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삼일, 감자가 이백일이 되던 날. 백일을 챙기고 이백일을 챙기고, 요즘 아이들 연애할 때 그런다던 것처럼 무슨 날짜를 특별한 기념일로 챙기려는 그런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날 아침 삼신할머니 상을 차려보고 싶었다. 백일날에야 당연스레 그러기도 했지만, 이백일이 되는 아침, 반은 장난스레, 그러나 아주 장난만은 아니, 이백날이 되도록 여태껏 한 번 아픈 데 없이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고, 잘 자게 보살펴준 삼신할머니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 그게 꼭 삼신할머니가 아니더라도 정성과 관심으로 함께 보살펴준 그 모든 마음들에게.
그래서 이렇게 이백일이 되던 날 아침, 나물 몇 가지에 미역국, 그리고 감자를 삶아 올려놓고 삼신할머니 상을 차려.
백일 때처럼 떡이나 케잌을 따로 마련하진 않았지만, 그 전 날 저녁 빵집엘 들러 숫자 모양으로 된 초를 사두기는 했어. 상에 찐감자를 올렸으니 거기다가 꽂아놓으면 되겠네 ㅎㅎ
그 날은 시내에서 친구 혼례식장엘 나가보기도 해야 해서, 조금은 서둘러야 했어. 그래서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감자를 깨웠으니, 잠에서 덜깬 감자는 영문도 모른 채 활짝 웃지를 못해. 지난 번 백일상을 차려놓고도 뚱한 얼굴로만 있더니, 이백일이랍시고 사진을 찍는데, 좀처럼 환한 얼굴을 보여주질 않았네. 평소에는 입이 터져나가라 잘 웃던 녀석이. 미안하다, 감자야. 일찍 깨워 미안해 ㅠㅠ
아, 그럼 오늘 기차길에서 받은 공연 티셔츠를 입으면 좋겠네. 가슴팍에다가 공연 제목인 <그꿈들>을 써넣은 티셔츠. 이참에 엄마랑 아빠랑 감자랑 모두 그 옷을 입고 인증샷도 찍어보내자, 젤로 작은 옷이지만 감자에겐 아직 원피스처럼 커다랗기만 해. 그래도 세 식구 이 옷을 함께 입으니 뭔가 더 기념이 되는 것 같으네. 감자야, 그 옷에 있는 글씨는 아빠가 손으로 쓴 거. 어머나, 예쁘다 ㅎㅎ
일단 맘마부터 먹어야 기분이 좋아지겠지.
어느 새 이백일, 고마워 감자야.
감자도 감자를 아는 겐지, 감자를 안아 상을 보여주니 감자에게 먼저 손을 뻗어. 감자가 감자를 좋아해.
그꿈들 공연 티셔츠를 이제야 입었다고, 기차길에 인증샷을 보냈다가 이모삼촌들에게 받은 감동스런 축하의 말들. 농사를 짓는 일이 그런 것처럼, 아기를 키우는 일이 부모 둘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어. 그 고마운 마음, 정성과 사랑.
아, 그리고 요건 ㅋㅋ
감자 이백일 상에 올릴 걸 그날 아침에 다 준비하는 게 암만 해도 어려울 것 같아, 그 전날 밤에 미리 나물을 데치고, 볶고 그러던 거. 여름이 벌써 왔는지 턱을 타고 목을 타고 가슴을 타고, 땀이 뚝뚝 떨어지고 줄줄 흘렸건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이었다. 감자야, 아빠 꼭 잡아. 아빠는 앗뜨거 하는 거 앞에서 두 손을 다 써야만 해.
그렇게 감자의 이백일을 보냈다. 세상에 없던 이백일, 감자가 선물해준 그 시간. 돌아보면 신기하기만 한, 세상에 없던 그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