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동, 감자

감자로그 2015. 5. 20. 15:24

 

       

 육지 이튿날, 새벽부터 첫 기차로 안동엘, 조탑 오두막과 학교를 들르고는 다시 바삐 길 위에 올라. 박달재 아래 평동리에 있는 목판 큰아빠네 집으로 가는 길. 거기에서 보령 할아버지도 (어찌된 게 목판 큰아빠보다 동생인데도 보령 큰아빠한테는 할아버지란 말이 더 입에 붙을까 ㅎ), 낮은산 큰아빠도, 에게해 이모야 (에게해 이모야도 언젠가부터는 할머니란 말이 입에 붙어. 종숙 언니가 감자를 안고 있는 걸 보면 사과나무밭 달님에 나오는 조그만 할머니, 딱 그 모습이 떠오른단 말이지.)도 다같이 만나기로 했어. 거기에 안동에서 함께 다니던 동철, 현주네랑 지영이 이모야도 모두 함께.   

 

 안동에선 동철이 삼촌네 자동차를 타고 감자랑 아빠, 남자 셋만 먼저 출발을 해. 엄마랑 이모야들은 그토록 오랜만에 만난 거였는데도 바삐 다니느라 할 얘기 제대로 나누지도 못해, 커피 한 잔은 하고 나서야겠대. 그럼, 우리끼리 먼저!  

    

 

 목판 큰아빠 집에는 낮은산 큰아빠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네. 큰엄마큰아빠, 감자 왔어요!

 

 감자야, 기억나니?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큰엄마랑 큰아빠 만나고 갔던 거. 감자가 세상에 나오기 한 달도 남지 않던 가을. 상주에서 그꿈들 원화전시를 하고 올라오던 길. 그때도 낮은산 큰아빠랑 같이 왔더랬구나. 그때 큰아빠가 동그란 감자 한 알을 선물로 주었단다. 그러고는 한 달을 더 기다려 감자가 나왔고, 감자가 나오고 이백십오일이 되어 큰엄마큰아빠네 집엘 다시 온 거.  



 

 

 

 그 밤, 나는 언제 쓰러졌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어느 순간 나가더니 감자 옆에 가서 엎어졌다 하던데, 정말로 이제는 늘 내가 맨 먼저 고꾸라지는구나 ㅠㅠ 새벽에 눈을 떠 마당으로 나가려다 보니 신발들이 이렇게 예쁘게 뒤엉켜 있어. 지난 밤 술상을 치우러 작업실로 가 보니 그 현관에도 운동화 한 켤레. 아하, 보령 큰아빠는 신발도 못 신고 질질 끌려 들어갔나 보다 ㅎㅎ 

 

 

 다음 날 아침, 누룽지에 가벼운 아침을 먹고, 마당 잔디에 둘러 앉아 어제 이야기에 이어지는 사는 이야기, 그림 이야기. 오전 햇살이 좋았고, 하늘빛이 좋았다. 가야할 길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그 풀밭에 앉아 해가 넘어가는 걸 다시 맞을 수도 있었을 거.

 

 

 

 

 

 그 아침, 저 마당가 어딘가에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다녀갔는지도 몰라. 철수네 집에 다들 모였구나. 네가 종숙이로구나. 환영이는 강냉이 그림 언제 다 그럴 거니? 광호네 오두막엔 기범이가 한 철, 환영이가 한 철 그렇게 지내는가 보지. 기범이 인석은 감자를 낳고도 아직 철이 들질 않았어. 여경아,  선경아,  현선아 얘들 델구 사느라 늬들이 고생이 많다…… 하시진 않았을까.    

 

 

 대문 앞 논물은 거울처럼 맑았고, 저 아래 오두막 위 하늘은 파랗고 깨끗했다. 조탑에서 평동,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감자를 안고 다녀오던 길. 어른이라 해도 고단하고 지칠 일정이었으니 이제 겨우 이백 일을 지난 감자가 괜찮을까, 조심스러운 마음 없지 않았지만, 그러나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 싶어. 찬 물에 씻고 났을 때처럼 깨끗해진 것 같은 마음, 예전에 했던 사소한 다짐들을 이제 다시 한다 해도 부끄러울 것 같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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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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