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는 길에동강 둔치길 이정표를 봐둔 것이 있기에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그리 들어가면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 강을 따라 길게 이어졌을까 싶었는데 그렇게 나 있는 길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좋았다. 아스팔트 발라 있지 않는 흙길이며 자갈길을 엉덩이 쿠당탕탕 자전거로 타고 넘으며 태백 봉화로 나가는 길로 돌아 철길을 넘고 굴다리를 지나 다시 철길을 건너 한 바퀴를 돌다 들어왔다. 한 가지 실수라면 장갑을 끼지 않고 나간 거. 마스크나 목도리는 둘째치고 장갑만큼은 꼭 챙겼어야 했다. 손이 아주 얼어버리는 줄 알았어.
읍내에서는 어디나 한 달음이다. 기차역이나 터미널도, 시장과 우체국도 걸어 이삼십 분이면 어디든 걸음이 닿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차를 탈 일이란 좀처럼 없다. 게다가 기차역이 있어 시간만 맞춰 준비하면폭칙폭칙 몸을 떠맡길 수 있으니 먼 데를 간다 해도 차를 움직일 일이란 거의 없어 보이는 것이다. 언제였더라, 이리로 와 닷새 밤을 자고 났을 때 폭포처럼 눈이 내렸더랬다. 어디로든 나가 눈을 맞아야 했다. 그 눈폭포 아래로 걸어들어가야 했다. 오가면서 본 것 가운데 읍 들머리에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폭포며 산보를 다니게끔 짜놓은 공원 같은 것이 기억나 그리로 걸어나갔다. 그곳도 역시 한 달음. 계단을 넘어 올라가보니 바로 동강사진박물관으로 이어졌다. 워낙 박물관이니 전시회 같은 곳을 즐겨찾지 않았기에 대문 앞만 휙휙 지나치곤 했는데 기왕 거기까지 올라간 길, 군민에게는 입장료도 육백 원만 받겠다, 눈도 피할 겸 들어가 보았다. 김기찬이라는 사진작가를 알게 된 건 놀라운 일이었다. 여태 나는 선생의 사진들을 왜 알지 못하고 있었을까.
읍내로 들어가는 길 말고 바깥으로 나가볼까. 하루는 장릉 이정표가 난 길로 걸어올라갔다. 어머나, 십여 분이나 지났을까, 길어야 이십 분이 되지 않아 걸음이 닿았다. 여기도 군민 입장료는 육백 원이면 되었지만 안을 둘러보는 것은 다음에라도 언제라도 하겠거니 미뤄두고 장릉 뒤편 샛길로 이어진 마을 길을 걸었다. 보덕사라는 절이 나오고, 조금 더 들어가니 솔밭 사이로 산길이 이어진다. 어머나, 어머나 하면서 소나무 사이로 길을 내놓은 오랜 발자국을 따라들어갔다. 아마도 자주 오르게 될 것만 같은 길. 인적없고, 새들만이 잠깐씩 곁에 내렸다 가는 그곳이라면 아무 때고 숨어있어도 좋겠구나 하는 행복한 상상.
아직 어디를 가도 낯설기만 한길들이어서 좋다.아직나는 한참을 더휘청대도 좋으며 더헤매어도 좋으니.
영월에서 / 김사인
무엇을 기다리나 산들은
해마다 목을 빼고 나무들은
우두커니 물들은 모래들은
밤마다 어디로 가서 무너지나 한번씩
어둠 속 가로질러
온통 가슴이 주저앉나 무엇을 기다려
우수수 벌판을 헤매다
아침이면 돌아오나 바람으로 우수수
기다림이 아니고야
이렇게 있을 리가
기다림이 아니고야
살이 마르고 가죽 쪼그라들 리가
기다림이 아니고야
어떻게 죽을 수가 있나
한데 무엇을?
이렇게 있다는 것이
기다림인 줄을 까맣게 잊고
모든 길 끊어진 영월에서
나는 대체 누구의 잠을 대신 자는가
누구의 밥을 대신 먹는가
누구의 걸음을 대신 걷는가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
고등어 / 루시드폴