제 우리는 엄마랑 아빠랑 감자랑 모두 라다 이모가 깎아준 머리를 했네. 우리 식구는 다 라다스따~일!
감자도 머리카락을 전부 잘라낸 거를 느끼는 걸까. 한동안은 저렇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하하하!
오늘은 부처님오신날, 감자네 식구는 어느 절에 갈까, 한라산 중턱 관음사엘 갈까, 아님 아빠가 일하던 영실 쪽 존자암엘 갈까, 하다가 역시 아빠가 지난 해 일을 하던 불탑사엘 가기로. 거기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신 곳, 현무암으로 쌓아올린 고려시대 오층석탑이 남아있는 곳. 아마도 지구 위에 현무암 석탑은 그거 하나 뿐일 거.
이렇게 연등이 가득 걸려 있는 대웅전에서 감자도 인사를 드려. 부처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건강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자야, 여기는 작년에 아빠가 일하던 절이야. 여기 일하면서 도면하고 뭐를 잘못했다, 뭐가 잘못되었다, 툭하면 감리한테 지적받고, 설계변경을 하느라 제주시청 감독관에게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불려가고 그러던 곳. 그래도 여기 일할 때는 그나마 즐겁게 일을 했더랬단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이렇게 바가지에 샘물을 받아 아기부처님 목욕을 시켜드리는 걸 하는가봐. 감자는 아기부처님 상이 예쁜 인형으로 보여 그런가, 방긋방긋 웃기만 하네.
아기부처님이랑 함께 감자네 식구 가족사진.
대웅전에 들어가기 전, 관음상 앞에서도 세 식구 함께 절을 하고.
대웅전에 들어가서도 절을 해. 고맙습니다, 건강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빠가 더이상 찌질하게 굴면서 엄마 힘들게 하지 않으시게 해주시옵고, 어쩌구저쩌구 발원을 올려.
공양간에 가서 절밥도 먹었네. 근데 감자는 자꾸만 두리번두리번. 감자는 절에 오니까 자기처럼 머리를 깨끗이 깎은 사람들이 많아 신기했을까 ^ ^
스님도 라다 이모야가 깎아줬어요?
할머니 보살님은 왜 안 깎으셨어요?
공양을 마치고 나와서는 새로 지은 요사채 건물 앞에서 인증샷! 이거 우리 아빠가 무지 혼나가면서 지은 거래요.!
불탑사가 있는 삼양에는 정말 오랜만에 간 거. 오랜만에 섬의 동쪽 바닷가로 넘어갔으니 거기 바닷바람도 맞고 가야지. 불탑사가 있는 원당봉 바로 아래에는 현무암 알갱이로 이뤄진 검은모래 해변이 있어. 그 앞 벤치에 앉아 감자도 맘마공양을.
지난 주 육지에 다녀오고 나서부터 감자는 처음으로 콧물을 흘렸네. 살짝이 감기가 왔어. 신생아들은 여섯 달까지는 엄마에게 받은 항체가 있어 그걸로 면역력을 가져 잘 아프지 않지만, 육개월이 지나면서부턴 한 번씩 아픈 게 시작이라던가.그렇게 한 번씩 아파야 아기도 자기 항체를 만들어 저 스스로 면역체계를 갖추게 되는 거라나. 암튼 감자에게도 콧물감기라는 게 살짜기 찾아왔네. 기침도 콜록콜록. 침을 한 번 맞혀주었더니 낫는가 싶더니 찬 바람에 다시 콧물을 흘리네. 오늘 밤엔 별음자리표에게 배운 사혈침으로 열방따기를 해보아야지.
여기는 삼양에 있는 검은모래해변 앞 그늘 아래. 바람이 너무 분다, 감자야. 어유, 추워라. 머리도 없는데 모자라도 씌워야겠어.
삼양까지 넘어온 길에 함덕 예쁜 빛깔 바다에도 가보자. 우아아, 함덕의 서우봉해변 풀밭에는 휴일이라 나들이 나온 제주 사람들에, 육지에서 내려온 관광객들까지 북적북적. 이번 연휴에는 올 들어 최대 인파라지. 뉴스를 들어보니 제주 인구가 육십 만인데, 십오만 관광객이 들어와 있다던가. 하지만 감자하고는 그 예쁜 빛깔 바다를 보는 것도 맘껏 하지는 못했네. 바다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자꾸만 감자 얼굴로 들이치잖아. 그래서 바닷바람을 살짝 피할만한 서우봉 아래 언덕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 보는 걸로 대신. 어머나, 감자야, 이게 모야? 멍멍이다, 멍멍이. 하얀 빛깔 털을 예쁘게 두르고 있는 멍멍이. 감자가 멍멍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기는 처음이야. 다행히도 멍멍이는 순한 아이였고, 감자도 겁을 내질 않고 좋아하네.
