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가 세상에 나왔다. 열 달을 뱃속에서 살고, 서른다섯시간 사십구분의 힘겨운 터널을 지나 이 별 위의 조그만 한 점이 되어.
이천십사년 시월 십칠일 오전 열한시 사십구분.
1. 진통 시작 - 십오일 자정.
진통은 십오일 자정부터 시작하였다. 엄마 뱃속의 깊은 조임. 십분마다 한 번씩 조여오던 그것은 칠팔분 간격이 되었고, 육칠분 간격으로 좁혀져. 새벽녘 조산사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좀 더 기다려보자면서, 차라리 당신께서 우리 집으로 한 번 들러가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오전 열 시에 도착.
2. 진통 열 시간만에 조산사 할머니가 집에 다녀감.
아직은 문이 덜 열렸다면서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 그때까지 열 시간의 진통 또한 견디기가 쉽지가 않아, 내심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조산사 할머니가 몸을 살펴주며 조언을 해주시니 어느만큼은 안정이 되었다. 앞으로 좀 더 보자고, 저녁 즈음 서로 연락을 해보자고.
3. 진통 스물네 시간만에 조산원으로 달려나감.
조산사 할머니가 다녀간 뒤로는 달래도 나도 마음에 안정이 찾아졌다. 그러나 열다섯 시간이 지나고, 열일곱, 열여덟 시간이 지나도 조임의 간격은 더이상 좁혀지지가 않아. 길 때는 십여분에 한 번, 짧을 때는 오륙분에 한 번. 그 진통 속에서도 달래는 걷고 싶다며 마을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걷다가도 몇 번이나 거센 파도와 같은 것이 몸을 휘감아. 우리는 마을 골목에 그대로 멈춰서서 진통을 겪어내곤 했다. 그러다가 진통 스물세 시간이 되고, 스물 네 시간이 되면서 달래는 더 참지 못하겠다며, 뒤로 묵직한 것이 내려온 것 같다며, 당장이라도 나올 것 같다며 울먹여. 바로 조산원으로 연락하고 아기 받을 방으로 들어갔다.
4. 벼락같은 말,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는 게 어떻겠느냐고. (진통 스물다섯 시간째)
그러나 달래의 몸을 살펴본 조산사 할머니는 이대로는 어렵겠다고 하였다. 진통이 스물네 시간이나 지났는데, 도무지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지금쯤은 적어도 칠팔센티는 열렸어야 하는데, 겨우 이센티미터 열렸을 뿐이라고. 골반이 너무 작아 어려운 것 같다고. 진통이 진행된 상황에서는 아기가 태변을 볼 수 있고, 양수 속 태변을 아기가 먹을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바로 아기의 뇌로 들어가게 될지 모른다는. 당신 역시 자연출산을 지지하고 있지만, 차선을 생각지 않아서도 안 된다고. 그러면서 시내에 있는 어느 병원을 권해주었고, 거기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고 어렵다 싶으며 수술을 받으라 하였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속에서 달래는 절망을 느꼈고, 나 또한 덜컥. 조산원에서는 병원으로 가보라 했지만 우리는 일단 돌아가 생각해보자며 집으로 돌아갔다.
5. 집으로 돌아와, 진통 스물다섯 시간째에서 스물아홉 시간째까지.
조심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아기를 믿어보자고 했다. 그리고 달래는 자신의 몸을 믿었다. 그러나 그때부턴 형언할 수 없는 더 진한 고통이. 이미 우리는 이틀째 한 잠도 못 자고 있었고, 달래는 그 아픔을 호흡으로 다스리며 몸이 수십 번도 솟구쳤다 곤두박질치며 제대로 가누질 못했다. 진통은 오분 간격에서 다시 삼사 분 간격으로. 새벽 세 시, 우리는 다시 조산원으로 차를 몰았다. 달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했다. 게다가 아기까지 위험할 수 있다는 말. 이번에도 갔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병원으로 가 수술이라도 받자는, 그것은 달래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러자고 하면서 새벽길을 조심조심 기어 조산원엘 도착.
6. 다시 조산원, 진통 스물아홉 시간 째, 문은 삼센티가 열려.
고작 일센티미터가 더 열렸을 뿐이었다. 이 정도 진통에는 적어도 한 시간에 일센티는 열려야 한다고, 그랬을 때 십센티미터가 열려야 아기 머리가 나올 수 있다고. 그런데 고작 일센티가 더 열렸을 뿐이라니. 그러나 우리는 그 일센티에 희망을 걸었다. 스물네시간만에 이센티가 열렸는데, 네 시간에 일센티가 더 열렸으면 아주 불가능해보이지는 않을 거라 여겼다. 물론 그건 달래의 용기있는 선택이었다. 조산원의 방에는 우리 둘만 남았고, 오로지 그 시간은 우리 둘 뿐이었다. 달래의 몸 속으로 진통은 무서울 정도로 몰아쳤고, 그 간격도, 마치 간격이 없을 정도로 빨랐기에,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몸부림을 쳤다. 달래는 땅을 기었고, 몸 속으로 몰아치는 폭풍들 앞에서 혼절 직전까지 이르렀다. 조산사를 불러달라고, 이 정도면 어느만큼이냐고.
7. 진통 서른시간 삼십분 째, 문은 오센티가 열려.
한 시간 반이 더 지나고 이센티미터가 더 열렸다. 적어도 진행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다시 방 안에 둘만 남았다. 달래는 다시, 새끼를 품은 어미 짐승처럼 그 폭풍에 몸이 솟구쳤고, 무너졌고, 꺾이기를 되풀이했다. 그렇게 보낸 한 시간 반. 글을 쓰는 일로 밥을 빌어먹고 살지만, 도무지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도 형언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다. 어둔 방 안에서 우리 둘은 맨몸뚱이의 짐승. 달래는 울부짖듯 조산사 할머니를 찾았다. 아직도 아니냐며.
8. 진통 서른한 시간째, 칠팔센티 정도 문이 열려.
조산사 할머니가 몸을 보더니 이제 준비를 하자 했다. 아직 충분치는 않지만 감자의 머리도 밑으로 내려와 있다고 했다.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다섯 시간을 더. 나올듯 나올듯, 감자의 머리가 바깥으로 나왔다가 들어가기를 수십 차례. 평생 아기를 받아온 조산사 할머니도 힘겨워하던 그 시간.
9. 진통 서른다섯시간 사십구분, 고맙다, 아가야.
할 수 없을 거라던 달래의 몸은 감자를 안전하게 내보내주었고, 엄마의 문에 걸려 머리통이 길어져버린 감자는 아주 편안한 얼굴로 태어났다. 너였구나, 아가야.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그 좁은 길과 문을 지나와야 했던 너는 또 얼마나 힘겨웠을까. 고맙다, 감자야. 건강한 모습으로 와 주어서. 우리 셋 다 참 힘들었구나. 그렇게나 힘겨웠던만큼,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