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통

냉이로그 2012. 8. 13. 12:03

 

1.

 

한미르가 망했는지 어쨌는지, 티스토리로 이사를 당했다. 한미르의 그 촌스럽고 투박함이 좋았는데, 어쩌다 들어오게 된 여기는 영 어색하기만 하다. 쨌거나 이리로 옮겨와 처음으로 끄적여보는 글.

영월에 왔다. 오랜만에. 토요일 밤에 닿았는데, 맑은 숨, 시원한 바람, 벌레들 소리, 아아, 좋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곳서 푹 쉬다 갈 수 있었으면.

토요일엔 인천엘. 달래는 지난 한주일동안 기차길역 작은학교 인형극단에서 지역 아이들을 위해 여는 인형극 워크샵에 함께 하고 있었다. 서울 인천이면 중간에도 한 번쯤 가볼만도 했을 텐데, 내내 그러질 못하다가 마치는 날에야 찾아가볼 수 있었다. 이모들을 만났고, 삼촌들을 만났고, 아이들을 만났다. 꿈이 뭐니, 라고 물으면 거기엘 가보라 말해주고 싶은. 거기엘 가 봐, 꿈을 꾼다는 건 그걸 사는 거라는 걸.

일요일 새벽 길을 몰아 안동대에 강의를 들으러. 강의 시간 내내 졸았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면서 졸다가, 그 졸음이 너무도 달고 좋아, 어느 때부턴가는 오는 졸음 쫓질 않고 그냥 고개를 떨궈. 사르르 오는 졸음, 십 분을 졸아 한 열 시간은 잠든 것처럼 개운하게 깨어날 수 있다면. 아무튼 너무나도 달고 맛있던 졸음, 그 달고 맛있는 졸음이나마 있었으니 부지런을 떨며 달려간 길이 아조 억울하지만은 않았어.

허리가 나갔다. 조심을 했었어야 해. 차라리 쉽게 꿈쩍도 못할 것처럼 보이는 돌덩이였다면 몸부터 풀며 자세 바로하고 그랬을 텐데, 어중간하니 있던 거라 허리를 뒤로 쭉 뺀 채로 잡아 들려 했으니 그런 실수를. 하루이틀 지나 조금 낫는가 싶더니 어허, 이거 큰일이다. 당장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이게 얼마짜리가 될는지. 보름을 갈까, 한 달을 갈까. 내일이라도 당장 깨끗하게 나으면 좋으련만.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2.

 

어젯밤, 시원하게 비가 쏟아졌다.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던 달래와 달라에게 오는 길에 감자전이랑 막걸리를 부탁했더니, 장칼국수까지 한 그릇 받아왔다. 달라는 한쪽에서 기타를 뜯으며 연습을 하고, 달래는 저쪽 방에서 여행갈 짐을 챙기며 다리미질을, 그 사이에서 나는 막걸리를. 그렇게 셋이는 대화도 없이 각자 자기 하는 일이나 하면서. 빗줄기는 약해졌다 굵어졌다, 빗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그 빗줄기와 감자전, 막걸리 속에서 아름다움,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에나, 그걸 잊고 지냈다니. 그 말이 그리도 낯설다니. 무언가 가장 중요한 것을 놓고 지냈다는 걸 알았다. 하긴. 그 동안에도 그걸 몰랐을리는 없으나, 그러나 인식으로, 문장으로 그렇게 대놓고 정리되고 보니,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이건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그럼 어쩔 건데, 에 대해서는 답을 구하고자 하지도 않았는지 몰라. 적응하기에 바빴고, 한편으로는 적응하지 않으려 했고, 그러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적응하고 있는 내 모습이 두려울 뿐이었다.

틈이 있을 거야, 동훈이 형이 말했다. 

문제는 내가 나를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 이라는 것. 그 눈물겨움과 초라함, 헐벗음,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연민.  

 

 

3.

 

달래와 달라는 아침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올라갔다. 지금쯤은 제주도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 올랐으려나. 오랜만에 영월 집에서 이렇게 혼자. 바깥에선 매미떼가 울고, 방 안에선 선풍기가 느리게 돈다. 나는 난닝구 바람에 치마를 입고, 어젯저녁 먹다 남은 감자전을 주섬주섬 아침을 때워. 오늘 하루는 누가 머래도 여기에 혼자 이렇게 있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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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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