동쪽 바다 구경을 마치고 서쪽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오랜만에 바깥에서 맛난 게 먹고 싶다지. 그래서 언젠가 솟대큰아빠가 데리고 가주었던 '시인의 집'이라는 까페엘 들러. 조천읍에 있는 거니까 함덕 바다에서는 십 분도 걸리지 않는 곳. 거기는 손세실리아 시인이 가꾸고 있는 까페. 지난 번엔 차만 마시고 왔는데, 차가 좋았던만큼 피자도 아주 맛있게 한다는 데라고 솟대큰아빠가 그랬어. 그래서 엄마 맛난 거 먹게 해주러 시인의 집으로!
까페에서 바로 맞닿은 바닷물에는 솟대큰아빠가 만든 솟대가 꽂혀져 있어. 감자야, 지난 주말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러 갔다가 동화나라에 가서 봤던 솟대들이 여기에도 있네. 해는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고, 물이 들어오고 있어 솟대는 점점 잠겨들고 있어. 그것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고 있네. 감자랑 엄마가 함께 있는.
실은 요사이 툭닥툭닥 엄마랑 아빠 부부싸움이 있고 그랬거든. 그랬다가 풀었다가, 풀었다가 또 그랬다가. 이백 일을 넘어 지나면서 우리도 모르게 쌓인 육아 스트레스 그런 게 있었을까. 말 한 마디에 서운해하고, 왜 내 맘을 몰라주냐며 섭섭해하고, 먼저 알아주기만을 바라고, 토라지고, 삐치고, 유치하게스리 부러 밉살스런 말로 대꾸를 하고 ㅜㅜ
그랬을 거야, 아마. 내 마음 좀 알아달라고, 아님, 내 마음부터 알아달라고. 그러면서 서로 자기 맘을 몰라주는 상대를 벽처럼 느끼게 되고……. 그러나 돌아서서 내 발끝을 내려다보고 있다 보면 뒤늦게야 알게 되곤 했지. 실은 나 자신이 그 벽처럼 굴었다는 걸.
하지만 이 부부싸움이 오래갈 수는 없는 건, 감자 때문이야. 부부싸움 중에는 그전처럼 감자를 가운데 두고 셋이서 함께 웃고 그러지를 않았거든. 번갈아 가면서 엄마랑 감자랑 둘이 놀거나 아빠랑 감자랑 둘이 놀거나 그러면서 한쪽이 슬쩍 자리를 피해 ㅜㅜ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냔 말이지. 감자가 엄마랑 둘이 까륵까륵 놀고 있으면 나도 거기에 끼고 싶어 참지를 못하겠거든. 그러니 어서 끝내야만 해 ^^;;
암튼 오늘 감자 머리를 깎고, 아기 부처님을 찾아 절을 올리고 그러면서 다 풀리고 말았네. 부처님 앞에서 몇 번이고 빌었지. 부디 아빠가 찌질하게 굴면서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기를 ㅠㅠ
시인의 집 까페에 가서 엄마가 먹고 싶다는 피자를 시켜. (감자네 식구가 피자를 사먹으러 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네.) 아빠는 맥주를 한 병 시키고, 감자는 딸랑이 치발기만 입에 물려 ㅜㅜ 감자네 세 식구는 이렇게 부부싸움 뒤 모처럼의 외식을.
감자는 여기에서도 사진 모델이 되어 ^ ^ 세실리아 선생님은 아기 부처님이 여기에 있었네, 하면서 사진을 찰칵찰칵!
세실리아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바로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감자 사진. 페이스북 계정이 없으니 어떻게 찾아들어가 다운을 받을 수 있나, 했더니 이 사진을 문자로 보내어주었어.
감자 부처님 덕분에 엄마랑 아빠는 다시 환하게 웃었네.
감자야, 너도 기분이 이상했지? 엄마랑 있으면 아빠가 방에 슥 들어가버리고, 아빠가 안아주면 엄마는 어느 새 등을 돌려 다른 일을 하고. 으아아앙, 이 엄마아빠 도대체 왜 이러냐구요.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시 솟대는 더 깊이 잠겨들고, 하늘에는 바다새가 날으고, 엄마랑 아빠는 감자를 사랑하고.
불기 2559년 아기부처님이 오셨다는 음력 사월의 봄날, 감자네 식구는 이렇게 하루를 살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피곤했는지 차 안에서 바로 곯아떨어져 버리네. 감자야, 네가 고생이 많다. 이렇게 서툴고 어설픈 엄마아빨 데리고 사느라 ㅋㅋ
머리깎으로 나가기 직전에 찍어두었던 감자 얼굴. 하하, 한동안은 머리가 길던 이 모습은 보질 못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