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

냉이로그 2012. 7. 8. 23:03

비오고 난 뒤엔 일이 더 많아. 그리고 물을 머금은 땅에서 올라오는 습한 것들까지 해서 더 더워. 점심시간, 직녀가 된 영월 달래가 숭례문 앞에 찾아왔다. 속옷까지 땀에 젖어, 머리부터 종아리까지 소금기에 쩔어, 한 시간 주어진 그 시간에 그 앞에 있는 비빔밥 집에서 밥을 먹었다. 고마워라, 직녀달래. 석공 분들이며 문루 사무실 분들과도 인사를 나눈 뒤에 이차장님이직접 안전모를 쓰고달래에게 숭례문 복원 현장의 이곳저곳을 한 시간 넘게 안내해주기도 했다. 만난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늘 따뜻하고 푸근한 얼굴의 이차장님.일을 다 마치고 나서 씻고 나올 때쯤 다시 만나기로하고, 달래는잘 알지도 못하는 서울 시내에서 혼자 놀며 기다려주었다. 일을 다 마치고 씻고 나왔을 땐 며느리 얼굴을 보러 온 건지, 아들 얼굴을 보러 온 건지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문 앞에 와 있었다. 아니, 내가 나올 쯤에 보니 경비실 아저씨에게 우리 아들이 저 안에 있다며문을 열어달라 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서울에 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 댁에는 한 번도 가지를 못하고 있었어. 그리하여 네 식구가 만나 저녁을. 아버지는 왜 자꾸 눈물을 흘리는지.새어머니 얼굴은 갈수록 더따뜻하고 애틋하다. 이제 어서 너는터미널에 가서 며늘아이 막차 태워 보내라고, 두 분이 우리를 먼저등을 떼미는데, 아버지는 다시 눈자위가 벌겋다.동서울터미널로 가려면 2호선 시청역에서. 역으로 걸으면서 대한문이 맞은편에 보이고, 마침 그곳에서 조그만 음악회가 열리고 있기에 저기에 잠깐만 들렀다 가자, 하고는 천막 앞으로 갔더니, 무대 앞으로 옹기종기 앉은 관객들 사이로 머리빡빡 아저씨가 보여. 나는 당근 병수 아저씨일리 없다는 생각에, 그저 웃기는 말을 던지는 정도로 "야, 저기 병수 아저씨다, 병수 아저씨가 있네" 했는데, 그 빡빡머리는 진짜 병수 아저씨. 아하하, 이것 참. 그렇게 또 짧은 상봉을. 아저씨는 사흘 전부터 시청광장에서 열리던 협동조합 관련 무슨 행사에 솟대를 세우러 와 있다던가. 목이 쉰 아저씨가 우리를 이끌어 솟대 세운 쪽으로 가서는 풀잎의자에 앉히고는 전화기로 사진을 찰칵.달래가 다녀간 일요일.

 

 

 

요기가 그 시청광장, 그 너머로 조그맣게 보이는 대한문이랑 쌍용차 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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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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